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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석 Oct 13. 2024

디지털 갑질: #2 모두가 피해자

고객과 직원, 조직 모두가 디지털 갑질의 피해자이다

아래 사례는 이 글을 쓰는 동안 나에게 발생한 일이다. 우리 모두는 일상 생활과 업무 중에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디지털 갑질은 우리 생활에서 자주 발생한다. 게다가 활발히 진행 중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으로 인해 점점 더 자주 발생하고 있다.


커피 전문점에서 키오스크를 통한 주문 과정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메뉴를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복잡한 메뉴 구조로 인해 10분 이상 대기하는 일이 발생했다. 키오스크 사용이 어려워지면서 줄이 길어지고, 일부 고객들은 결국 카운터에서 직접 주문하기 시작했다. 이후 주문 방식이 혼재되어 직원들도 혼란스러워했고, 호출기나 번호를 통해 음료를 받는 과정에서도 문제들이 발생했다.


장기렌터카 신청 과정에서 온라인 견적을 확인하고 영업사원과 통화를 했지만, 해당 직원의 신원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고객센터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없다며, 고객은 결국 인터넷 사기를 의심해 다른 회사와 계약을 하기로 했다.


아파트 입구에서 동호수를 말하고 차량을 등록한 후 주차장으로 갔지만, 주차장 입구에서 다시 키오스크를 통해 동호수를 입력해야 했다. 이중 확인 절차와 키오스크 사용이 복잡해 방문자가 당황하고 오래걸리면서, 뒤에 대기한 차량들까지 많아지는 혼란이 종종 발생한다.


위 사례들에서 디지털 갑질의 피해자는 누구일까? 물론 가장 큰 피해자는 고객이다. 커피 전문점에서는 불편한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고객, 장기렌터카에서는 신원이 불확실한 영업사원과 시간을 낭비한 고객, 아파트 주차장에서는 방문 차량과 방문 차장이 주차장 입구에서 헤매는 동안 뒤에서 기다려야 하는 주민들이 피해자다.


디지털 갑질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당연히 고객이다.

하지만 피해자는 고객만이 아니다. 키오스크와 카운터 주문을 확인해야 하는 커피 전문점 직원, 본인이 직원임을 증명해야 하는 장기렌터카 영업사원, 소프트웨어가 지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고객센터 직원, 방문 차량의 입장이 지연되어 불평을 들어야 하는 아파트 관리소 직원도 피해자다.


아래 공항의 셀프 체크인 키오스크 그림에서 어색한 점을 찾아보자. 고객이 스스로 체크인할 수 있도록 만든 시스템에 직원이 배치된 것은 충분히 이상하다. 더욱이 이 이미지는 항공사가 신문사에 배포한 홍보 이미지다. "친절한 직원이 배치된 것이 무슨 문제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키오스크 도입의 본래 목적은 말 그대로 셀프 체크인이다. 회사의 목표는 고객의 요청을 빠르게 처리하고 인건비를 절감하는 것이다.


고객이 스스로 사용해야하는 키오스크에 배치된 직원 (출처: 문화일보 2019-09-06)


직원을 배치하는 비용을 차라리 고객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투자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나은 전략이다. "한 달 혹은 석 달만 직원을 배치한다"는 계획도 비현실적이다. 왜냐하면 키오스크는 공항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일부 자주 출장 가는 고객을 제외하면 대다수 고객이 익숙해질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은 한 골프 연습장의 주차 등록 키오스크 화면이다. 고객들이 직접 자신의 차량을 검색해 주차 할인을 신청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나도 이 키오스크를 이용해 주차 할인을 받으려 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머뭇거리고 있자 결국 직원이 나와 사용법을 말로 설명해주었다.  

골프연습장의 주차할인 키오스크에 직원이 도움말을 추가로 표시하였다

이제 사용 순서와 주의사항을 안내하기 위해 화면에 붙어 있는 숫자, 글자, 화살표를 주목해보자. 이 키오스크의 도움말은 누가, 그리고 왜 추가했을까? 분명 고객들이 스스로 사용할 수 없어 직원에게 사용법을 묻는 일이 반복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직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원래도 할 일이 많은데, 주차 등록을 못 하겠다는 고객들이 계속 찾아왔을 것이다. 수십 번씩 사용법을 설명하는 상황이 반복되었고, 결국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움말을 기획하고 관리자의 승인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 사례는 단순하지만 디지털 갑질로 인해 직원이 겪는 어려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잘못 설계된 소프트웨어 때문에 직원은 하지 않아도 될 업무를 반복적으로 수행해야 했고, 문제 해결 방안을 고안해야 했다. 하지만 그 해결책마저도 불완전해, 고객의 불평을 계속 듣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으며, 해당 업무를 여전히 수행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커피 전문점의 매장 직원, 렌터카 회사의 영업사원과 고객센터 직원, 아파트 관리소의 경비원, 그리고 공항 셀프 체크인 키오스크에 배치된 직원들도 모두 비슷한 경험을 겪고 있다.


직원들은 디지털 갑질로 인해 가장 큰 고통을 겪지만, 정작 그 고통은 외면당하고 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직이나 회사는 어떨까? 커피 전문점은 주문을 받는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지만, 주문 시간이 길어져 고객 불만이 증가하고 직원의 업무가 복잡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장기렌터카 회사는 고객을 잃어 매출과 수익에 타격을 입고, 아파트 운영사는 방문 차량을 위해 인터폰으로 문을 열어주는 직원을 배치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많은 주민들이 방문 차량으로 인해 불편을 겪었다는 불만을 제기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회사는 비즈니스 손실을 겪는다.


디지털 갑질로 인한 조직의 피해는 단순한 예산 낭비를 넘어, 고객 이탈, 불만 증가, 브랜드 이미지 손상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키오스크만 사용하는 커피전문점은 노인 고객을 잃었고, 전화 예약을 받지 않는 일식당은 예약하려던 고객을 놓쳤다. 렌터카 회사는 영업사원의 신원을 확인해주지 못해 고객을 잃었으며, 아파트 주차장에서 방문 차량 때문에 기다려야 하는 주민들은 불만이 커졌다. 또한, 고객의 제품 문제를 반영하지 않고 방문한 AS 기사 때문에 시간 낭비를 한 고객은 해당 회사의 브랜드에 실망했다. 모든 기업은 고객 확보와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마케팅을 하고 고객센터를 운영하지만, 잘못된 디지털화는 고객 이탈과 브랜드 손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디지털 갑질로 인한 조직의 피해는 단순한 예산 낭비를 넘어, 고객 이탈, 불만 증가, 브랜드 이미지 손상으로 이어진다.

직원들의 업무 부담과 생산성 저하로 인한 비용 증가도 심각하다. 업무가 복잡해져 실수가 발생하는 커피 전문점 직원, 아파트 방문객의 주차 게이트를 열어줘야 하는 직원, 셀프 체크인 키오스크에서 고객을 도와야 하는 항공사 직원, 주차 할인 시스템 사용법을 안내해야 하는 골프 연습장 직원 등이 그 예다. 이러한 추가 업무는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를 떨어뜨리고 조직의 효율성을 낮춘다.


결국, 디지털 갑질은 조직 차원에서 투자한 비용을 낭비하고, 운영 비용을 증가시키며, 고객과 직원을 잃는 총체적 난국으로 이어진다. 그 손실은 매우 크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투입되는 예산은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에 달한다. 또한, 직원의 추가 업무와 생산성 저하로 인한 비용도 막대하다. 이를 계산해보면, 예를 들어 전국 읍면동사무소에서 공무원 한 명이 매일 1시간씩 불필요한 업무를 수행할 경우, 그 비용은 연간 약 256억 원에 이른다 (기준: 전국 3,508명의 공무원 × 연봉 5,848만원/250일/8시간 × 250시간, 출처: 행정안전부 읍면동 하부행정기관 현황, 한국납세자연맹 공무원 연봉 평균). 무엇보다 고객 이탈과 브랜드 손상은 금액으로 환산하기 어렵다. 참고로 이동통신사에서 고객 한 명을 확보하는 데 드는 마케팅 비용은 2014년 기준 약 405만 원이다 (출처: 조세일보, 2014.10.1).


위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디지털 갑질의 피해자는 고객, 직원, 조직 모두이다. 고객에게는 불편함을, 직원에게는 업무생산성 저하를, 조직 전반의 경쟁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힌다.


(다음 글로 연재합니다. 브런치 매거진은 https://brunch.co.kr/magazine/digitalgapjil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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