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고딩 때 견학으로 청계천 갔어요. 도착해서 광화문 보라색 뿔 앞에서 출첵하고 종로 3가까지 걷고 해산했어요. 그게 끝. 이제 귀가."
"청계천?"
"네. 청계천. MB가 시장일 때 만든 청계천. 그리고 몇 년 뒤에 대통령 됐었잖아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성의 없는 견학장소 선정과 빈약한 프로그램 구성에 대다수가 같이 안타까워해줬다. 롯데월드도 용인 민속촌도 아닌 청계천.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역이나 종각역, 을지로 입구역에서 내리면 지척인 청계천. 토목 산업을 기반으로 성공신화를 쓴 기업가 출신 정치인이 야심 차게 복원한 도심 천이자 대통령 임기 시절 대표 사업인 4대강의 원류인 청계천. 광화문의 고층 빌딩에서 빠져나와 가슴엔 사원증, 한 손엔 커피를 들고 주변을 산책하는 회사원 일상 Vlog 중, 닉네임 '대감집머슴(가상의 인물입니다)'은(구독자 수 3.4만)은 갑자기 청계천에 발을 담그는 작은 일탈을 벌인다. 베스트 댓글엔 '청계천 수질 개구린데 대감집머슴님 발 썩었을 듯ㅎㅎ'라고 달릴지도 모르는 그, 청계천.
목요일엔 친구와 단둘이 밤 9시의 청계천을 걸었다. 을지로 3가에서 광화문까지 20여 분간의 시간이었다. 이 근방에서 일하는 친구는 도로 표지판이 광화문을 가리키는 차도와 인도 대신 여기로 가자며 나를 이끌었다. 어두워서 잘 안 보였던 터라, 친구가 이끄는 길이 어딘지도 모른 채 따라갔다. 청계천이었다. 아, 오랜만이네. 회사원들이 모두 빠져나간 도심의 개천은 한적했다.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모두 핸드폰을 보거나 추워서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배경으로 남았다. 주황색 조명이 가득한 냇길이 우리 앞에 있었다.
그날은 몇 달 만에 가장 친한 친구들을 만났던 저녁이었다. 코로나 국내 상륙 무렵에 새롭게 직업교육을 받고 국민의 70퍼센트가 2차 접종을 맞은 시기에 취뽀 1주년이 됐다. 취업한 지 거의 1년이 됐는데 만난 건 두 번뿐이라 이번에 취업턱을 냈다. 개중 한 친구는 벌써 재직 n(n>5) 년 째라니까, 내가 이들에게 얻어먹은 식사와 커피만 해도, 그래요. 저는 인터넷 사주에서도 인복이 좋은 대기만성형이라고 나옵니다.
방향이 다른 친구를 먼저 보내고 남은 친구와 둘이서 광화문까지 걸었다. 셋이 둘이 되자 조금 온도가 바뀌었다. 친구는 이렇게 둘이 걸으니 공덕에서 같이 만나 경의선 숲길을 걷던 때가 많이 생각난다고 했다. 2~3년 전, 나는 새벽반 아르바이트를 하고 달에 2번 정도 공덕으로 정신과를 다녔다. 마포구가 일터인 친구에게 왜 이리 공덕에 자주 오는지 매번 설명할 방도가 없어서, 사실 병원에 다닌다고 털어놓았다. 달리듯 업무를 끝내고 칼퇴한 친구와 진료에서 눈물 한바탕 흘리고 온 나는 종종 공덕의 대로변에서 만났다.
같이 이곳저곳을 갔다. 지도 앱에 박아둔 맛집들, 초록색 벽의 칵테일바, 힘이 넘치면 경의선 숲길을 걸어 서강대로, 연남동으로, 어느 날은 상수까지 걸었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았는지 모른다. 친구는 사회 초년생이었고 나는 내면세계에서 하루하루 이벤트가 발생했다. 그 해에 갔던 대만 여행 중, 풍등을 날리는 코스가 있었다. 거기에 나는 붓글씨로 '이너피스'라고 적었다. 설명은 이걸로 대신합니다. 둘이 걷고 웃다가 거리를 구경했다. "야 그때 기억나?" 함께 겪은 시간들을 추억하고 거기서 연상되는 에피소드들을 붙잡아 떠들고. 졸업 후에도 이런 식으로 자주 볼 수 있는 건 퍽 행운이라고, 우리는 선언하듯 선포하듯 되풀이해 말했다.
Liza Summer 님의 사진, 출처: Pexels, 헤더의 이미지와 동일.
친구의 얼굴 위에 따뜻한 주황빛이 깃들었다. 낮의 환한 빛은 아니었다. 도시의 밤을 은은히 물들일 정도의, 조도였다.
친구가 말했다.
"너랑 같이 경의선 숲길 걸었던 때가 많이 생각났어. 그때 네가 공덕 와줬던 거 진짜 고마워. 그리고 나중엔 지금 이 청계천을 같이 걷는 날도 무척 그립겠지?"
친구야, 너는 울음이 나올 것 같은 말을, 정말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구나.
나도 그랬다. 함께 걷고 있으니 같이 걸은 저녁들이 떠올랐다. 서울을 걷다 못해 우린 같이 캐리어를 끌고 이국의 밤거리도 걸었잖아. 내게도 퇴근 후 시간을 빌려줄 수 있는 친구가 있는 게 참 감사한 일이었다. 동시에 늘 지금이 우정의 최전선이며 언제든지 거리는 멀어질 수 있다고 적힌 쪽지를 한쪽 주머니에 넣고 살고 있다. 예전엔 그 쪽지가 불길한 예언문 같아서 영 거슬렸다. '늘 앞으로도 나랑 친구해 줄 거지?'라고 여럿에게 매달리듯 물었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친구나 가족이 없어도, 사이가 멀어져도 그럭저럭 살 수 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그때는 오기에 가까웠다. 너네가 너무 필요해서 이렇게 말했다. 너네가 없어도 잘 사는 나를 똑똑히 봐! 지금은 관람객이 없는 '혼자서도 잘해요'에 가깝다. 다들 현생이 바쁘고 더 중요한 사람들이 생겨나서 친구들의 안부는 조금 미뤄두기도 하겠지? 먼저 연락을 하거나 단톡에서 리액션을 하려다가도 혼자 머쓱해지는 날도 있겠지? 나는 그래.
그날은 오랜만에 다른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꿈에 실제론 접점이 없는 지인과 엄청 친밀한 걸 봤거든. 나는 여전히 걔가 친한 사람을 꼽을 때 거기 내가 있길 바라나 봐. 그런데 그게 욕심 같아서 잘 티는 안 낸다. 실제 그날 오간 메시지들은 길지 않았다. 바쁜가 봐. 어떤 날엔 그런 패턴의 대화들이 서럽기까지 했다. 지금은 안 그렇다. 왜지? 이제 내게 우정이란 건 가끔 만나서 웃고 떠들 수 있다면 충분한 위치가 됐나? 일기에 쓰기도 허접한 일상을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건 누구랑 하지? 아, 그러려고 인터넷이 있는 거긴 하다.
친구와 작별하고 버스에 혼자 탔다. 지금을 그리워한다는 건, 지금 이 순간이 좋다는 확인이면서 동시에 미래에 서로의 부재를 염두에 두고 있단 말이었다. 그리움은 부재에서 시작하니까. 그 마음이 뭔지 나도 너무 알았다. 알고말고. 밀린 근황을 나누며 상대에게 작아진 나의 파이를 확인하면서도 우정의 확인만으로 겸손하게 기쁜 밤이었다. 서로가 모르는 일상이 쌓여도 우리의 우정은 별일 없이 굴러간다. 여전히 제일 친한 친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