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취직했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취직에 성공했던 시기가 생각난다.
기쁜 마음에 부모님은 으레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 자리에서조차 내 자랑을 하시곤 했다.
비록 아주 비싼 음식은 아니었어도 친구들을 불러모아 거나하게 밥도 샀다.
지금은 막상 옷장에서 먼지만 먹어가는 새 양복을 구입하고 근사한 서류가방도 새로 준비했다.
새로 다니게 된 직장 근처의 원룸도 알아보게 됐다.
내 주위의 모든 것이, 또 그간의 노력의 날들이 다 이날을 위해 준비된 것만 같았다.
그러나 취직이 결코 답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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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너무 많이 든다.
벌어들이는 수입이 증가한만큼 이래저래 나가는 돈도 너무 많아졌다.
직장에 처음 발을 디뎠던 순간을 기점으로 사회 초년생으로서의 몇 년간, 나는 통상 200-300만원 정도를 월급이라는 이름으로 받았다.
통계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소득이 1인 기준 264만 5천원 남짓이라는 점을 고려해볼 때, 최소 60-70% 정도의 직장인들은 나와 비슷한 경제 규모를 꾸리고 있는 셈이었다.
직장 동료들의 결혼은 당연하고 그들의 가까운 가족의 안좋은 일까지, 경조사를 챙겨야 할 사람도 또한 챙겨드릴 때 봉투에 넣어야 하는 돈의 크기도 달라졌다. 적어도 직장인이면, 누가 되었든 대학생 때나 넣던 금액을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큰아들에 직장인이라고 달마다 자연스레 부모님 용돈도 드리게 됐다. 안드리다 드리게 되는 것은 쉬워도, 드리던 것을 다시 줄이기는 무척이나 어렵다.
오래 직장 다니려면 병원 다닐 일이 많을 것 같아 들게 되었던 실손 보험비, 자동차의 보험비와 세금 그리고 기름, 더불어서 옷도 이제는 너무 싼 걸 걸치면 젊음이 없는 나의 옷걸이는 이제 조금 티가 난다.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한 친구들과의 만남에선 으레 내가 밥을 사야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다 못해 애인과 주고 받는 선물도 근사한 밥이나 꽃 정도만으로는 조금 민망하고 부족한 시기가 되었다.
누군가는 이 모든 것을 나의 사치로 여기고는, 맘만 먹으면 구두쇠처럼 살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최소한의 인간치레조차 빼버리면, 나는 사회적으로 사실상 죽은 셈이다.
이와는 달리 뉴스와 신문을 통해 접한 서울과 경기도의 아파트들은 내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단위로 거래되고 있었다. 직장생활이, 혹은 취업이 뭘 해결해주지는 않았다. 나의 소비도 그 형태만 조금 달라졌을 뿐 질적으로는 대학생 시절과 아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그리고 내 삶은 여전히 같은 모습을 그리며 굴러갔다.
당연스레 저축하는 돈도 크게 늘지 않았다. 다들 대체 어디서 어떻게 돈을 빼서 저축을 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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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틈이 없다.
밟아야 할 다음 스텝들이 한가득이다.
취업 전에도 바빴지만, 그래도 그것은 방향이라도 헷갈리지 않았던 바쁨이었다.
직장인의 바쁨에는 방향이 없다. 외모, 자기계발, 가장 크게는 결혼까지, 준비해야할 것이 산더미이다. 취직을 안했다면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자연스러운 면죄부가 주어진다.
그러나 직장인의 가슴팍에는 "왜 이런 것을 하고 있지 않느냐, 게으른 영혼이여!"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게으른 직장인은, 그 영역이 어디든 금방 도태되기 마련이다.
첫 아이를 낳은 부장님과 대리님들의 평균 나이를 생각해보면, 나의 자식도 태어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서른에 접어들었다고 마냥 젊음에 취할 시기도 아닌 것이다. 지금의 월급도 빠듯한데 애가 한 명 더 생기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그 때는 정말 '나'란 자아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은 할 필요가 없는 그런 불안감들이 자꾸만 고개를 든다.
그런 점에서, 취업을 한다고 해서 설날과 추석이 편한 것은 아니다.
TV에서 으레 보여주는 어깨 당당히 피고 친척집에 들어가는 장면은 현실에서 잘 연출되지 않는다. 실제 내가 듣는 질문은 오히려 취직을 하고 나서야 '진짜' 시작이다.
결혼을 생각하지 않고 싱글로 산다고 해도, 그럭저럭한 집 하나는 있어야 그래도 그나마 걱정이 없는 싱글이 된다.
취업은 비록 단기간의 목적지이긴 했지만, 종착지는 절대 아닐 것이었다.
사실 시작이라는 의미에 더 가까운 '취업'이라는 말이 뜻하는 바가 원체 그런 것일진대, 취직 자체가 너무 어렵다보니 느끼게 되는 허무함인 것 같다. 직업을 갖게 된다는 것이 '끝' 혹은 '종착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요새 젊은이들에게 취직은 정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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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그만두기도 어렵다!
취직을 생각보다 어린 나이에 하고나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아뿔싸!"였다.
다른 사람들의 귀에는 재수 없게 들릴 수 있겠으나, 온전히 나의 입장에서 나의 인생을 돌아볼 때는 아쉬울 수 밖에 없던 순간이었다. 그만둘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쉬는 시간도 소명해야하는 사회가 되었다.
여행을 떠나고 싶어서, 나 자신을 찾고 싶어서, 다른 일을 시도해보고 싶어서, 나의 열정이 도저히 이 좁은 회사에 담기기에는 너무 거대해서 등, 갖은 이유를 붙여도 다시 당신을 평가할 사람이 받게 될 'FACT 서류'에는 다음의 말만 적혀져 있다: '2년 일하고 난 뒤, 그 후 1년이 공식적으로 설명되지 않음. 그냥 집에서 논 것 같음'
이를 소명해야 하는 것은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 몫이다.
물론 이것도 새로 이력서를 낸 회사가 당신을 면접으로 불렀을때나 가능한 말이다.
1년 간 나를 찾아보는 시간, 몇 개월 간의 유럽 여행, 그런 것들을 나는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어린 나이에 취직에 성공했으니, 이제는 그런 것들이 앞으로도 하기 어려운 것들이 되었다.
그럼 그냥 폼나게 그만두고, 무언가 새로 시작해보면 어떨까?
무엇인가를 하려면 지금과는 다른 어떤 것을 시작해야하는데, 어떤 것이든 시작하는데 있어서 그것이 시간이든 돈이든 비용이 들게 마련이다. 즉, 다른 무엇인가를 편하게 시작하려면 벌어둔 것이 있어야 한다. 이렇다하게 벌어두려면 5년에서 10년은 족히 일해야 하는 것이었다. 어느 문장이 처음이고 끝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렵게, 직장 생활과 도전이라는 말은 그렇게 블랙 코미디의 한 장면처럼 연결되어 있다.
실제로 직장을 이전하는 경우도 취직->멋지게 퇴사->새로운 취직의 형태를 취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취직 -> 경력직으로의 이직 형태를 고른다. 낭만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기에는 이 시대 한국 직장 사회의 기회비용 값은 너무 비싸고 서늘하다. 실패했을 때 회사로 돌아올 수 있는 보험만 있다면 나는 1000만원이라도 내고 보란듯이 도전할 것이다. 나의 뒷감당은 나의 낭만에 박수쳐주던 이들이 해주지 않는다.
대체 어찌할 것인가!
우선 잘리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나를 찾아가야 한다.
단 한 번 사는데 나의 하루에 나의 흔적이 서운할 정도로 적다고 느껴진다. 외계인이 있다면 나의 삶을 회사의 자유로운 부속품 중 하나로 볼 것이었다. 아마 나도 취직에 대해 기대했던 바가 몹시 컸기 때문이었을 테다.
그 어려운 취직을 해낸 것도 결국 나 아니었나?
그럼 취직이 내게 결코 주지 못한 답을 아마 나 자신은 스스로에게 줄 수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