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경험이 소프트웨어 개발의 목표이자 결과물이다
"좋은 디자인은 사실 나쁜 디자인보다 알아차리기 훨씬 어렵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좋은 디자인이 우리의 필요에 매우 잘 맞아 디자인 자체가 보이지 않게 되어 주의를 끌지 않고 우리를 돕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나쁜 디자인은 그 자체의 부족함 때문에 매우 눈에 띕니다."
– 도날드 노만, 디자인과 인간심리, 1998
이 말은 좋은 디자인과 나쁜 디자인의 차이를 정확히 보여준다.
좋은 디자인은 사용자의 필요와 기대에 딱 맞아서 사용자가 그 존재를 의식하지도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작동한다. 사용자는 디자인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자신이 하려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손에 착 감기는 도구나 직관적인 소프트웨어는 "이게 얼마나 잘 디자인됐지?"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게 하고, 그냥 원하는 작업을 편하게 해낸다.
반대로, 나쁜 디자인은 불편하고 부족한 점 때문에 사용자의 주의를 끈다. 사용자는 디자인을 제대로 쓰려고 애쓰다가 불편함에 좌절하거나 문제를 깨닫게 된다. 디자인이 사용자를 돕기보다는 오히려 방해하고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이 되는 거다.
"고객 경험에서 시작해서 기술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 스티브 잡스, 1997
이 말은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복귀했을 때 했던 말이다. 멋진 기술과 마케팅을 고민하는 데서 시작하지 말고, 사용자 경험에서 시작하라는 얘기다. 공급자 중심의 사고를 버리라는 의미다. 실제로 애플은 가장 사용자 친화적인 제품을 계속 만들어 왔다.
그렇다면 디지털 갑질이 발생한 소프트웨어를 만든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떤 조직들은 어떻게 디지털 갑질이 발생하지 않게 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내가 회사생활을 시작한 2002년 당시 삼성전자에서의 UX 전문가들의 일화를 몇개 들면 알 수 있다 (실제로 이는 이후 여러 회사에서 반복되었고 아직도 반복되고 있다). 참고로 이 당시 삼성전자 제품의 사용자 경험은 별로 좋지 않았다.
한 소프트웨어 개발팀의 부장님이 물었다. “UX 디자이너는 뭐하는 거냐”. 나는 “소프트웨어가 동작하는 방식과 화면을 기획합니다”라고 답했다. 부장님은 말했다. “뭐? 그건 우리(소프트웨어 개발자)가 하는건데?”
신규 모델의 UX를 기획했다. 소프트웨어 개발팀과의 협의에서 개발이 어렵거나 오래 걸리는 사안들은 모두 제거되었다.
출시 일정이 당겨졌다. 소프트웨어 개발할 일정부터 역순으로 정리가 되었고, UX 디자인을 할 시간은 없었다. 결국 개발팀 주도로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졌고, UX 디자이너들은 산출물로 등록할 문서를 만들었다.
보안 문제로 실사용자 대상의 사용성 평가를 수행하지 못했다.
한 제품의 사용성 평가 결과가 좋지 않았다 (채널 설정 기능의 사용법이 복잡함). 상품기획 과장이 말했다. “그거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른 회사도 다 비슷하다.”
이 일화들은 현재 디지털 갑질이 발현되는 소프트웨어의 개발에서 유사하게 발생하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와 같이 UX를 중요하게 생각한지 오래된 조직들에서는 디지털 갑질이 발생할 확률이 매우 낮다. 이 조직들과 디지털 갑질이 발생하는 조직의 차이는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용자 경험 중심으로 기획하고 개발하는 것이다.
사용자 경험 중심으로 기획하고 개발하는 것이 유일한 디지털 갑질 방지책이다
이 조직들은 사용자 경험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때 비즈니스 성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고객 만족도와 충성도를 높여 매출 증대와 브랜드 이미지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거나 프로세스를 개선할 때 사용자에게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중심으로 삼고 있다. 새로운 시스템이나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할 때 복잡한 기능보다는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와 직관적인 디자인을 우선시한다. 또한 소프트웨어 개발의 최종 결과물은 사용자가 실제로 느끼는 경험이 되어야 하며, 모든 변화와 개선이 사용자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지를 평가 기준으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소프트웨어 개발 과정의 전체에 걸쳐 사용자 중심의 접근법을 유지하고, 사용자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피드백을 반영해 나간다.
사용자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조직들이 디지털 갑질이 발생하는 조직과 다른 점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이는 내가 여러 회사에서 여러 과제를 수행하면서 직접 발견한 것들이다. 다음 글에서 순서대로 설명하겠다.
전략 수립, 사용자 경험 기획, 소프트웨어 개발의 프로세스로 일한다
용어를 사용자 친화적으로 정리하자
To-be 사용자 경험의 검증을 초기부터 여러 번 지속하자
기획된 사용자 경험이 실제로 구현되도록 의사결정을 최적화한다
화면 디자인과 사용자 경험 기획을 구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