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을 열 번쯤하고 알게 된 것들

by 유념

‘소개팅’이란 미혼의 남녀가 분위기 좋은 식당 또는 카페에서 몇 시간에 걸쳐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는 행위를 말한다. 대게 지인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요즘에는 결혼정보회사, 어플, 로테이션 소개팅 등 다양한 루트를 이용하여 만남을 가질 수 있다.

가장 흔하게 이루어지는 지인 소개의 경우, 보통 아래와 같은 과정을 거친다. 오래간만에 만난 동창의 요새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외롭다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절절할수록 좋다. 그 말을 들은 친구는 자신의 지인들을 한 명씩 떠올려보다 잠시 생각에 잠긴 뒤 묻는다.

“나 아는 사람 소개 받을래?”

“뭐 하는 사람인데?”

눈을 반짝이며 상대방의 나이, 키, 직업을 묻고 사진까지 확인한 싱글은 대답한다.

”좋아, 나 소개받고 싶어.”

주선자는 곧장 상대방에게도 의사를 묻고 서로에게 연락처를 전달한다. 주선자의 역할은 여기까지, 이후는 두 싱글 사이의 영역이다. 이제 상대를 샅샅이 탐색하며 연인으로 삼기에 적합한지 결정하는 일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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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소개팅 주선을 취미처럼 즐겼다. 친구들이 외롭다고 하면 오지랖이 발동하여 지인의 지인까지 물어 어떻게든 이성을 소개해주곤 했다. 어느 날은 한 친구가 고맙다며 내게도 소개팅을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스물여덟의 봄, 그렇게 생에 처음으로 소개팅을 하게 되었다. 외롭기도 했고, 아무튼 나도 결혼은 하고 싶었으니까.


때는 코로나 시국, 마스크를 쓴 채로 식당으로 향하는 마음은 심란했다. 마스크를 벗은 내 얼굴을 보고 상대가 크게 실망할까 봐 겁이 났고, 처음 보는 남자와 당최 무슨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지 막막했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도착한 식당 앞, 머리가 뽀글뽀글한 남자애가 서있었다.

“혹시, XX님…?”

사진으로만 본 얼굴에 마스크까지 끼고 있어 긴가민가한 마음이었지만, 식당 앞에 하릴없이 서있는 남자는 그 하나밖에 없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하기에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 뒤 파스타 집으로 들어갔다. 식당에 마주 앉아 확인한 그의 얼굴은 다행히 사진에서 본 그대로였다. 그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조금 걱정이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찾은 카페에서 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그의 이상형은 활발하고 밝은 여자라고 했고, 나는 에너지가 넘쳐 대형견이라고 불리는 여자였다. 그는 아리 애스터 감독의 <유전>을 좋아한다고 했고, 나는 그 영화를 세 번이나 보았다. 그가 하고 싶은 데이트는 방탈출이었고, 나는 방탈출 소모임의 멤버였다. 심지어 그와 나는 같은 산업에서 일하고 있었다.

집에 가기 위해 역으로 함께 걸어가는 길, 그가 내게 한번 더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역시도 우리가 꽤 잘 맞을 것 같다는 예감을 느낀 듯했다. 단번에 일이 잘 풀리는 느낌에 마음이 가벼웠다. 두 번째 만남에서는 이자카야에서 맥주를 한두 잔 마셨고, 그렇게 그와의 연애가 시작되었다.


겨우 두 번 만난 남자와 시작한 연애는 이전의 연애와는 달랐다. 분명 남자친구인데도 그가 어색했다. 그가 마음에 든 건 맞았지만 그렇다고 그를 좋아한다고 말하기엔 뭔가 부족했다. 이전의 연애들은 일명 ‘자만추’로 만났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짝사랑을 하는 기간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한번 연인이 되고 나면 그간 숨겨왔던 마음을 양껏 표현하기에도 모자랐다. 하지만 이 연애는 어찌 된 일인지 할 말도 없거니와 도대체 같이 뭘 해야 할지 조차 고민스러웠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사랑하게 된 남자’가 아니라, ‘사랑해 보기로 결정 한 남자‘였다.


처음의 좋았던 예감과 다르게 우리 관계는 지지부진했다. 어떤 날은 데이트를 하며 하루를 꼬박 보내는 내내 집에 두고 온 일거리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서 밀린 빨래를 하고, 전날 읽다 덮은 책을 마저 읽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싶었다. 그 모든 흥미로워 보이는 일들을 미뤄두고 그와 지루한 식당에서 뻔한 음식을 먹고 흔해 빠진 카페 앉아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괴로웠다.


그즈음부터 이별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 연애를 끌고 가 결혼까지 골인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너무나 괜찮은 남자였고, 성급히 헤어졌다 땅을 치고 후회할까 봐 두려웠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어느새 머릿속은 이별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찼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스스로 답을 해주느라 뇌를 한계까지 사용하는 듯했다. 그즈음에 가족과 해외로 놀러 갔는데, 여행지에서도 틈만 나면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하느라 바빠 아름다운 풍경을 봐도 음울하기만 했다. 상태는 점점 나빠져 갑자기 폭음을 하거나 하루 종일 잠을 자는 등의 기이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결국 그를 받아들이지 못함을 스스로 인정하고 이별을 고했다. 그는 “도대체 뭐가 문제야?”라며 황당해했다. 나 조차도 답을 알 수 없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와 헤어진 뒤, ’역시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구나‘라고 생각하며 다음번엔 더 신중하게 관계를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만 애석하게도, 이런 다짐이 무색하게 같은 상황을 몇 번이나 더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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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도 셀 수없이 많은 소개팅과 몇 번의 연애가 있었지만, 결과는 매번 똑같았다. 처음에 느꼈던 동질감 및 호감은 오래가지 못했고, 차라리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이별했다. 같은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문제는 나에게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남과 헤어짐이 되풀이될 때마다 더 큰 무기력의 파도가 밀려왔고, 부정적인 확신은 내 안에서 더욱 견고해졌다. ‘너는 앞으로 평생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고 혼자일 거야’라는 믿음은 착실히 자리를 잡아 그 어떤 위로와 격려에도 끄덕하지 않았다.


초반의 호감이 길게 이어지지 못하고 연애가 박살 나는 이유를 찾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다. 나의 마음이나 태도가 문제라면, 그 문제를 찾아내어 실체를 확인하고 해결하고 싶었다.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오랜 시간 수많은 글과 일기를 쓰다 보니, 대략 세 가지 이유가 보였다.


첫째, 나는 ’천천히 좋아지는 사람‘과 맞는 타입인데 소개팅은 ’처음부터 괜찮은 사람‘과 이어지는 구조라서 애초에 사랑의 방식이 맞지 않았다. 둘째, 개인적인 시간은 부족한데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연인과의 시간을 아까워했다. 마지막으로, 불안함과 지루함을 잘 견디지 못해 감정에 의심이 들면 관계를 금방 끝내버렸다.


한마디로 나라는 인간이 사랑을 지속하는 것에, 특히 소개팅으로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는 것에 비적합해 보였다. 다만 이러한 고민을 친구에게 토로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네가 정말 잘 맞는 사람을 못 만나서 그래.”

모두들 신기할 정도로 똑같은 대답을 했다. 그들의 앵무새 같은 대답은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고 점점 지친 나는 더 이상 이러한 고민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커져가는 불안을 안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결국 서른이 되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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