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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의 서재 Mar 04. 2022

오늘도 난, 서재에 갑니다

나는 '사서'다

"책 많이 보시겠어요?"


서재를 운영하는 나에게 종종 묻는다. 책에 둘러싸여 있으니, 어쩌면 뻔한 대답을 기대하고 던지는 질문이지 싶다. 그러나 내 대답은 뻔하지 않고 뻔뻔하다.


"아니요. 책을 보는 것을 많이 봅니다."


공간이 주는 힘, 그거 하나 믿고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찾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 달라고 어필하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고 싶었다. 안 그래도 사람 간에 세워진 장벽들이 많은데, 애초에 몇 가지 벽돌 정도는 제거해주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소개팅 나가기 전에 사진 보고 결정하듯이.


목적은 그럴듯하다. 지역과 이웃에 필요한 공간이 되는 것. 더 멋있게 이야기해볼까?

Availability is more important than ability.

영어 라임을 살려서 한국어로 번역해본다면,

"쓸데없음보다 쓸모있음"


아무리 화려하고 탁월해도, 쓸데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작은 것이라도 쓸모가 있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렇게 시작했다. 이 작은 공간이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으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수익을 목적으로 했다면, 그 사람들은 내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들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서재는 반대다. 서재가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공간이다.


종종 손님들이 책을 찾는다.

"혹시, 이런 책 있나요?"

이럴 때 미소와 함께, "네, 이쪽으로 오세요" 하면 얼마나 있어 보일까.

"죄송합니다. 그 책은 없네요."

반복된 멘트, 그 죄책감 속에서 나는 주인에서 손님으로 은근슬쩍 빠져나간다.

'그럼 도대체 있는 책은 뭐야?'


손님이 가시면 검색을 시작한다. 어떤 책인지, 가격은 얼마인지, 평가는 어떠한지, 한마디로 살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살핀다. 그리고 한 사람이라도 볼만한 책이라고 판단이 되면 구입하여 비치해둔다.


그때부터 기다림은 시작된다. 그 손님이 다시 오셔서 그 책을 읽는 순간을 말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손님을 만나지 못한다. 언제 올지 모르는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마냥, 매일 꽃단장만 할 뿐이다.


손님에게는 별다른 의도 없이 툭 던진 한마디였을지 몰라도, 그 한마디가 서재에겐 중요하다. 서재가 존재하는 이유다. 그렇게 책이 채워진다. 그렇게 공간과 시간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지금도 서재는 손님들을 기다린다.


나는 '사서'다. 멋들어진 그런 사서 말고, '사서 놓는 사람'이다. 그게 내 역할이고, 그 역할이 나는 참 좋다.


손님들이 찾는 책이 이미 비치되어 있는 공간이 되는 것보다, 찾으셨던 책을 '사서', 기억해두었다가 다시 오실 때 드릴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쓸모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책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다. 정독도 속독도 못한다. 독서 편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수준 낮은 독서 편식을 하는 사람이다. 대충 훑어보고, 대략 아는 척하는 존재다.


그러나 책을 보는 '사람'을 잘 이해하고 싶다. 서재에서 책을 보기보다, 책을 보는 사람들을 많이 보고 싶다. 책만 있는 공간이 아닌, 사람도 있고 만남도 있고 사건도 있는 그런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싶다.


그렇게 오늘도 난, 책(을 읽는 사람)을 보러 서재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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