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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Jun 08. 2023

금계국과 밤나무

긴 3일장이 끝나고 주변부 스케치

  금계국. 스마트 렌즈 검색으로 찾은 노란색 꽃의 이름은 금계국이었다. 엄마가 궁금해한 꽃의 이름이 "금계국"이라고 또박또박 엄마에게 알려줬다. 전자담배를 한 손에 쥔 엄마는 알겠다고 했다. 오가는 내내 금계국을 많이 봤다. 충청의 도로에서도 전북의 선산에서도 서울의 공원 틈새에서도. 개나리를 진하게 말린 것 같은 노란색의 금계국은 계절을 모르고 이르게 핀 가을 들꽃 같았다. 무심하게 푸른 날씨에 초록이 가득한 곳들만 다녔으므로 책갈피처럼 노란색을 품은 금계국에 자꾸 시선을 뺏겼다. 5월 말에서 6월 초엔 금계국이 핀다. 국립생물박물관을 찾아보니 6월에서 8월에 피는 꽃이라고 한다. 기일에 붙은 기억이므로 나는 이 건조한 사실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다.


  그리고 밤나무들.


https://youtu.be/0piYr1QKDKc


  발인과 운구 끝에 버스에 몸을 구겨 앉았다. 엄마와 이모 뒤에 내가 탔다. 혈육이 옆에 탈 줄 알고 자리 잡았는데 혼자 있고 싶다고 줄창 주장 중인 혈육은 저 멀리 뒤에 앉았다. 삼일 내내 '노릇'에만 집중하던 나는 심기가 거슬렸지만 싸울 기력이 없었다. 엄마와 이모 옆에 외떨어진 한 칸짜리 좌석로 자리를 고쳤다. 이제 막 하루를 시작하는 차들이 도로로 들어왔다. 음악은 어울리지 않는 걸로 골라 들었다. '좋아요' 표시를 해둔 것도 잊어버린 Télépopmusik의 신보가 올라왔길래 15년 전에 듣던 곡으로 파고들었다. 그 곡이 담긴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했다. 태그엔 탐미적, 어두운, 섹시한 등이 붙어 있었다. 하나로 수렴해 초점화되는 감정을 흩어주는 데 도움이 됐다.


  휴게소란 공지에 일어났다. 잠에서 깨 커튼을 여니 모르는 이름의 휴게소였다. 10분 뒤 버스는 다시 움직였다. 산 정상과 도로 위 우리의 눈높이가 비슷했다. 도트 그래픽처럼 중간중간 연두색으로 뭉쳐있는 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예쁘다. "그건 밤나무야. 여긴 밤이 특산물이니까." 옆자리의 이모가 말씀하셨다. 자세히 보니 초록 나무 위에 허연 꽃들이 가득 피어서 색이 연두색으로 옅어 보이는 거였다. "어찌나 밤나무가 많은지 여름이면 밤꽃 내가 지독하단다." 다인승 버스는 창문을 열 수 없는 구조였지만 그 말에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30분째 달려도 보드라운 연두색 나무들이 산마다 이어졌다. 큼지막하게 경지정리된 논들은 모내기로 물이 찰박하여 구름과 산을 그대로 반사했다. 곳곳에 인가가 보였다. 선팅 된 버스 차창은  필터로 작용해 풍경의 톤을 차분하게 조절했다. 아름다운 고장이네. 저녁의 공산성을 걸었다던 친구는 혼자였댔나 둘이었댔나. 여행 조언을 구한 일은 1년 반 전인가. 다른 이유로 와서 풍경을 눈에 담고 가는 일은 가늠해 본 적 없다.


  엄마를 짝사랑했다던 아저씨가 엄마 말대로 진짜 아빠랑 닮아서 웃겼다거나, 3일 내내 독대한 적 없는 사촌과 마지막 인사로 악수를 나눈 뒤 남은 투박한 손바닥 감촉이라든가, 상주방 대신 인근의 모텔에서 잠을 청한 밤 렌즈 없이 발견한 바퀴벌레를 모른 척하며 회피 발현. 선산이란 이름의 야트마한 동산은 시각적으로 빼어났지만 새로 생긴 IC로 차량 소음이 컸다. 시청각 간의 불균형. 찾아와 준 고마움의 표현이 능청스러운 헛소리로 오 출력 됐다. 손녀는 고인이 좋아하시는 음식 위에 젓가락을 놓으세요, 주문에 순전히 무지 그대로 멈춰버렸다.(뒤에서 누군가 "갈비, 갈비"라고 구원투수가 돼줬다.) 나무아미타불을 열심히 따라 부르다가 '맞다 나 냉담자였지'.


  근무 중 '어머니'라고 저장된 번호로 액정이 가득 찼을 때, 전화를 받기 전 예감은 적중했다. 제 때 전화를 받아서 다행이었다. 귀찮다고 전화를 무시하면 안 된다는 교훈은 이미 갖고 있으니까. 담담한 목소리였다. 그 뒤엔 사람들의 작은 다정에 빚을 졌다. 소식을 전해 들은 사람들의 내려간 눈썹과 올라간 말끝들. 이번에도 말 없는 배려에 신세를 졌다. 선배들의 조언이 없었다면 입력된 대로 끝까지 일을 하다 나왔겠을지도 몰라.


  새로 보정이 들어가 밝고 채도가 높았던 빈소의 영정 영상(요즘은 사진이 아니라 영상으로 쏴준다고) 속 외할머니는 파스텔 톤 배경에 붉은 뺨을 갖고 있었다. 슬픔과 피곤에 젖어있다가도 아니 근데 엄마는 그런 느낌이 아닌데, 하고 궁시렁대며 웃던 친척들. 천천히 떠나보낼 수 있었던 호상의 증거. 그러기까지 할머니가 고생 많으셨다고. 몇 달 전 잡았던 뜨끈한 손의 온기가 떠올랐다.


  할머니, 좋은 곳에서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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