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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Nov 03. 2020

국민 의례, 좀 불편합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20대 이상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마음 속으로 달달 외우고 있을 구절이다.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까지만 들려도,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앞니와 입술을 모으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이미 연어가 회귀하는 수준의 본능이자 무조건 반사인 셈이다. 직업 특성 상 평소 국민 의례를 자주 경험하지 않았다면, 현재는 ‘조국과 민족’이라는 다소 민족주의적 색깔이 묻어있는 말이 빠지고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모를 수도 있겠다.



  국민 의례의 정의는 사전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국가나 공공단체의 회의나 행사에서 제일 먼저 행하게 되는 국민적 의례.



한국인들끼리 붙는 스포츠에 웬 국민 의례?


 한국은 프로야구는 물론이고 프로 농구 등에서도 경기 시작 전에 반드시 국민의례를 포함시키는데, 조항의 마지막 부분에는 심지어 ‘연주가 종료될 때까지 개인 돌출행동 금지!’라고 쓰여져 있다. 여기서 전체주의의 행간이 읽히고마는 나는 분명 불만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페트리어트(patriot, 직역하자면 애국자)의 본 고장이자 일명 ‘국뽕’의 나라인 미국에서조차 과한 국민의례는 항상 논란이 되어왔다. 선수들 중에서는 이를 공개적으로 거부하거나, 이를 두고 국가와 지자체를 대상으로 재판을 진행하는 경우도 더러 생긴다. 기본권을 무척 정밀하게 다룬 헌법과 법치주의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합쳐지면 이렇게 무섭다.


영화 '아이언맨'에서 등장했던 patriot 슈트



 한국의 프로 야구 경기를 주관하는 단체, 일명 KBO는 엄밀히 말하면 사단법인 단체다. 

 즉, 국가 대항전 같은 것은 치르지 않는 특수 목적의 법적 단체인 셈이다. 이름에 담긴 ‘K’를 통해 운영 방향이나 지향선 즈음에서 국가라는 개념의 흔적을 아주 조금 만져볼 수는 있겠으나, 이는 무척이나 범박해서 차라리 추상에 가깝다.


 형식이 때로 내용을 채우는 것도 물론 사실이지만,

 도대체 저 커다란 ‘애국’이라는 형상이 한국 프로 야구의 무엇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일까?




국민 의례, 대체 언제부터 왜 있던 건데?


 아이러니하게도 국립국어원의 질의응답 사례에 따르면, ‘국민 의례’ 라는 것의 어원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인터넷에는 온갖 비공식적인 주장들이 넘쳐나는데, 일부는 이 ‘국민 의례’의 유래를 궁성 요배나 기미가요 제창 등의 일제강점기 의례양식에서 찾기도 한다. 유래를 찾으니 더 정이 떨어지게되는 의식이다.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무엇인지, 또 무궁한 영광이라는 무지막지한 개념은 대체 어떤 방향성을 갖고 어디까지 뻗어나가야 하는 깃발인 것인지, 대체 다함께 나 몰래 토론이라도 했던 것인가? 나는 이 문장을 거진 태어난 해부터 수 없이 읽고 또 수 없이 들어보아도 과연 '애국'의 정체가 무엇인지 당최 알기 어려운 것이었다.


한국을 빛내야만 가입할 수 있다는 일명 'Do you know? 클럽'이다. 가입 조건이 무척이나 까다로운 것으로 유명하다.


다시 국민 의례로 돌아와서...


 그러나 국민 의례 자체를 전면적으로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누리는 현재의 민주주의는 한국 근현대사의 피를 마시며 자랐다. 내가 발딛고 서있는 국토 한 뼘을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장군과 의병들 그리고 군인들과 애국지사들이 자기 자신을 희생해왔던 것은 분명 무척이나 감사해야하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불과 몇 십년 전의 과거에는 극장에서 에로영화를 상영할 때 조차도 국민의례를 진행했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급변하는 사회라고 말로만 중얼거리다 끝내지 말고, 이제는 그 빈도와 범위 그리고 의미에 대해서 한 번쯤은 생각해봄직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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