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가 책을 쓴다면(남극에 가는 것처럼 흔치 않은 기회겠지만) 빨라야 마흔 살 정도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자비 출판으로. 정말 엄청나게 성공해서 출간 문의가 쇄도한다면 서른다섯 살쯤. 그런데 그보다 10년이나 앞당겨졌다.
7월 말, 브런치를 통해 출간 제안이 왔다. 처음엔 믿을 수가 없었고 나중에는 얼떨떨했다. 하는 게 맞을까, 할 수 있을까, 부끄럽거나 후회하지 않을 글을 쓸 수 있을까 등등 생각이 많았다. 첫 책을 만들면 제목이나 부제로 ‘나무야 미안해’로 하겠다고, 처음 쓰는 거니 나중이 되면 무조건 부끄럽지 않겠느냐고 친구들과 농담을 했던 것도 떠올랐다. 그럼에도 제안에 응한 건 에디터님이 ‘단순히 남극에 다녀온 경험만이 아니라 다른 스토리와 가치관을 책으로 엮어보면 좋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남극이라는 신비한 곳에 다녀온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내 SNS와 인터뷰 등을 보고 생각이 조금 달라지셨다고 했다. 내 인스타를 보셨다니. 조금 부끄럽긴 했지만, 한편으론 “내가 이런 사람인걸 아는데도 출간 제의를?” 하는 생각에 더 신뢰가 갔다. 그 외에도 좋은 경험이 되고, 이걸 시작으로 다른 기회도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출판사 또한 평소 좋아하던 박정민 배우님의 에세이가 나온 곳이라 호감이 갔다.
그리고 재밌을 것 같았다. 스물다섯 살에 책을 쓰는 경험을 하게 된다니. 그것도 자비 출판이 아니라 출간 제의를 통해서라니. 그 모든 과정이 정말 기대됐다. 마지막으로 정말 중요하게도, 내 돈 나가는 게 아니니까.
휴학 중이지 않았으면 훨씬 더 고민했을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도 거의 못 만나고 집에서만 지내기에, 예전처럼 운동이나 기타 취미를 배울 수도 없기에 알찬 시간을 보내기 위한 마음도 컸다.
그렇게 마음을 가다듬고 답장을 보냈다. 그런데 연락이 없었다. ‘그럼 그렇지. 누군가 장난을 친 거구나. 막 책을 쓰고 싶어 하는 치기 어린 사람으로 알려지면 어떡하지. 부끄럽다. 이런 장난에 넘어가다니. 그래도 메일이 정말 정성스럽고 정교했는데….’ 그래도 희망을 붙잡고 이번엔 카톡으로 연락을 드렸더니 답장이 왔다. 휴우! 장난이나 사기는 아니구나. 지금 돌이켜보면 메일을 보낸 지 이틀도 되지 않았는데 별 생각을 다 한 것 같아 그런 상상을 했다는 게 부끄럽다.
그렇게 미팅 날짜를 잡고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예상과 달리 책 이야기보다는 미술을 어쩌다 전공하게 되었는지 등 내 생각이나 에피소드들을 물어보셨다. 출간 제안서는 그 후에 보여주셨는데 어느 정도 회사랑 논의를 하고 오신 거라 놀랐다. 나를 만나고 책을 쓸 만한 사람인지 확인 후에 논의를 하실 줄 알았는데. 그리고 내 이야기들 중에서 몇몇 주제를 짚으시며 샘플 원고를 보내달라고 하셨다. 이때 출간 과정이나 출판업계 자체에 대한 질문도 많이 했는데, 친절하고 솔직하게 답해주셔서 믿음이 갔다. 그때 들은 설명으론 샘플 원고-가목차-계약-원고 작성-출간이 대략적인 출간 과정이었다. 원고를 마감하고도 출간까지 최소 3개월이 걸린다는 말에 생각보다 길어서 놀라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3개월이면 정말 빠른 게 아닌가 싶다.
샘플 원고도 반응이 좋았고, 생각나는 대로 정리한 가목차도 괜찮았다는 말과 함께 계약 이야기가 나왔다. 첫 미팅부터 여기까지 한 달 남짓 걸렸는데, 너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불안할 정도였다. 다행히도 계약서 수정 사항을 반영하고, 에디터님 일정하고도 맞추느라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까지 한 달 정도가 더 걸렸다. 덕분에 한 달을 더 편한 마음으로 놀았다. 도장을 찍으면 꼼짝없이 매주 글을 써야 했기에 마치 입대 전에 실컷 노는 심정이었다. 계약은 코로나로 인해 우편으로 진행했다. 황토색 봉투에 쓰여 있는 ‘김인태 작가님’이라는 글자가 얼마나 부끄럽고 어색하면서도 좋던지, 초등학교 때 짝사랑이 생각날 정도였다.
검색해보니 출간 직전에 책이 엎어진 사람도 있고, 원고를 마무리했으나 출간이 늦어진 사람도 있다고 해서 주변엔 거의 알리지 않았다. 원고 피드백을 부탁할 사람들과 책에 대화나 에피소드를 넣어도 될지 물어봐야 할 사람들에게만 소식을 전했다.
책을 쓰는 과정은 쉽지 않다. 본격적으로 쓰기 전부터 ‘글 빚이 제일 무섭다’는 말이나 ‘창작의 고통’ 등의 이야기가 떠오르며 눈앞이 캄캄해졌다. 글이라는 게 언제나 마음대로 써지는 것도 아니기에 결과물이 맘에 안 드는 경우도 참 많다. 오죽하면 필력 좋은 친구조차 결과물이 맘에 안 들어서 글을 아예 안 쓴다고 할까. 맞는 말이다. 열심히 썼는데 맘에 드는 경우가 열에 한둘 정도라면 실망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얘긴데, 누가 그런 노동을 좋아할까.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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