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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CMIYA Oct 08. 2020

맛·기·담_01. 맛있는 악몽

맛의 기억을 담다_01



 나중에 배가 아플 걸 예상하면서도 그냥 먹게 되는 음식이 있는데요, 저에게는 그게 홍시입니다.


 너무 시거나 껍질을 까야하거나 씨가 많은 과일은 잘 먹지 않지만, 홍시는 너무 시지도, 껍질을 하나하나 까야하지도, 씨가 많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단 걸 좋아하는 제 입맛에는 안성맞춤이지요.

홍시를 살 때에는 보통 여섯 개 정도 들어있는 팩을 삽니다. 그래서 냉장고에 넣고 시원해질 때 즈음 꺼내 물로 한번 씻어내고 접시에 두 개씩 담아 먹습니다.


 중학생 때에 한번 홍시를 먹고 배가 너무 아팠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 뒤로 왜 배가 아픈 것일까 하며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홍시의 하얀 부분에 있는 탄닌이라는 성분이 배변을 굳게 만들어 변비가 생기고 탈이 나는 것이라고 하길래 그냥 그 하얀 부분은 떼어내고 그냥 먹었죠. 한동안은 별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에 두 개 먹던 걸 세 개 먹고, 세 개 먹던 걸 네 개 먹고…….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되고, 체력이 중요한 시기라며 부모님과 보약을 지으러 아버지 친구분이 운영하시는 한의원에 갔습니다. 체질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렸는데……. 이게 웬 말 인지요. 평생 먹지 말아야 할 음식으로 감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너무 놀라 말씀드렸습니다. 하얀 부분을 떼어내고 먹었더니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요. 선생님께서는 고개를 갸우뚱하시며, 맛있어서 소화를 잘 시키나.. 하셨습니다.


 장난스러운 선생님의 말씀에, 그 해 가을,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지만 별일 아니겠지 하고 여느 해 가을처럼 어머니가 마트에서 사 오신 홍시를 먹었습니다. 역시 정말 맛있더군요, 한 입 베어 물자 터지는 달콤한 첫 과즙이 다음 한입을 재촉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허겁지겁 먹다 보니, 네 개 나 먹어버렸습니다. 수능이 다가와 더 장이 예민해져 아침마다 급하게 자주 화장실을 갔던 터라 다음 날이 살짝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이미 먹어 버렸는 걸요, 그냥 그러고 책상에 앉아 공부 좀 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을 땐, 거짓말처럼 항상 일어나는 시간보다 1시간이나 일찍 눈이 떠졌습니다. 배가 아파서요. 그리고 정말 배에 차가운 돌덩이가 든 것 마냥 배가 너무 아파 변기에서 엉덩이를 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날은 학교에 가지도 못했습니다. 제 홍시 사랑이 그렇게나 큰 잘못이었을까요?


 이제는 홍시를 먹으면 그날 밤은 자꾸 꿈을 꿉니다. 그런 일을 겪고도 계속 홍시를 먹냐고요..? 네 먹습니다. 대신 최대 두 개까지만 먹습니다. 두 개도 저에게 욕심인 걸 까요. 배가 아파 화장실을 가는 꿈을 꿉니다.

하도 먹어서 이제는 꿈에서 화장실도 아주 잘 가고 쾌변까지 누리네요.

 

아프지만 그래도 행복한 홍시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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