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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Oct 22. 2020

호르몬 앞에서 모든 이는 평등하다






서른에 들어선 나.

감사하게도,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몇 년째 직장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고등학교 동창과 대학교를 함께 나온 동기들 중에는 아직 직장 생활을 시작하지 못한 이들도 많고, 또 훨씬 좋은 기업에 들어간 친구도, 벌써 자기의 사업을 시작해 내 월급이 무척 귀여워 보일 법한 돈을 매일 쓸어 담고있는 친구도 있다.





거북목 생기면 안되니까 나는 나도 모르는 새 항상 위만 쳐다보고 살았다.


"부모 잘 만나니까 저 나이에 차가 다 생기네." 

"저 얼굴로 살았으면 나는 다 때려치우고 모델했다."

"내가 그 대학교 나왔으면 2시간에 한 번씩 그 대학 출신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같은 말들을 참 철없게 많이도 해왔다.


당신의 경제 상황이 조만간에 보란 듯이 나아질 것이라고 위안을 주는 글을 두드리는것은 아니다.

미안하지만 그런 일은 보통의 확률로는 절대 안일어난다.


물론, 그렇다고 현 상황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라는 노예 전도사 같은 글도 아니다.





최근에 당신을 가장 흥분시킨 사건은 무엇이었는가? 


가급적이면 경제적인 생활과 관련된 사건이었으면 한다.

갑자기 떠올리려니 아무래도 생각이 안날 것 같아, 비록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내 얘기를 먼저 해보겠다.


나의 경우, 최근에 소고기를 선물 받은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시대가 너무 좋아져서 이제는 카톡에서 소고기 선물이 다 되더라.

애초 고기 선물을 받아본 적 자체가 없던 나이기에 그 기쁨이 훨씬 컸다.


 

당시 너무 흥분해서 사진을 채 찍지 못했다. 단언컨대, 사진의 고기보다도 더 맛이 훌륭했다. 물론 사진의 고기는 안먹어봤다.



선물 받은 살치살 위에 후추와 소금을 고루 뿌리고, 올리브유를 고기의 모든 표면에 아깝지 않을 정도로 발랐다. 이후 이를 몇 개월전 구입한 에어프라이어에 넣어 15분 정도 작동시키니, 겉은 후추와 올리브유로 인해 바삭바삭하고 속은 아직 빨간 육즙의 본질을 소중히 품고 있는 훌륭한 스테이크가 완성 됐다.



당시 나의 몸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먼저 아드레날린과 도파민, 그리고 엔돌핀과 페닐아틸아민 등이 나와서 내 몸과 뇌의 자극과 흥분을 담당했을 것이다. 이로 인해 나의 이성적인 인지기능은 저하되었을 것이고 감정적인 흥분과 긴장이 나를 감쌌을테다. 화려한 조명이 나를...


특히 페닐아틸아민(phenylethylamine, C8H11N)은 마약성 약물인 암페타민(C9H13N)과 매우 유사한 분자구조를 보인다고 한다. 이 모든 마약같은 호르몬 친구들은, 내가 며칠 간 느껴보지 못했던 흥분의 세계로 나를 데려다 주었을 것이었다.




같은 고기를, 만약 체인점만 10개를 보유한 나의 거부 친구에게 전달해준다면?


내가 선물 받은 소고기는 그렇게 비싼 고기는 아닐지언정, 그렇다고 그렇게 싼 값의 고기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 친구는 이를 한 입 베어물고는 "퉤! 진정 인간들은 이런 것도 고기라고 부른다는 말이냐?"라고 괴성을 내지르고는, 천국을 보여주겠다며 나를 지하 창고로 데려가 3주 가량 숙성되고 있는 알프스 산맥 출신의 소고기를 대령할 것이었다. 음...상상이 너무 지나쳤나.


핵심은, 친구의 '흥분 가성비'가 무척 떨어진다는 것이다.

어차피 인생에서 느끼고 싶은 감정과 감각이 모두 호르몬에 기인한다면, 우리가 신경써야하는 것은 그런 호르몬을 불러낼 수 있는 장치(Trigger)다. 나는 150g에 40,000원 정도의 만족이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데, 부유한 내 친구는 아무래도 같은 수준의 흥분과 만족감을 위해 돈이 조금 더 든다.


이 고기를 만약 바다에서 나흘 간 표류한 뒤 지금 막 구조된 사람에게 건넨다면?

어쩌면 나에게 평범한 모든 일상은 누군가에게는 더 없을 행복이자 만족일 수 있는 것이었다.


혹자는, 모두의 만족감은 사실상 비슷하고 그로 인해 부자들은 도파민의 분비량이 무척 많을 것이라고 한다.

도파민이 과다분비되면, 이성적인 사고가 막히고 현실 감각은 제로가 되는 호르몬 불균형 현상이 나타난다.

당신들이 본 부자는 그러했는가?

내가 본 부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더 많은 돈을 가진다고 해서 도파민이 과다분비되는 것은 전혀 아닌 것이다.

각자의 소비에 맞는 Trigger가 따로 정해져 있다고 보는 편이 맞다.




이쯤되면 "현실에 안주하라!"라는 다소 노예 같은 결론이 나오지만, 나는 이 결론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는다.


불변하는 가장 분명하고도 자명한 사실은,

1)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

2) 그런데 갈 때 순서 같은 건 없다는 것

3) 가기 전까지 몸에서 나오는 호르몬은 인간이라면 모두에게 동일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신경계는 게으르고 영악해서 절대 이전의 행복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한 번 설정된 소비의 총량을 줄이는 것은 거진 새로운 기예를 익히는 수준의 자기 극복이 필요한 일이다. 사업이 잘 되어 더 크게 사업을 벌였다가 실패한 가족의 삶이 유독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 점에서 내가 아무리 현실에 있는 것에서 만족을 찾으려 해도, 똑똑한 뇌는 '이것보다는 조금 더!'라고 외칠 것이었다. 내가 들여다보는 심연을 나의 호르몬도 함께 들여다본다. 호르몬에게는 절대 거짓말을 할 수 없다.

행복과 흥분을 느끼게끔 하는 호르몬은 반드시 '현실+A'가 주어져야만 나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해야할 것은 크게 세 가지이다.


1. 남이 가진 것을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

 -> 호르몬이 언제 나오는지, 무엇(Trigger)이 호르몬을 나오게 하는지가 각자마다 다르므로

2. 오늘의 나보다 티끌만큼이라도 더 나아진 내일을 보낼 것.

 -> 그래야 행복한 호르몬이 가능한 많이 흘러나올테니까 

3. 내일의 삶이 혹여나 어제로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나아진 내일을 감당할 수 있는 나를 만들 것.

 -> 소비가 줄어드는 것은 꽤 많은 고뇌와 시련을 필요로 하므로





호르몬은 마치 심판자처럼 어제의 오늘과 나를 비교해 적절한 즉결 처분을 내린다.


스트레스를 받아 부신피질 호르몬의 균형이 깨지면, 내 몸에서 나를 보호해 주고 에너지를 만들어 주는 사이클이 함께 깨진다. 평온한 삶을 살지 못하는 현대인은 곧 세로토닌이 부족해지는데, 이것은 우울증과 더불어 술과 담배 그리고 도박과 같은 중독의 삶으로 우리를 이끈다. 보통 자정12시부터 새벽 2시까지 분비되는 멜라토닌이 부족한 숙면으로 인해 손상되면, 불면증 뿐만 아니라 감기와 장염 등의 질병이 우리를 괴롭힌다.




그런 호르몬을 다 막아버리면 될 것 같지만, 떨어지는 주가를 보면서, 소리치는 상사를 앞에 두고, 이별을 통보받으면서, 이를 그저 못 본체, 못 들은체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감각적인 인식만 안하려고 노력할 뿐, 나의 의식은 이미 그것으로 가득 채워져있으며 호르몬도 이를 매우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행복은 호르몬에 달렸다.

그러나 호르몬의 분비는 어쩌면 내일을 마주할 당신의 노력에 달린 셈이다.

그 노력에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들어올 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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