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케이팝 덕질을 했다.
2017년도, 오설록 티하우스 홍대점이었다. 3시가 되자마자 화면을 아래로 당겨 새로고침을 했다. '170X0X MBC MUSIC SHOW CHAMPION 사전녹화 신청 안내' 게시물로 들어갔다. 구글폼 링크를 찾아 빠르게 신상 정보들을 입력했다. 이름, 생년월일, 전화번호, 팬카페 닉네임, 팬클럽 번호 등. 제출 완료. 언니, 저 했어요! 내가 더 빨랐다. 핸드폰을 내팽개치고 녹차 라떼 더블샷을 들이켰다. 오늘은 느낌이 좋다. 벌써 3번째 낙방이었다. 몇 시간 뒤에 선착순 명단이 첨부파일로 올라온다.
공방에 가보겠다고 선언한 후 나는 예비번호 끝자락에도 들지 못했다. 선착 명단엔 폼 제출 시간이 뜨는데 분명 나보다 늦은 사람들도 있었다. 애초에 평일 대낮 경기도의 한 녹화장에 몇백 명이 모이려고 경쟁하는 일이 신기한 일이었다. 이쯤 되면 의도적인 누락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초월적인 신이 방해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걸 3번이나 하시다니 너무하시네요. 이제는 오기와 자존심의 문제였다. 음악방송은 거의 매일 있었으니 거의 매일 특정 시간대엔 팬카페에 들어가 신청폼을 제출하고 몇 시간 뒤엔 엑셀 파일을 다운로드해 파일을 열었다. 이번엔 제발, 제발.
음료와 디저트는 바닥을 보이지만 어제 트위터에서 본 걸 회고하는 수다는 바닥을 보이지 않았다. 카페 알림이 떴다. 하도 '공방공지' 게시판에 자주 들어가서 'From XX'와 함께 게시글 알람 설정을 켜놨었다. 즉시 들어가 '170X0X'로 시작해 '명단'으로 끝나는 게시글의 첨부파일을 다운받았다. 이미 다운로드 폴더엔 비슷한 이름으로 시작하는 파일들이 지저분한 번호 (1), (2)를 달고 모여있었다. 개중 최신 파일을 열었다. 이름은 중간이 가려졌으니 핸드폰 뒷자리로 검색을 했다. 있다! '1/1'이 상단에 보였다.
하지만 방심할 순 없었다. 끝자리가 같은 걸 수 있으니까. 자신이 좋아했던 아이돌의 생일이나 상징번호를 핸드폰 뒷자리로 삼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가끔 공방 명단에서 내게 익숙한 번호들을 지닌 사람들을 봤다. 전에 있던 판 사람들이 여기에도 생존한단 걸 확인하면 깜짝 동창회 같기도 했다. 흘러흘러 여기까지 오셨군요. 빠르게 같은 줄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했다. 번호는 꽤 뒤편이지만 예비는 아녔다. 나였다. 헐, 저 됐어요! 다시 핸드폰을 테이블 위로 가볍게 던졌다. 성취감이란 아드레날린이 손끝까지 빠르게 돌았다. 나도 이제 간다. 음악방송 공개 사전녹화에.
그 해에 나는 투명해지고 싶었다. 익명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를 응원하는 목소리로만 남고 싶었다. 타인에게 애정을 쏟는 일에만 몰두했다. 남들보다 고아한 칭송을 하거나 웃음도 애정도 놓치지 않는 문장을 채워나가 소소히 인기를 끄는 상상을 했다. 슬프게도 팔로워 5명을 채우지 못하고 그 계정은 폭파됐다. 15분 내외 사전녹화 무대를 보려고 오고 가는 시간까지 합쳐 하루를 버리는 일을 즐겼다. 공방 다니기는 그 해의 행동 중 가장 파괴적이었다. 엔도르핀도 그 반대도. 딜레이 공지에 다시 철푸덕 바닥에 앉으면 미래를 향한 부채감이 여길 이끈 끓어오르는 덕심만큼 차올랐다.
그 해엔 즐거움과 괴로움이 격자무늬처럼 함께 했다. 그래도 다른 사람을 향한 생각과 감정의 소비를 쌓을수록 내 문제를 직시할 여유와 필요가 줄었다. 나는 자신에게 흥미가 없었다. 최애의 별자리 운세와 행운의 아이템을 대신 챙긴 뒤, '내 별자리 운세는 보지도 않고 출발했다. 흥미 없다.'라고 단호히 덧붙이는 아카리처럼.
가장 투명해졌던 날은 내 생일이었다. 생일로 넘어가는 자정, 나는 뒤축이 나간 신발을 질질 끌며 막차가 끊긴 도로를 홀로 횡단 중이었다. 콘서트가 끝난 뒤 V앱을 보다가 내릴 곳을 놓쳐버렸다. 얼마 안 남은 배터리로 00시 00분에 맞춰 올라온 생일 축전 사진을 확인 후 한번 쓰다듬고 축하한단 트윗을 갈겼다. 속으로 읊조렸다. 생일 축하해. 수신인과 발신인은 일치하지 않았다. N년 전 이 도시의 한 산부인과에서 초산으로 태어난 여아가 막 세상의 빛을 봤을 시간대 무렵, 나는 팬 계정에 올라온 생일 축하 영상을 보고 눈물지었다. 몇 년간의 활동 모음과 노래 가사가 합쳐지면서 한 편의 영상 편지가 됐다. 영상에 담긴 애정에 공명해서 리터럴리, 울었다.
분명히 안다. 그날 나만을 위한 정성 어린 축하를 받았다 해도 나는 그 애정에 감응하지 않았을 거란 걸. 오히려 잔뜩 머쓱해질 거다. 저는 이런 마음을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원하는 만큼 한없이 투명해진 사람의 거절이었다.
<최애, 타오르다>를 읽었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외부에 두고 세계를 쌓던 주인공을 보고 이 시기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