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결혼한다

by 유념

오늘도 또 ‘그것’을 받고야 말았다.


점심시간, 예전 팀 동료에게서 커피나 한 잔 하자는 메신저가 도착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향한 카페 어귀, 멀리서 본 그의 손에는 무언가 들려있다. 한 걸음 씩 다가갈 때마다 점점 또렷이 보이는, 희고 납작한 그것은, 역시나 청첩장.


”와, 축하드려요.“


덤덤한 말투로 축하 인사를 건넨 뒤 상투적인 말을 던졌다.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는지, 프러포즈는 어떻게 했는지, 신혼집은 어디인지. 청첩장을 받으면 으레 할 수밖에 없는 질문들이다. ’이것 때문에 갑자기 보자고 했구나. 어쩐지 커피를 사주겠다고 하더라니’하고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조금 민망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 표정으로 열심히 대답하는 그의 얼굴을 보며 “아 진짜요”를 연발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끝났다. 사무실로 올라가는 길, 화장실에 들러 청첩장을 반으로 접어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나는 청첩장을 받는 게 죽도록 싫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청첩장을 받으면 신기한 감정이 먼저 들었다. 대체 얼마나 사랑하기에 평생을 약속하는 건지, 그 관계의 깊이는 가늠되지 않았다. 평생이라는 단어는 무겁고 또 무섭게 느껴졌고,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살아야 할 단 한 명의 배우자를 선택한다는 행위는 상상가능한 영역 밖의 일이었다.

누군가의 결혼식에 초대받을 때면 ‘언젠가 나도 그런 사람을 찾겠지‘ 정도로 막연히 생각하며 축하를 건네곤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조금 이상해졌다. 지인의 결혼 소식이 들리면 자리를 피했고 후 사이좋은 커플이 지나가면 눈을 돌려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 내가 이렇게 변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



통계청에 의하면 2024년 기준 만 30-34세 미혼율은 66.4%이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부부들을 고려하면 실제 미혼율은 이보다 더 낮겠지만, 대략 2명 중 1명 꼴로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수치가 무색하게도 이번 달에만 2개의 결혼식에 출석해야 하며, 1번의 청첩장 모임에 호출당했고, 회사에서는 셀 수도 없이 많은 결혼 메일을 받았다. 결혼하지 않았다는 절반의 인구들은 어디에 꽁꽁 숨어 있는 것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실제로 내가 체감하는 숫자도 이 통계와는 전혀 다르다. 현재 일하고 있는 팀은 총 20명이 소속되어 있는데, 이 중 절반이 만 30-34세 구간에 있다. 그런데 이들 중 8명은 이미 결혼했으며 심지어 아이가 있는 사람도 있다. 남은 미혼 2명 중 1명은 최근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자, 그러면 최후의 1명이 남는데, 그게 바로 나다.


나는 결혼을 준비하고 있지도 않고, 애인도 없다. 통계에 의하면 주변인의 절반은 미혼이어야 하는데, 오히려 혼자인 내가 별종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 그들의 눈에 나는 연애도, 결혼도 하지 못한 측은한 사람일 뿐이다.


“대리님은 결혼 생각 없어요?”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회의실에 모여 농땡이를 부리는데, 갑작스러운 질문이 날아왔다. 대답을 하려는데, 목구멍에 매실장아찌라도 낀 듯 답답해져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저는 결혼 생각 있는데, 할 사람이 없는 건데요.”

“아…”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사람들은 조언이나 격려를 쏟아냈다. 동호회에 가입하라거나, 남자들이 내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다거나, 아직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한 거라는 말. 이미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으며 그저 웃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행동이 없다. 결코 나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이들이 아무렇게나 내뱉는 위로는 더 상처가 될 뿐이다.



-



나는 결혼주의자다. 한창 ‘삼포세대’니 ‘비혼’이니 미디어에서 떠들어 댈 때에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다. ‘평범하게 남들만큼 살자’는 모토를 가진 내게 ‘입시-취업-결혼-육아’로 이어지는 수순은 꽤 괜찮은 가이드라인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결혼은, 왜 하고 싶은지 이유를 묻는 게 무의미한, 올챙이가 자라면 개구리가 되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한 코스였다.


어린 시절부터 겁이 많은 범생이였던 터라 불안함을 잘 견디지 못했다. 그런 성격 덕에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대학 입시와 취업까지 큰 탈없이 해냈다. 철밥통으로 유명한 회사에 입사한 후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7년 차가 되어 있었다. 일도 능숙해지고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인지 슬슬 다음 단계인 ’결혼‘을 달성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피어올랐다. 그런데 아뿔싸, 애인이 없네? 왜 이 나이 먹도록 결혼할 남자하나 마련하지 못했는지.


갓 성인이 된 나에게, 어른들은 사람 보는 눈을 기르려면 연애를 많이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여 그 조언에 충실히 따라 스무 살 무렵 첫 연애를 시작했다. 대학 동기였던 첫 남자친구는 나중에 결혼하자는 말을 종종 하고는 했다. 나는 그때마다 알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내심 시큰둥했다. 스무 살에 만난 남자친구와 결혼하려면 적어도 10년은 연애를 해야 할 텐데 그 숫자는 터무니없이 커 보였다.


‘언젠가 나도 결혼은 하겠지. 그런데 과연 그때까지 너랑 만나고 있을까?’


막연한 마음 탓인지 그 애와는 일 년을 만나다 헤어졌다. 그와 백년해로하지 못한 것은 너무나 당연해서 많이 슬프지도 않았다. 나는 젊다 못해 어렸고, 사랑할 날은 무궁무진했다. 어린 나는 ’앞으로 두 세명쯤 더 만나다, 스물여덟 쯤 만나는 남자친구랑 결혼하면 되겠지‘라고 여겼다. 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던가.


이십 대 중반 무렵 만났던 애인은 여자 문제로 나를 괴롭게 했다. 그는 나를 만나면서도 전 여자친구를 몇 번이나 만났고 그녀와의 연락을 끊지 못했다. 그를 사랑하고 있었기에 용서하기로 마음먹고 만남을 이어갔지만, 잠에 든 옆얼굴을 보다가 갑작스레 차오르는 분노에 그를 흔들어 깨운 날, 우리 둘의 관계가 완전히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몇 년간의 연애를 마치고, 당분간 연애를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사랑한다 속삭이면서 동시에 잔인한 행동을 하는 것이 연애라면 하고 싶지 않았다. 연애에서 눈을 돌린 나는 친구를 만나고, 술을 마시고, 여행을 다녔다. 그 사이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흘러 어느새 스물여덟이 되어 있었다.


인생 계획 상 스물여덟에는 결혼을 약속한 남자를 만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혼자였다. 그래서 연애를 위한 액션을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회사를 다니며 자연스럽게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은 어려워 소개팅을 하기 시작했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주변에 그렇게 만나 연애하다 결혼하는 사람이 꽤 많았기에 나도 금세 결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착각이었던가.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