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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dia Jun 03. 2020

8년 간의 스타트업 디자이너 경험기

무언가를 제대로 경험했다기에 8년은 짧지만 그래도 7개의 각기 다른 스타트업 회사들을 다니며 겪었던 이야기들, 천차만별의 산발된 경험들을 스스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나의 경우 국내 미술 대학의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첫 커리어를 IT 스타트업 기업의 UX/UI 디자이너로 시작했다. 휴학 중 우연히 아르바이트 기회를 얻어 5명 규모의 초기 스타트업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 후로는 당시 함께 일했던 동료와 지인들의 소개를 받아 업종은 다르지만 비슷한 규모의 스타트업을 거쳤다.


가장 길게 일했던 기간은 3 , 가장 짧게 일했던 기간은   달이다. 내가 일했던 어떤 스타트업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고, 어떤 스타트업은 투자 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다.




왜 스타트업이었을까? 대기업과 정말 다를까?

스타트업에서만 일했던 것은 아니고 건축사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기도 했었고 중견기업의 마케팅 디자인 업무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출판사 디자이너를 목표로 준비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IT 업계로 다시 돌아와 스타트업을 찾았다. 스타트업이 편했던 가장 큰 이유는 조직 분위기와 디자인에 대한 태도의 차이였다. 그리고 같은 신입 디자이너지만 IT 업계와  업계에는 연봉 차이도 컸다.


보수적인 업종의 딱딱한 조직 분위기는 어려웠다. 직급이 높은 사람을 호칭하는 방법부터 디자인 외의 업무를 막내이기 때문에 해야만 하는 상황,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비전문가의 요구 사항을 반영하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고 합리적이지 않다고 느꼈다. 반면 팀 규모가 작고 효율성을 중시하는 대부분의 IT 업계 스타트업에서는 개발자와 비즈니스 팀원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논리적인 설명이면 다른 것은 문제 되지 않았다. 나이나 직급 구분 없이 맡은 일에 대한 전문가로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왜인지 IT 업계에서 조금은 더 수월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디자인에 대한 태도였다. 어떤 곳에서는 단순히 무언가를 예쁘게 고치고 꾸미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며 디자인을 제한했고, 반대로 어떤 곳에서는 자신들만의 철학적, 정치적 대의를 표현하기 위한 매개체로써 작은 것에도 주관적인 의도를 진지하게 담으려 했다. (그 대의에 디자이너의 자리는 없었다.) 물론 그 두 태도 또한 디자인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경우 조금 더 실용적인 디자인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너무 진지하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은 적당한 만큼의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편했다.


위의 두 가지 요소는 꼭 스타트업이어서 충족된 것은 아니었다. 조직이 얼마큼 유연한지, 그리고 디자인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디자이너들이 주체적으로 결정과 실행을 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었다. 사실 스타트업이라고 하더라도 보수적인 업종보다 더 보수적인 조직도 많으며 디자인을 바라보는 태도가 형편없는 곳도 많다. 취업을 할 때에는 막연히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비교했지만 단순히 규모가 명확한 기준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이 있는 팀이고 조직인지, 내가 디자인을 어떻게 얼마큼 할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모든 사람들이 디자인에 관심을 가진다. 혹은 아무나 UX/UI에 말을 얹는다.

다른 업계에 비해 개인적으로 느끼는 불편함은 적다고 하더라도 스타트업 디자이너로써 갖춰야 할 몇 가지 부수적인 능력이 있었다. 개발과 비즈니스에 대해 이해하고 그들의 목적에 맞게 커뮤니케이션하는 능력, 그리고 서비스의 로드맵을 이해하고 디자인에 단계적으로 녹여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능력이었다. 소규모의 초기 스타트업에서는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프로그래머, 비즈니스 매니저, 그리고 CEO까지 버튼 하나하나의 위치와 텍스트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레이아웃과 색감 또한, 디자이너들끼리라면 여러 경험이 쌓여 직관적으로 3초면 판단이 끝나겠지만 비전문 직군에게는 그 이유를 길게 설명해야 한다. 납득이 되더라도 개발 편의성, 비즈니스 목적에 맞지 않으면 조금 더 절충안을 찾아야 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비스 로드맵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로드맵과 같은 방향으로 디자인을 조금씩 개선하고 적용시키게 된다.


사실 처음에는 이 과정이 불편했다. 디자이너들 사이의 크리틱 문화에는 익숙했고 피드백 내용 또한 이해가 됐지만 비전문가가 색상이나 폰트 사이즈에 대해 뭐라고 한마디를 얹으면 기분이 나빴다. 대부분의 비전문 직군은 디자인 피드백 경험도 없을 것이고 디자인의 기본적인 원리나 적용 방식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애매하고 주관적인 느낌 전달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받아들인 것은, 결국 우리가 서비스를 전달해야 하는 대상은 비전문가일 테니 어느 정도 배려의 선을 지킬 수 있는 피드백 가이드라인만 마련하고 지킨다면 결과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의견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심각한 수준으로 매너나 기본 UX/UI 지식, 서비스에 대한 이해도 없이 들어오는 피드백도 많다. 그럴 땐 선을 지키기 위해 적절한 언어로 거절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디자이너가 스타트업에서 얻는 꽤 많은 기회들

대부분 스타트업에서는 1인 디자이너로 일했다. 1인 디자이너로 시작해 8명까지 디자인 팀이 늘어난 적도 있었고 팀장으로서 2명의 팀원을 직접 구성하고 뽑기도 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대부분이 소규모의 팀이었으며 디자인팀뿐만 아니라 회사의 전체 구성원 수가 적었다. 팀의 유일한 1인 디자이너로써 소규모 팀의 장점을 이용하는 방법은 꽤 많았고 유용했다.


팀 내의 유일한 디자이너는 사용성을 책임지고 사용자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서는 역할이기 때문에 팀원들은 나를 믿고 결정하지 않으면 서비스에서 유저 편의성을 고려하거나 시각적인 구성을 완벽히 반영할 수 없다. 그렇기에 팀 내의 누구보다 주체적으로 더 나은 사용성을 고민할 수 있고 수많은 타 직군,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피드백과 의견을 직접 취합하고 분석해서 결정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시간을 들이고 여러 연습과 시행착오를 거친다면 서비스를 바라보는 눈과 화면을 설계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 가장 큰 기회는 항상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고 실행해야 하는 IT 업계에 속해있기 때문에 트렌드나 기술 변화의 가장 앞단에서 디자인을 제시하고, 실제 유저들의 사용과 변화까지 직접 눈으로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이상적으로 꿈꿨던 서비스를 팀원들과 함께 설계한 로드맵에 맞춰 제시하고 바로 실행시킬 수 있다는 것은 디자이너로써 쉽게 얻을 수 없는 큰 기회이다. 계속 변화하는 수많은 디바이스들의 해상도에 맞춰 레이아웃을 재배치하는 일이 넷플릭스의 실시간 스트리밍 기술이나 페이스북의 친구 추천 알고리즘, 트위터의 타임라인 방식 커뮤니케이션만큼 혁신적이거나 위대해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결국은 모두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야 새로운 기술에 맞는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다.



*TIP: 스타트업 - 싸한 느낌 피하는 법

무조건 대표를 잘 봐야 한다! 팀원도 조직도 서비스도 조금씩 바뀌고, 또 얼마든지 바꿀 수 있지만 대표는 팀원들 힘으로 못 바꾸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심각한 소시오패스 환자도 만나봤다. 3개월 정도는 뭐든 의심의 눈초리로 회사의 장점, 단점을 계산해보다가 다른 어떤 요소가 아니라 대표가 싸하다면 바로 떠나는 게 좋다.

그리고 구현되어 있다면 서비스에 대한 첫인상을 믿어야 한다. 서비스는 런칭한지 몇 년이 지났는데 이유 없이 팀이 계속 소규모이거나 서비스 UX/UI가 좋아지지 않는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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