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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마네 Nov 07. 2024

마지막 정거장

내가 가야만 만날 수 있는 그곳


  후다닥 아이를 빼앗듯이 안은 아버지는 마루로 올라섰다. 할머니는 “어서어서…”를 뇌이며 아버지를 채근한다.   

“얼른 애기 아브지한티 안겨 드려라”

아버지는 강보에 쌓인 작은 아이를 아버지의 아버지께 안겨 드린다. 할아버지는 아이를 안으며 고개를 떨구시었다.

“지아브지 손자가 왔우, 손자 안아 보시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향해 외치셨다. 그러나 아이를 안은 할아버지 손이 풀어지며, 할아버지는 고개를 떨구셨다.

  할아버지는 작은 쪽문이 열리면 따스한 햇볕이 드는 마루안쪽 안방에 앉아 하나뿐인 손주를 애타게 기다리셨다. 아버지는 딸만 넷을 낳고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오랫동안 한집에 살던 조부모님을 떠나 동생들을 데리고 다른 동네에 따로 살게 되었다. 조부모님은 작은 아버지내외와 같이 사셨다. 아직 아이들이 없던 작은 아버지네와 나는 살게 되었지만 할아버지는 큰 손주이며 하나뿐인 막냇동생을 기다리셨다.

  할아버지는 시름시름 앓고 계셨다. 이른 점심상을 받으신 할아버지는 사력을 다하고 계셨다. 이생을 떠나시기 전 하나뿐인 손주를 만나시려고 있는 힘을 다하시는 듯했다. 음력 사월 초파일, 이른 점심상 앞에서 자꾸 고개를 떨구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본 할머니가 큰손녀인 나를 불러 이르셨다.

  “얼른 가서 엄마한테 갓난쟁이 동생 훈이를 데려 오라 해라” 하셨다. 흰 바지저고리를 입으신 할아버지의 모습을 뒤로한 채 부모님 댁을 향해 할머니의 말씀을 전하러 떠났다. 내가 집 밖을 멀리 벗어나기 전에 부모님은 도착했다.

  봄을 맞이한 농부들의 일손은 분주하다. 들에는 모내기를 위해 늦은 봄 가운데 못자리판을 만드는 때이다. 언덕배기에 밭두렁을 일구고 온갖 씨앗을 뿌리려 준비에 바쁜 철이다. 할아버지는 아카시아 향이 날리는 음력 사월에 집안에서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천국을 향해 가셨다.

  아버지가 숨을 거두신 곳은 병원이라 했다. 추석명절, 외국에 머물던 나는 한국을 향해 오는 비행기 안에 있던 그 시각이었다. 새벽녘, 아버지는 하늘나라에 가셨다. 아버지는 누구에게도 배웅받지 못한 채 혼자 세상을 떠나셨다는 말에 아연했다. 아버지는 파킨슨병으로 요양병원에 계셨다. 추석날 남동생은 아버지를 병원에 모셔다 드리고 헤어져 가고, 아버지는 주무시다 새벽녘에 떠나셨다 한다. 잠자듯 주무시듯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영안실에서 뵈었을 뿐이다. 오랫동안 술을 지나치게 즐기시며 심하게 가족들도 괴롭히셨다.

  아버지에게 시달림을 많이 당하던 엄마는 삶이 고단하고 힘들었다. 술을 드시지 않으면 각시 같다던 아버지는 흔히 말하는 ‘ 원수 같은 술’이 말썽이었다. 그런 아버지와 엄마는 끝까지 같이 살아주셨으니 어머니에게 깊은 감사를 올린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지셨다. 여린 몸매에 암이라는 병과 3년을 싸우시고, 돌아가시기 전 요양병원에서는 식음이 불가했다. 듣고 말하는 것이 자유롭지 못하셨으니 삶이란 말할 수 없는 고행임을 ….

  엄마를 뵈러 아침 설거지를 마치고 기차역을 향했다.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의 요양병원에 주중에 두세 번 엄마를 뵈러 가는 길은 만감이 교차되어 왔다. 엄마의 귀에 이어폰을 꽂아 찬양을 들려 드리고 퉁퉁 부은 손발을 주물러 드리며 더는 고통받지 마시고 편안히 안녕히 가시라 했다.

  맏딸로 엄마에게 받는 압력은 우리 시대에는 누구에게나 많았다. 경제력 없는 아버지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려는 엄마는 강한 엄마로 살 수밖에 없었다고 이해는 되었지만, 우리가 받은 어려움이 엄마가 더 가중시켜 주었음을 나중에 알았다. 어머니의 통장 잔고와 상관없이 우리는 학교에 내는 수업료를 매번 꼴찌로 내야만 했다. 학교에서 받는 수모로 엄마를 늘 원망했다. 어디 나뿐이던가 동생들에게도 엄마는 같은 일을 번복하셨으니….

  아버지와 어머니는 금슬이 좋으신 건 아니었다. 아버지의 천성은 참 맑으셨다. 술을 드시면 자신을 잊으시고 모든 사람을 괴롭히는 일이 다반사였다. 어머니의 삶은 고단했지만 할아버지는 엄마를 많이 아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머니의 영특함이 할아버지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렸고 고생하는 며느리를 늘 안타까워하셨던 것이다.

  시끄러운 차 안에 전화벨이 울렸다. 내게 걸려온 전화였다. 많은 일행들이 있었지만 내게 걸려온 전화로 모두가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의 하나뿐인 손자, 아버지의 하나뿐인 아들, 하나뿐인 남동생이 바쁘게 이른 아침에 떠났다. 나는 그와 작별인사도 할 수 없었다. 기다리면 올 수 도 없는 곳을 향해 나이 든 누나보다 앞서 떠났다. 내가 가야만이 그를 만날 수 있는 곳으로 갔다.

  얼마 전 작가들의 문학기행에 동행했다. 황간역에 들렀다. 시가 있는 역이라 했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며, 기다리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삶은 시가 되어 위로하기도 하며 아름다운 추억으로 여행하도록 한다.

  그리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역이다. 내가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떠난 역들은 각기 다르다. 나는 그들을 만나러 그곳에 가면 만날 수 있을까. 사람이 떠난 마지막 정거장에 가면 만날 수 있는 행운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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