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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Feb 20. 2024

김치볶음밥, 참 잘했습니다

18. 문자수업, 손가락은 저리지만 어쩔 수없지요.

산사 중학교 요리 수업이 끝나고 수업에 필요한 재료를 싸서 갔던 가방을 들고 나오는 길, 괜찮다는 말에도 양말도 못 신고 머리도 언제 감았는지 모를 녀석이 가방을 나눠 들고 따라 나온다. 그 아이 뒤를 따라 아이들이 따라 나오고. 가방을 차에 실어주고 말없이 바라보던 아이가 고개를 천천히 숙여 인사를 해준다. 뒤에 서 있던 아이들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뭉글뭉글한 가슴을 쓸어안고 백미러에 보이는 아이들을 한 번 더 바라봤다.


차에 걸어 둔 핸드폰 액정이 연신 반짝인다.

문자가 줄줄이 오는데... 나범이다.

‘선생님, 재료를 사야 하는데요.’

‘다음 주에 어떤 요리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윤 선생님에게 필요한 재료는 주말에 문자로 보내야 한 대요.’

‘아이들과 무엇을 할 것인지 상의했는데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이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죄송합니다.’     


황당하기는 하지만 당연한 문자이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들지만, 난 한 달에 한 번 가는 요리선생님인데!

작년엔 여자아이들로 구성된 요리 동아리였다. 인터넷으로 음식 키트도 사고 주말에 읍에 나가 재료도 사 와서 디저트나 분식 종류를 만들었다. 선생님들이 일일이 메뉴를 알려주지 않아도 밤 11시까지 지지고 볶으면서 잘 보냈는데.

사내 녀석들은 다른가?     


솔직한 마음은 ‘니들이 알아서 해!’라고 보내고 싶었지만, ‘재범아, 급식실 냉장고에 김장김치가 있을 거야. 김치볶음밥이나 어제 만든 죽순 덮밥처럼 덮밥을 만들어보는 건 어때?’

기다렸다는 듯 바로 문자가 왔다.

‘선생님 김치가 얼마나 들어가야 해요?’

‘다른 재료는요?’     

헉! 나 매주 레시피를 보내야 하는 거야!

정말 무덤을 파기는 했구나, 이젠 들어가 눕는 일만 남은 거지...


이쯤 되면 문자보다는 통화를 해야 하지 않을까. 나범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범이 안녕. 솔직히 말하면 선생님이 김장김치를 먹어보질 않아서 잘 모르겠어. 하지만 너희 먹는 밥양을 생각한다면... 반공기쯤.”

“선생님, 돼지고기를 사서 썰고 다져서 힘들 것 같죠? 스팸이나 햄을 넣을까요?”


옆에서 승식이와 그리가 ‘햄이요. 햄’이라며 소리치고 다른 아이들은 조용히 하라는 고함이 내 귀까지 쩌렁쩌렁 울린다. 저 녀석은 점심 급식만 빼고 인스턴트만 물고 사는 놈이 햄 타령이다.


“선생님이 갈 수 없잖아. 너희가 편한 방법으로 해봐야겠지.”

“그럼 김치하고 햄만 넣어서 할까요?”

“아니, 학교에 당근하고 양파, 마늘 있어. 마늘은 다지고 당근, 양파, 햄, 김치는 1cm 작은 주사위 모양으로 썰어. 1cm보다 작은 크기는 괜찮지만 크면 안 돼. 냉동실에 썰어 놓은 대파도 총총총 썰어 넣고. 선생님에게 새송이버섯 사달라 해서 넣고.”


“그럼 순서가.”

“프라이팬을 뜨겁게 달궈서 작은 주사위로 썬 새송이와 햄을 먼저 볶아내고 그 안에 있는 기름으로 마늘, 양파, 당근, 김치순으로 넣고 볶는 거야. 거기에 볶아놓은 버섯과 햄을 넣어서 다시 한번 볶아 마지막에 파를 넣어요. 접시에 담고 김 가루랑 달걀 프라이도 올리면 예쁘겠네. 밥을 넣어 같이 볶으려면 버섯과 햄이 들어갈 때 같이 넣어야 해.”     


“네. 양념은요?”

아~ 이 녀석들 인터넷 찾으면 맛있는 김치볶음밥 레시피도 많은데, 사내 녀석들이라 그러나?

“고춧가루 반 숟가락, 간장 반 숟가락, 설탕 삼분에 일 숟가락, 후추를 넣어 볶고, 맛을 봐. 싱거우면 소금이나 간장을 조금 더 넣는다. 불을 끄고 참기름 반 숟가락을 넣고 다시 뒤적여준다. 간단하지.”

“네. 네.”

“행운을 빈다.”

나범이의 감사하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기의 종료 버튼을 눌렀다.  

   

이 정도 알려 줘도 잘 모르겠으면 네이버에 물어보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내 손꾸락은 액정을 꾹꾹 눌러가며 김치, 볶음밥 레시피를 적고 있다. 이런 나에게 ‘너! 미쳤구나!’하고 소리 지르만, 손가락이 멈추지 않는다. 

‘항상 칼을 대할 때는 경건하고 조심스럽게 우리의 규칙을 지켜주길 바라요~’라는 당부까지 보태 보냈다.     


일주일이 지나고 카톡이 울어댄다.

카톡 하나에 사진이 한 장, 카톡 하나에 사진 세 장, 카톡 하나에 사진 두 장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기특한 녀석들 잘 만들었네.      

아이들끼리 처음 해본 솥 밥인데 너무 잘했다. 더군다나 설익어 보이긴 했지만, 하얀 밥이 솥 밖으로 흘러내리지도 않고, 안에 꽉 들어차 깔끔하게 해낸 모양이 베테랑 요리사들도 힘든 미션으로 보였다.     



‘정말 잘했다. 생각한 것보다 너무 잘해서 선생님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럼 다음 미션을 줘 볼까?’

‘정말 잘한 거죠? 재범이가 사진 찍기도 전에 밥을 먹어버려서 사진이 엉망이에요.’

응 너무 잘했다. 맛있어 보여.'

'아~ 고것이 재범이 꺼였어. 이노무 시끼 다음엔 사진 찍고 먹으라고 해. 자 다음 미션.’

    

김치 주먹밥

1. 달걀 한 개를 볼에 넣고 거품기로 풀어줍니다.

2. 김치볶음밥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를 곱게 다져서 볶는 중간에 달걀 물을 넣어 다시 볶아요.

3. 볼에 넣어 참깨와 참기름을 넣고 잘 섞고 주먹밥을 만들어봅시다.

구운 김을 부셔 같이 넣어 만들어도 됩니다.

주먹밥을 구운 김으로 감싸 모양을 만들어보세요.

주먹밥을 프라이팬에 구워 구운 김으로 감싸 보세요.

-칼을 쓸 때는 항상 조심하시고요.

-재료 잡는 손, 손톱이 보이면 안 됩니다. 호랑이 손!     


손해 좀 보면 어때! 저래 잘하는데, 뭐가 귀찮아!   


낮에 만난 아이들이 생각난다. 그 아이들도 우리 아이들과 같이 요리 수업하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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