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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석 Nov 07. 2024

디지털 갑질: #5 끊임없이 높아진 고객의 기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으로 인해 고객의 기대는 높아졌고, 실망 역시 커졌다

지하철을 타고 도착역을 급하게 확인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중앙 모니터는 광고를 보여주거나, 도착역과 환승 정보가 몇 초간만 번갈아 표시되기 때문에 빠르게 확인하기가 어렵다. 특히 환승역에서는 환승 정보가 여러 번 나오므로 도착역 정보가 표시되는 시간은 더욱 짧아진다. 모니터가 두 대가 있어도 동일한 정보가 나와서 도움이 되지 않고, 혼잡한 객차에서는 창밖도 볼 수 없어 답답하다. 유럽의 지하철이 도착역 이름만 반복해서 안내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중요한 정보가 나오지 않아 불안한 마음에 허겁지겁 내리거나 목적지를 지나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는 디지털 갑질의 한 예이다.


지하철 객차 중앙 모니터 두개에 도착역과 환승 정보, 출입문의 위치, 영어 안내가 순서대로 나와서 급하게 지금 도착역이 어디인지 확인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게다가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이동 중에 스마트 폰에 집중하기 때문에 (심지어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이어폰을 끼기도 한다) 목적지 역을 지나치는 경우가 잦아졌다. 도착역을 놓쳐서 낭패를 본 사람들 중 일부는 서울교통공사에 민원을 올린다. 최근 2년간 안내 화면 관련 민원이 25,000건 올라왔다고 한다 (출처: 한국일보 2023/1/23,지하철 도착역 정보 대신 광고 도배… "매일 타도 헷갈려요”). 접수된 불만은 전체 불만의 10 퍼센트 이하로 가정한다. 90 퍼센트 이상의 고객은 참고 넘어간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고객의 소리 Voice of Customer는 빙산 모델을 사용한다. 도착역 안내 화면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25만명 이상이라고 보인다.  


우리는 몇 번 해봐서 알고 있다. 인터넷 뱅킹을 위한 공인인증서를 다시 받는 것, 신분증의 주민번호 뒷 여섯자리를 가려야 하는 것,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ARS에 정확하게 번호를 4~5회 눌러야 하는 것, 영화관에서 키오스크로 카라멜 팝콘과 콜라 두 개 구운 오징어를 구매하는 것,  처음 가는 골프연습장에서 주차 등록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성가신 일인지 알고 있다. 요즘에는 은행 매장에 가야할 일이 생기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은행 매장에 가면 대기 고객 수는 많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 노인들이다. 친절한 직원들은 노인 고객의 업무를 처리하고 앱으로 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그 후에 상품 추천도 한다. 그러다 보니 줄은 길지 않지만 내가 기다리는 시간은 꽤 길다.  


한 소프트웨어가 의도한 대로 잘 작동하거나 좋은 경험으로 마치면 신뢰감이 형성된다. 하지만 그 반대이면 불신의 감성을 심어준다. 불신이 커지면 그 상품을 피하게 되고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게 된다. 사용성 전문가인 스티브 크룩은 그의 저서 “사용자를 생각하게 하지마(2013)에서 호감 저장고로 설명했다: (1)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 숨겨두거나, (2) 사용자를 귀찮게 하거나, (3) 필요하지도 않은 정보를 물어보거나, (4) 가식적인 표현으로 사용자를 기만하거나, (5) 홍보용 장치로 작업을 방해하거나, (6) 사이트가 아마추어 수준으로 보이면 호감이 줄어든다.


반면 (1) 사용자가 가장 많이 하는 활동을 명확하게 드러내어 쉽게 사용할 수 있게 하고, (2) 사용자가 알고자 하는 정보를 공개하고, (3) 사용자의 수고를 최대한 줄여주고, (4) 서비스 제공자의 노력이 느껴지고, (5) 궁금해할 만한 사항을 예측하고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5) 인쇄용 페이지처럼 편의성을 높여주는 요소를 제공하고, (6) 오류가 발생했을 때 쉽게 회복할 수 있게 하고, (6)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을 때는 사과하면 호감도가 상승한다고 설명한다.  


호감 저장고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고 다시 채울 수 있지만, 호감 저장고가 바닥이 날 경우에 고객 불만 문제가 발생한다. 때로는 하나의 문제 때문에 호감 저장고가 비어버릴 수도 있다. 호감 저장고가 바닥이 나면 원인 모를 실수를 연발하게 되고 그 상품을 싫어하게 되며, 분노의 임계치를 넘어서게 된다. 고객센터에 연락을 하거나 부글부글 끓다가 어딘가에 화를 내는 현상이 발생한다.  


고객 불만으로 인한 문제와 그 해결의 중요성은 영국디자인협회에서 수행한 응급센터 디자인 사례가 있다 (출처: 영국디자인협회 https://www.designcouncil.org.uk/fileadmin/uploads/dc/Documents/a%2526e_10steps.pdf). 영국 국립병원 National Health Service에서 연간 5만9천건의 물리적 공격이 발생하며 이로 인해 6천9백만 파운드의 인건비 손실이 발생하고 있었다. 이 과제의 목표는 병원 응급센터에서 의료진에 대해 발생하는 폭력과 폭언을 줄이는 것이었다. 환자와 환자 가족 또는 지인들이 불신의 감정이 발생하거나 이것이 해소되지 않는 터치포인트들을 발견하고 해결안을 찾아서 적용하였다.  


많은 회사들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추진하는 이유는 고객의 눈높이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일부 회사들은 기존의 방식을 바꾸어서 비즈니스와 고객경험, 직원의 일하는 방식을 혁신하였고, 고객들은 그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3~4일 걸리던 배송을 하루만에 받은 후에는 오래 걸리는 배송을 답답해할 수 밖에 없다. 며칠 걸리던 대출 심사가 몇분으로 줄어들었고, 며칠 걸리던 고객불만 처리가 몇 분만에 진행이 되는 경험을 한 이후에는 그전의 서비스는 허접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다. 가트너는 이를 “디지털은 고객의 모든 기대를 현실화했으며, 모든 것을 원하는 고객을 만들었다”로 정리하였다 (Gartner IT Symposium, 2020). 소프트웨어가 장악하는 세상에서 잊혀지거나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는 고객의 기대를 뛰어넘는 경험을 제공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고 고객의 기대를 맞추지 못하는 경험을 제공하면 고객의 실망감은 더 커지며 이는 더 큰 고객 불만으로 나타난다.  


고객의 기대는 디지털 전환으로 인해 끊임없이 높아져왔다. 그만큼 잘못 만들어진 소프트웨어에 대한 실망도 크다.

여기에 중요한 기준이 제시된다. “고객의 기대“이다. 고객의 기대는 계속 높아진다. 엔트로피가 계속 높아지는 열역학 2법칙과 동일하다. 스마트폰 이전 그리고 COVID-19 이전의 고객의 기대와 지금은 매우 다르며, 활발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으로 편리한 상품들이 계속 출시되는 요즘은 더 빠르게 기대치가 올라가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가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는 기대치를 만족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뉘어진다.  


이 관점으로 보면 우리나라 일류 IT 회사들은 시장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많은 노력을 해왔기에 고객의 기대를 충족하고 있다. 하지만 기능적 관점의 소프트웨어 개발에만 집중한 정부서비스, 금융서비스, 이제 막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시작한 유통 (식당 포함), 의료, 교육, 여행 등은 고객의 높아진 기대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고객은 꾹 참고 인내하던 예전의 고객이 아니다. 높아진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디지털의 가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고객이다. 더 까다로우며 더 많이 불편함을 표현한다. 좋은 경험은 한번 겪어보면 그보다 좋지 않으 경험에는 더 크게 실망한다. 이는 좋은 경험의 불가역성으로 설명된다.


좋은 경험은 불가역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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