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저희 양꼬치 2인분에 양전골 하나만 주세요.”
피부를 에는 추위가 유독 심술을 부리는 계절이 왔다. 매 해 수능날을 기해 찾아오는 이맘때의 추위는 꽤나 매서워서 그저 하루를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큰 노동을 요구한다. 알맞은 크기로 잘 저며진 양꼬치는 바로 이 계절에 제 꽃을 피워낸다.
추위로 오그라든 손을 비비고, 잘 숙성되어 준비를 마친 양꼬치를 틀 위에 올려준다. 사진처럼 돌이나 탄을 쓰는 집이 있고 그냥 가스를 활용하는 집도 있다. 양념한 양꼬치도 있고 또 그냥 숙성만 된 양꼬치도 있다.
꼬치에 매달려 이리저리 돌아가는 양꼬치는 이윽고 저마다의 기름과 육즙을 짜내 밑으로 떨어뜨리면서 기어코 ‘치익-’하는 소리를 내는데, 무엇으로 구워내든 그 맛이 크게 다르지 않다. 유달리 비싼 고기도 아니고 또 이미 양념에 절여지거나 숙성되어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이리라. 손님들은 대개 근사한 요리를 기대하기보다는 하루의 애환이나 노독을 풀러 양꼬치를 찾는다.
양꼬치를 굽는 틀의 옆면에는 꼬치를 품은 톱니가 제 살을 박아대며 지나가게 될 레일이 준비되어 있다. 요새는 이런 원시적인 느낌의 기계가 아닌 ‘자동 이동’ 기능을 가진 준수한 기계들도 많이 나오는 편이다.
순환을 시켜주지 않아 가운데서만 돌아가는 양고기는 금방 타버리는 편이어서 양꼬치 요리는 생각보다 꾸준한 노동을 요한다. 보통 테이블의 양쪽 방향 모두에 이런 레일이 존재한다. 어디에 앉아도 누구나 양꼬치 구이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된 평등한 노동의 세계를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보글보글 끓으며 요란하게 고추기름을 내뿜어대는 양전골에 숟가락을 담그고, 사레가 들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입으로 받아낸다. 위장에 양꼬치의 투입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시간이 조금 흘러 군데군데 갈색으로 점철되어가는 양꼬치를 빼낸다. 불의 역할이 끝나가는 타이밍이다. 속에 품은 기름을 밖으로 잔뜩 머금은 양꼬치는 이내 제 몸을 빨갛게 빛나는 쯔란으로 내던진다.
처음에는 익어가는 속도가 너무 더뎌서 이것을 언제쯤 구워 누구 입에 붙이나 싶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불판 위의 거치대에 쌓여가는 양꼬치는 그 양을 제법 늘려간다. 쌓여가는 양꼬치만큼 사람 간의 대화도 함께 무르익는다.
대단한 사연이 담기지 않아도 양꼬치는 냄새와 소리 그리고 분위기만으로 충분히 나의 하루를 위로해준다. 빙글빙글 돌아가며 지글지글 소리를 내는 양꼬치를 앞에 두고, 나는 잠깐동안 어린애가 되어서는 제 속에 있던 시시하고 지리멸렬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고마운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