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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CMIYA Nov 14. 2022

혼·쓰·편_01. 엄마를 떠올리는 나의 엄마에게

혼자 쓰는 편지_01 / # 현지윤,「요양원을 넘어 도망친 90세 노인」



엄마 나야. 큰딸. 편지는 오랜만이지?

벌써 11월이야.


11월이 책 읽기 좋은 계절이라 이때 북페어를 하나봐.

어제는 출판 페어에 가서 다양한 작가님들을 만났어.내가 작가님들의 부스 앞에 서면, 물어보지도 진하게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지만 그들의 책을 집어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나한테 해주기 시작하는데 되게 재미있어.



책들이 좋아서 명함을 달라고 하니 처음으로 페어에 참여해서 명함이 부족하다며 머쓱하게 웃는 작가님들도 있었고, 저번에 내가 갔던 다른 출판 페어에 참여했던 부스도 은근 있었어.

여러 번 본 사이도 아닌데, 괜히 반갑고 그렇더라.


기억에 남는 몇몇 작가 이야기들을 해볼게.

이 작가님은 심플한 선 그림으로 달력이랑 책을 만들었던 작가님이었어.

전에 다녔던 회사가 너무 구려서 우울증을 견디며

출근할 때 자신의 모습을 그린 달력이었는데, 어쩜 그 심정을 이리도 잘 표현했지? 하고 공감이 확 되더라. 그 출근하기 싫은 마음들의 모양도 조금씩은 다 달랐는지 그림이 참 다양했어.

엄마도 그 그림들을 보면 내 마음에 공감을 할 거야.

사고 싶었는데 음… 내 방에 두면 나도 우울해질 것 같아서 그냥 말았어.


또 어떤 작가님은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가 25세가 되면 다 인생의 전성기를 펼치기 시작했대.

유명한 작가상도 받고 멋진 활동도 많이 하고. 그래서 자기도 이대로 있을 순 없다! 싶어서 24살 때 부터 25살 때까지 꾸준히 글을 쓰고 한 번에 엮어 에세이 집을 냈어.

나도 25살이잖아? 그래서 공감이 가는 부분이 크니 갖고 싶었는데!

저번 페어에서 너무 지출을 많이 해서 이번에는 딱 한 권만 사야지 하고 간 거라, 말았어.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작가 이야기는 엄마한테 주는 책을 지은 작가 이야기야.


보통 출판사나 공동작업으로 부스를 여는데 이 작가님은 글과 그림, 출판을 모두 혼자 다 하시는 듯해. 부스 이름도 작가의 이름 세 글자였는데, 왠지 더 진심으로 글을 쓰는 사람인 것 같이 보였어. 물론 책의 내용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이 작가님은 외할머니랑 같이 자랐나 봐. 다양한 책들의 대부분이 중장년층이나 노년층과 함께한 콘텐츠를 다루고 있었어. 그리고 내가 산 이 책은 외할머니에 대한 책이래.

두세 페이지 정도 훑어 읽다가 눈물이 나서 황급히 다른 부스로 가서 마음을 추슬렀다? 진짜 웃기지?

그 정신없는 곳에서도 잠깐 읽었는데 갑자기 감정이

확 몰입되면서 눈물이 올라오더라.

얼굴만 더 예뻤으면 배우 할 건데.


너무 슬픈 건 이 작가님이 외할머니에 대한 이 책을 다 쓴, 그 해에 돌아가셨다는 거야.

근데 단순히 마음이 아팠다기보다 음. 좀 내 감정들이 드나드는 통로가 확 닫히는 느낌이었어.


난 너무 큰 감정이 밀려오면 그런 느낌이 들더라?

나한테는 세상의 것들과 소통할 때의 감정이 담기는 <마음 주머니> 같은 게 있거든.

내 마음 주머니에는 문이 있어. 바깥세상이랑 이어지는, 일종의 통로 같은.

근데 그 통로가 닫히는 느낌이야. 확 쪼이면서.

왜, 옛날 복주머니 입구에 있는 끈을 양쪽으로 당기면 입구가 확 조여들잖아. 그런 느낌.


감정들에는 각기 다른 무게들이 있는데, 마음 주머니가 가득 차서 무거워지면 나한테는 더 이상의 공간이 없는 거야.

내 마음 주머니에도 정량이 있는 거지. 내가 담고 있을 수 있는.

근데 그 작가님의 말씀 그 한마디가 엄청 무거웠나 봐 나한테는.

한마디를 듣자마자 내 주머니의 입구가 꽉 조여져서는 목구멍에까지 힘이 꾸욱 들어갔어.

눈물 참을 때 입꼬리를 꾸욱 내리면서 목구멍에도 힘줄 때 같이.



엄마 생일이 있는 달에 외할머니의 제사가 있잖아.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

어떻게 기쁜 날이 슬픈 날이랑 이렇게 가까이 있을 수 있을까?

내가 엄마의 생일에 엄청 대단한걸 해준 적은 없지만,

엄마가 생일을 온전히 행복한 감정으로 누리는 날이 있었을까 걱정도 되고, 그냥… 좀 마음이 아파.

외할머니가 엄마 23살 때 돌아가셨으니까 딱 지금,재경이 나이 때지?


너무 어렸다. 정말.





처음 사려 했던 책, 썬샤인로그의 「엄마가 좋은 기분이에요」



원래는「엄마가 좋은 기분이에요」라는 육아 과정을 담은 그림책을 선물하려고 했어.

그림이 너무너무 따뜻하고 몽글몽글했거든. 아마 그 책을 사도 후회하지는 않았을 거야.

나랑 재경이가 그 책 속 아기처럼 어리지는 않지만. 그 책을 읽으면서 지금도 공감되는 부분도 있을 거고, 추억도 새록새록 피어날 것도 같고…


근데 내가 이 책을 굳이 고른 건 그냥 내 마음이 그렇게 하면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였어.

딱 나에게 외할머니가 있었다면 저랬겠지? 싶은 마음도 조금 있었고, 수원 살 때인가? 친할머니랑 같이 소파에 앉아서 찍었던 사진도 떠올랐어.


이 책을 산 결정적인 이유는 사실 의외일 수도 있는데, 나이가 들고 삶의 후반부를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엄마가 너무 큰 의무감을 갖고 있는 것 같아서야.

나도 재경이도 조금 야망이 있는 편이잖아? 인생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둘 거야!

이런 말도 엄청 자주 하고. 내가 보기엔 엄마도 그런 것 같거든. 엄마가 종종 푸념처럼 “에휴. 이 나이 먹도록 집 한 채도 없고. 한 것도 없고.” 이렇게 말할 때가 떠올랐어.


나는 엄마가 충분히 많은 걸 해냈다고 생각해. 어린 나이에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오롯이 혼자 힘으로 살아냈잖아.

20대 중반에는 혼자 번 돈으로 대학도 들어가고. 후반엔 결혼까지 했고.

나랑 재경이를 엄마 힘으로 20대까지 키웠어.

이룬 게 없긴. 너무 많지. 너무 대단한 사람이야, 엄마.

내가 말 안 한 것들 외에도 정말 많을 거야.

지금도 하나하나 엄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분명 더 있겠지.


그러니까 엄마. 너무 자책하지 마.

그냥 인생의 하루하루를 체험부스라고 생각하고 이것저것 보고, 만져보면서 느끼면서.

그렇게 천천히 담아가자.


그리고 엄마 내가 취직하면 엄마 지금 일 그만두고 나서 하고 싶은 것들 생각해보자.

캘리그래피도 정말 재미있고, 그림 그리기도 생각보다 진짜 재밌을 거야.

내가 미술 전공이라 하는 말이 아니고. 히히.

나는 엄마가 엄마의 재미를 위해 할 취미가 있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요새 스피닝도 같이 할 때 너무 행복해!


잘할 필요 없어. 그냥 해보는 거야. 이것저것.

못 해도 좋아. 재밌잖아!


우리 엄마는 공감능력도 좋으니까 글도 참 잘 쓸 것 같아.

엄마는 생각도 깊고, 신념도 확고하니까.


이미 충분히 잘 해왔어. 이제까지 해온 걸 잘 돌이켜보자.

그리고 칭찬 좀 해주는 거야. 잘 해왔어, 잘 버텨왔어.

갖고 있던 잡동사니들 중에 엄마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툴툴 털어내고

조금 더 가볍게 살아가 보자.


엄마의 인생에 극적인 변곡점이 생기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 좋겠어.

지금도 충분히 큰 언덕을 넘고 있을지 몰라. 내가 둥그런 바퀴가 되어 줄게.

힘 빼고, 같이 넘어가 보자. 산책하듯이.






*ps. 엄마,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건 정말 대단한 일 같아.

누구나 겪는 일상을 독특한 시선으로 옮겨 담아내고, 사람들한테 조금씩 꺼내어 나눠주는 것 같잖아.


가끔 엄마의 시선으로 본 세상이 궁금할 때가 있어.

근데 엄마도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아.

한번 천천히 생각해봐,

나의 시선은 어떤 것들을 담고 있을까,

그것들을 담고서는 마음은 어떤 색을 띠고 있을까.


항상 그렇듯. 정말 많이 사랑해.


# 현지윤, 「요양원을 넘어 도망친 90세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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