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 향이 스치기만 해도 솔솔 난다. 아직은 키가 덜 자란 깻잎 밭고랑에 섰다. 얇고 적당한 크기로 자란 잎들 중에서 한 잎 ‘톡’ 꼭지를 잘랐다. 진한 향이 콧등에 앉는다. 흠흠…. 코가 벌름거려진다. 바람도 같이 하자며 깻잎밭에 서성인다. 어루만지듯 바람이 밭 가운데로 들어서자 깻잎들이 흔들어 댄다. 바람이 간질이기라도 했단 말인가.
산자락에 두어 이랑을 얻은 텃밭이다. 그중 깻잎은 한 이랑이나 심었다. 노지에 심은 들깻잎이라 키가 다 자라지 않아 잎을 따는데 허리가 고생이다. 하지만 깻잎은 향을 진하게 내뿜는다. 어찌 인공적인 향에 비할 데 있을까. 온갖 잡념을 식혀주는 진한 향으로 머릿속을 식혀준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조차 향기가 막아낸다.
양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잎을 따서 욕심만큼 바구니에 담아 보면 뒷일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견물생심으로 딸 때는 좋은데 집으로 가져가 일을 하려면 버거웠다. 준비해서 갖고 간 세탁소 비닐 덮개는 안성맞춤 봉지이다. 가득 따면 우리가 먹고도 넉넉히 옆에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깻잎은 여러 가지 식재료로 충분하다. 김치로, 찜으로, 볶음으로, 부침등으로, 충족시켜 주었다. 가지런히 개켜진 잎들의 꼬투리를 빨간 실로 묶은 깻잎들을 작은 봉지에 담아 만원이지만 만족하지 않았다. 봄부터 가꾼 깻잎은 우리 밥상을 풍족하게 하고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한다. 열 가지도 넘는 효능이 있다 한다. 어려서부터 먹고 자라 익숙한 향과 맛이 몸에 필요한 영양을 채워 준다 하니 가꾸며 더욱 좋다. 나이 들어 먹는 깻잎을 여려가지 요리 재료로 활용하여 이웃과 지인들에게 선물을 했다.
깨끗하게 잎을 씻어 소쿠리에 가득 담았다 물이 빠지는 소리와 함께 향이 온 집안에 가득 찬다. 물이 빠지는 동안 맛국물에 간장 약간과 입맛에 맞는 액젓에 붉은 고추를 갈아 마른 고춧가루와 섞었다. 기본양념을 고루 섞어 색을 입힌다. 가늘게 썬 당근, 보라색, 흰색양파, 초록에 흰머리의 쪽파를 잘라 골고루 섞어 조화롭게 만든다. 꼭꼭 눌러 담은 깻잎이 통으로 가득하다.
나누는 기쁨은 가꾸는 즐거움 못지않게 행복하다. 맛을 이야기하며 받는 사람이 감사로 표현할 때 노동의 힘듦이 사라지고 또다시 가꾸고자 하는 희망을 낳는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진초록으로 코끝을 향기롭게 해주는 깻잎은 소임을 충분히 해 내고 있다.
지난여름은 깻잎을 나누는 잔치 속에 보냈다. ‘꽃보다 아름다운 게 사람이라 한다.’ 자연이 주는 진한 향은 아름다운 사람의 향기로 변화시키게 한다.
내가 만들어 내는 향기는 어떠할까. 깻잎은 상처가 날 때 더 행복한 향이 나는 것임을 느꼈다. 사람은 상처의 고통으로 원치 않는 독한 향기를 뿜어 낸다. 나의 아픔도 남을 원망하는 악취를 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