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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CMIYA Aug 31. 2021

혼·쓰·생_02. 구름 속 드라이브

혼자 쓰는 생각_02



여행 기록 첫 번째.


 무주로 가는 길의 5시간째. 무릎 위에는 시커멓고 무거운 게이밍 (내게 하나밖에 없는 컴퓨터인) 노트북을 올려놓았다. 차량 문 손잡이에 대충 걸쳐 놓은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체리필터의 Happy Day를 들으며 글을 쓰고 있다.


 올해 여름에 들어서부터, 아빠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할 때마다 처음에는 비가 억수로 쏟아졌었다. 그리고 한 시간 즈음 지나고 나면 항상 말끔히 비가 그쳤다. 역시 오늘도. 지금은 비가 그쳤다. 언제 비가 쏟아졌었냐는 듯,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며 세상은 온갖 맑은 빛깔을 다 보여주고 있다. 비가 와서 창문에 차는 습기 방지용으로 틀어야 했던 에어컨도 끄고 나니, 추워서 덮었던 무릎위의 담요도 따뜻함이 보단 푸근함의 몫을 해내고 있다. 역시 아직은 여름이다. 갈색이 약간 섞인 듯한 초록색 산들과 간간히 지나가는 강렬한 색채의 대형 트럭들. 푸근한 색의 낮은 건물들과 우연인지 누군가의 의도인지, 외출마다 옷 색을 맞춰 입고 나오는 부모님. 오늘은 사랑스러운 핑크다.


 비가 왔던 최근의 '아빠 차 외출'에서는 대부분 목적지가 도심이었기 때문에 건물이 높았다. 하늘을 보려면 창문에 볼을 가까이 대고 눈동자만 움직여 위를 쳐다봐야 했다. 근데 여기. 지금 내 옆으로 흘러가고 있는 하동은, 낮은 건물들로만 형성된 내 눈앞의 하동이라는 세계는. 하늘을 보기 위해 창문에 얼굴을 붙일 필요가 없다. 그저 고개를 돌리고 나의 옆을 보면 하늘이 보인다. 마치 내 옆 공간이 전부 하늘인 것 같다. 내가 앉아있는 이곳이 하늘인 것 같다. 아빠 차를 타고 먼 길을 떠나 하늘 속으로 들어온 것 같다. 게다가 낮게 내려온 구름들과 나와 멀리 있는 높은 곳의 구름들 사이의 거리도 보인다. 느껴진다. 평소보다 선명히 느껴지는 그 거리감 덕분에 나는, 우리 가족은 구름들 속에 더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내 옆에서는 노란색의 경쾌한 플레이리스트를 흐르고 지나 낭만고양이가 들려온다. 정열의 빨간색이 떠오르는 노래다.


 도심을 떠나 하늘 속 깊이 들어오기 직전까지 읽었던 책에서 작가는 말했다. 여행이 좋은 이유는 일상에서 놓치는 고마운 것들을 떠올려보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여행의 새로움이 주는 상쾌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오히려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는 건 또 다른 새로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여행에서의 글 쓰기도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노트북 모니터에서는 눈을 떼고 남해가 주는 일상 풍경을 즐겨봐야겠다. 아, 말을 안 했지만 아까 남해의 하늘에 들어왔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플레이리스트 체리필터의 Happy Day를 들으며 처음 쓰는 여행 글은 여기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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