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쓰는 생각_03 / # 줄리아 카메론,「아티스트 웨이」
일주일에 두 권씩 완독! 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던 중, '나'를 알게 되는 과정을 겪은건 우연이었을까.
큰 창문 밖으로 간간히 보이는 커다란 야자수들은 나를 성공한 뒤 최상급 호텔에서 여유를 누리는 자수성가 사업가라는 망상이 둥둥 떠오르게 했다. 현실은 호텔도 아니고 리조트였으며, 큰 창문틀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 덕분에 옷을 두 겹이나 겹쳐 입었었지만, 첫 제주도 여행이었기 때문에.
나는 잔뜩 센티해져, TV는 보기 싫고 잠도 자기 싫고. 뭔가 있어 보이는 그런 걸 하고 싶었다. 딱 이럴 때 읽으려고 가져간 책 두 권 중 한 권이었다. 제목도 이름하야 '아티스트 웨이.' 망상에선 사업가였지만 아티스트이고도 싶었던 건가. 감성적인 상태로 '아아 맞아 내가 잊고 있던 꿈이 있었어. 내가 사실 원했던 건 이런 삶이야.' 하며 70페이지 정도 읽었다. 렌트한 차에서도 멀미도 잊고 꽤나 열심히 읽었다. 이틀 뒤 집에 돌아와서 현재까지 꾸준하게 읽고 있다. 읽는 내내 든 생각은 내가 예상보다 더 작가의 꿈이 간절했구나 였다.
인상적인 문장들이 많았지만 가장 첫 번째로 나를 휘감았던 건 '그림자 아티스트'라는 말이었다. 주위의 강요로 아티스트가 되지 못한 이, 자신의 가치를 너무 낮게 평가해 자신이 예술적인 꿈을 갖고 있다는 사실 조차 깨닫지 못한 이가 그림자 아티스트가 된다는 말. 누구나 내면에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종 혼자 그림도 그리고 매일 일기도 썼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보다 더 어중간한 상태였다. 이런 상태는 보통 뭐라고 부를까. 나의 상황을 명명할 생각도 하지 않던 상황에서 딱 나의 상황을 지칭하는 단어를 알게 되니 마음이 동했다. 생각지도 못한 위로를 받은 기분이랄까? 이런 위로는 일상 속 자존감과도 직결된 포용이라 이따금씩 머리를 감거나 알람 소리를 들으며 깰 때 떠오르곤 했다. 생각보다 나의 상황과 꽤나 부대끼고 있던 현실적인 문제였나 보다.
본 책은 크게 12주간의 미션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 주 한 주 미션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 연습', '묻어둔 꿈을 찾는 연습' 같은 미니 챕터들로 '나'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을 할 수 있게 돕는다. 일주일에 한 번 불렛저널을. 하루에 한 번 일기를 쓰면서도 무언가 본질을 놓친 채 겉핥기만 하는 것 같다는 공허함과 '내가 뭔가를 잊고 있어.'라는 불안감을 자주 느꼈었다. 위와 같은 연습들은 빈칸 채우기나 문답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하나 채워갈 때마다 '아, 나는 이런 것들이 필요했던 거구나.' 하는 포근함과 충만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내 몸에 꼭 맞는 소파에서 무릎을 안고 웅크린 채 불멍을 때리는 느낌이랄까.
나처럼 감정의 변화폭이 크고, 예민한 성격을 가진 친구, 글을 쓰거나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들어 나가고 싶은 친구에게는 꼭 추천을 해주고 싶은 책이다. 이미 한 명에게 추천을 해줬는데 실수로 비슷한 제목의 책이 (아티스트 웨이_중년 이후의 삶에서 창조성과 의미를 발견하기) 있다는 걸 말을 안 해서 졸지에 중년 이후의 삶을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목차는 비슷하다고 하니, 친구도 나처럼 마음의 안식처가 되는 미니소파 하나쯤은 마련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 책은 우연히 알게 되어 깊숙하게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만들어 주었지만, 일주일에 두 권이라는 목표를 이뤄가면서 성장을 한건 우연이 아니다. 모르는게 많고, 날카로울대로 날카로운 예민한 성격과 융통성 없는 성미를 가져 아직도 나의 성장은 어떤 모양을 가졌을지 예상되지 않는다.
그래도 책을 읽고, 필사를 하면서 훵 뚫려 있던 부분이 퍼즐 조각처럼 천천히 메꿔지고 있다는건 확실히 알 수 있다. 나는 천피스도 아니고 만피스로 그려진 퍼즐 속 그림 같아서 아직도 어떻게 생겼는지 반도 모르겠지만 흩어져 있는 부분들을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해서 빠진 조각 없이 완성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