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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석 Nov 12. 2024

디지털 갑질: #6 직원들의 강한 저항

불편한 소프트웨어로 인해 회사는 비용을 낭비하고 직원의 역갑질을 당한다.

다음은 2018년 4월 9일자 중앙일보 기사 내용이다.


“지난 6일 오전 9시 30분. 삼성증권의 한 주니어급 직원이 실수를 저지른다. 우리사주를 가진 직원에게 배당을 지급하면서 단위로 ‘원’ 대신 ‘주’를 입력했다. 주당 현금 1000원이 아닌 삼성증권 주식 1000주가 각 계좌로 입고됐다. 우리사주를 가진 약 2,000명의 직원에게 나가야 할 28억원의 현금 배당이 28억 주로 바뀌어 입금됐다. 금액으로는 110조원이 넘는다. (중략) 이로 인해 삼성증권 주가가 순간적으로 11% 넘게 폭락했다.”


직원의 실수로 인해 110조의 손실이 발생한 삼성증권 (출처: 파이낸셜뉴스, 2018.05.08)

이 직원의 실수는 ‘20050 우리사주종목정보입력’ 화면의 ‘처리구분’ 항목에서 ‘7. 일괄대체입금’을 선택해야 했지만, 실수로 ‘1. 우리사주’를 잘못 선택하면서 발생했다. 옵션 하나를 잘못 선택한 이 사소한(?) 실수로 인해 110조 원의 주식이 잘못 지급된 셈이다. 이로 인해 회사의 주가는 폭락했고, 금융감독원의 지적을 받게 되었다. 회사에 다녀본 사람이라면, 이 실수가 직원과 그 상사들에게 얼마나 큰 곤욕을 안겼을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실수가 얼마나 자주 일어날까? 구체적인 통계는 공개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기업 비밀로 덮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수로 인해 해고 위기에 처한 사례는 종종 들을 수 있다. 직원들은 작은 실수도 피하려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불편한 소프트웨어나 잘못 설계된 업무 시스템을 본능적으로 거부하게 된다.


이 글에서는 직원들이 디지털 갑질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직원들은 잘못된 소프트웨어 때문에 이중, 삼중의 고생을 겪는다. 많은 소비재 제품들은 고객이 선택할 수 있지만, 회사가 독점적으로 제공하는 몇몇 소프트웨어를 제외하고는, 고객은 디지털 갑질을 경험하면 그 소프트웨어 사용을 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키오스크 사용이 어려운 노인들은 키오스크가 없는 매장을 찾는다. 그러나 직원들은 상황이 다르다. 소프트웨어 선택권이 없는 그들은 회사가 구입한 소프트웨어와 자체 개발한 업무 시스템을 사용해야만 한다.


또한, 직원들은 업무 수행을 위해 최적의 도구가 필요하다. ‘많은 업무를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는 효율적인 도구를 원하는 이유는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오랜 시간 일하는 것이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업무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직원들은 불편한 소프트웨어와 잘못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강하게 저항한다. 새로운 업무 시스템이 많은 업무를 빠르고 정확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으면 사용을 거부하고, 회사에 들키지 않게 조심하며 이전에 쓰던 소프트웨어를 계속 사용한다. 익숙한 방식이라 약간 비효율적이더라도 업무를 진행할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러나 회사가 예산을 투입해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도입했는데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다면, 이는 결국 예산 낭비가 된다.


소프트웨어의 변화는 UX의 변화를 의미한다. 모든 사용자는 기본적으로 UX의 변화를 꺼린다. 새로운 UX를 배우는 데에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UX는 기존보다 유의하게 좋아야 하며, 사용자들이 이를 배우는 데 필요한 노력보다 더 큰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만약 기존 방식보다 좋지 않거나 조금 나아진 정도라면, 사용자는 거부하게 된다.


게다가 '컨수머라이제이션(Consumerization)'으로 인해 이러한 회피 현상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컨수머라이제이션은 업무용 소프트웨어도 일상에서 사용하는 UX 수준을 기대하는 현상이다. 요즘의 직원들은 과거와 달리 불편한 업무용 소프트웨어의 UX를 인내하지 않는다. 특히, MZ세대로 불리는 신입 및 경력 사원들은 편리한 소프트웨어에 익숙한 세대다. 이들의 컨수머라이제이션 현상은 더욱 강하다. 예를 들어, 한 그룹사의 신입사원 간담회에서 한 신입사원이 "업무를 잘하고 싶지만, 업무 시스템이 너무 많고 복잡해서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경영진에게 건의한 일이 있었다. 이런 일은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 큰 부작용이 있다. 예로 과거 근무하던 회사에서 미국의 고객사에 출장을 간 적이 있다. 출장의 목적은 그 회사에서 판매한 검사 장비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 회사의 공장장은 뜻밖의 말을 했다.


“이 장비를 (유일하게) 사용할 줄 아는 직원이 퇴사해서 그냥 방치하고 있어요.”


회사를 나서면서 그 직원의 행방을 그 지역 영업 담당자에게 물어보았다. 다른 고객사로 이직했으며, 검사 장비를 사용해 공장 수율을 높이는 전문성을 인정받아 더 높은 연봉을 받고 갔다고 했다.


불편한 소프트웨어를 학습한 직원은 회사에 역갑질을 한다

불편한 소프트웨어는 사용하기 어렵고 배우기 힘들며, 업무를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은 시간이 지나면서 전문가가 된다. 일단 전문가가 되면, 사용하기 어려운 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 엑셀의 피벗 테이블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사람이나, 한글 3.0의 표 기능을 키보드 단축키로 빠르게 사용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은 매우 빠르고 정확하게 소프트웨어를 다룬다. 이들에게 사용법의 난이도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불편하거나 비효율적인 시스템은 본인의 전문성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들은 회사에 꼭 필요한 인재로 자리 잡고, 어려운 업무를 맡게 된다. 전문가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그러나 회사 입장에서는 어떨까? 앞서 언급한 검사 장비 담당자처럼 전문가가 이직하지 않기를 바라야 하며, 다른 직원이 그만큼 능숙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때로는 전문가가 다른 직원의 전문성 향상을 방해하기도 한다. 회사는 직원 개개인의 전문성에 의존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게다가 소프트웨어를 잘 다루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전문성이라 할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복잡하고 어려운 의사결정을 정확하게 내리는 능력이다. 회사는 직원들이 빠르고 정확하게 일할 수 있는 도구를 통해 더 높은 수준의 의사결정을 내리기를 기대한다. 회사 입장에서 어려운 소프트웨어를 다룰 수 있다는 것이 자랑거리나 특권이 되어서는 안 된다. 회사에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업무들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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