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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뚜 Apr 27. 2022

헌 것과 새것

치매 엄마와 사는 이야기

홈트를 하고 있는데 B가 입안에 손을 넣고 있다. 이빨에 낀  뭐라도 잡아 빼고 있나 싶었는데 금세 울상이 된다. 입을 벌리며 보여준 건 덜렁거리는 어금니다. 첫째 S는 어땠던가 기억을 더듬어보건대 이렇게 느즈막에 이가 빠졌던 기억은 없다. 그나저나 뭐 저렇게 갑자기 기별도 없이 덜컥 이빨이 저렇게 되나. 눕혀서 보니 덜렁거리는 어금니의 잇몸 바깥으로 새이가 까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부지런히 닦지 않아 누레진 기존 이빨 밑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새 이빨은 하도 희고 고와서 금세 구분이 되었다.




충청도 산촌 구석에서 자란 나는 병원 한번 가려면 큰 마음먹고 나서서 버스로 2시간은 족히 가야 했다. 의원급 병원은 도보 1시간 거리 면소재지에 있긴 했으나 치과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처음 치과를 가본 게 대학생 때였다. 그전까지는 엄마가 해결해줬다. 어느 날엔 흰 무명실을 고리 내어 흔들리는 이의 몸통에 걸고 냅다 잡아당겨 뺐다. 거의 다 뽑힌 이빨일 땐 '에게?'싶을 정도로 후딱 끝나는데 대부분은 뿌리가 끝까지 놓지않으려 이빨을 반쯤 붙잡고 있는 상태였다. 몸통에 실 고리를 걸어 잡아당기기 직전은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또 다른 날엔 굵다란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내 입안 가득 집어넣고 이빨을 잡아채 흔들다 힘을 주어 우지직 뿌리를 꺾어버렸다. 후자 같은 경우가 제일 아프고 싫었다. 덜 빠진 이를 무조건 잡아 빼는 느낌이란.

빠져나간 그 자리에서 새빨간 피가 퐁퐁 솟아 나오는 걸 한동안 뱉어내고 씻으면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때쯤 폭탄을 맞은 듯 움푹 파인 잇몸을 혀로 조심스레 매만지며 상태를 가늠해보았다. 상태 파악이 끝난 뒤에야 거울로 확인을 해볼 용기가 났고 이빨이 없어져버린 낯선 상황에 겪어냈다는 뿌듯함, 한동안 그런 무서움은 다시없을 거라는 안도감을 만끽하곤 했다.




치과는 몇 살에 가든 늘 무서운 곳이다. 오십에 육박하는데 여전히 두려운 걸 보면. 치과 쪽으론 생명을 위협하는 병은 그다지 없는 것 같아 정기검진도 잘하지 않는다. 치과의사는 6개월에 한 번씩은 검진을 받으러 오라고 권고하지만 말이다. 다른 과목의 병원들에 비해서 마음속의 중요도가 상당히 떨어진다. 가기 싫어도 그냥 두면 큰 병이 될 것 같은 때엔 꾸역꾸역 병원에 가지만 치과는 별로 그래 보이지가 않는 거다. 날카롭고 무시무시해 보이는 작은 기기들의 모습에도 압도당하지만 내 입속 어딘가를 그것들이 휘젓고 다닌다는 상상, 몸속에서 나는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그것들의 소리는 나를 작아지게 하다못해 바닥으로 꺼지게 만든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가는 시기를 늦춰보고, 갈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별거 아닌 거라고 무시하려 한다. 며칠 거슬리다 끝나면 다행인데 별거 아닌 게 별거가 되는 때가 있다. 그런 때는 또 다른 어느 부위보다 통증이 어마 무시해서 무섭긴 하다.


치과를 무서워하는 나처럼 B도 울었다. 동그란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데 그걸 보고 있자니 귀여워 웃음이 난다. 남의 고통이 바로 와닿지 않는 데엔 자식도 예외가 아닌가 보다. 어릴 적 영희 씨가 해준 것처럼 실로 빼주겠다고 하니 무섭다며 더 크게 운다. B의 회피와 나의 설득이 오가는 실랑이 끝에 실 고리를 B의 작은 어금니 허리에 매었다. 녀석은 걸자마자 바로 당기지 말라고, 얘기하고 하라고 계속 당부하며 울었다. 오래전 그때 생각에 나도 같이 긴장되었다. 숨을 고르며 당기려는 찰나 녀석이 또 "잠깐잠깐!" 막아서는데, 그 통에 어렵게 건 실 고리가 쑥 빠져버렸다. 실이 얇으면 힘이 약해 이빨 당기는 힘이 부족하게 된다. 어설프게 건드리면 통증이 더하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는지라 이왕이면 튼튼한 실로 한방에 뽑아주리라 다짐하며 영희 씨방에 무명실을 찾으러 갔다. 거실에서 겁내며 울고 있던 B가 뒤늦게 쫓아 들어온다.


"할머니. 나 이빨 뺐어.."


뿌리 뽑힌 어금니를 보여주며 으앙 울어버린다. 후련함과 무서움을 참은 자신에 대한 뒤늦은 위로의 눈물이려나. 내가 없는 사이 혀로 이리 밀고 저리 밀고하다 보니 쑤욱 떨어졌단다. 실랑이를 안 해도 되니 다행이다. 끝자락에 매달려 아동 바동 하던 이빨을 가지고 둘이 그러고 있었나 보았다.


영희 씨는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어눌한 발음으로 말하던 평소완 다르게 또렷한 말씨로 B를 달랜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아도 아기일 적 업어줬던 손녀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다. B에게 새 이빨 받게 창문 너머로 던지라고 이야기한다. 옛날엔 초가집 지붕에 이빨을 던져 올렸는데 지금은 고층아파트 창문 너머인 거다.

눈물을 닦고는 아까운 지 이리저리 뜯어보고 언니를 애정 하던 B는 방충망을 열고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예쁘고 하얀 새 이빨 주세요.


B의 언니는 그렇게 한밤중 허공을 가르며 어딘가로 날아갔다. 이빨요정이 언니를 잘 가져갔기를. 다른 쪽 어금니를 들춰보니 그쪽도 새하얀 이가 솟아나고 있는 게 보인다. 그만큼이나 자랐는데 흔들리지도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어금니라 한쪽이 없어지면 다른 쪽으로 음식을 씹어야 하기에 몸의 주인을 배려하는 오묘한 자연의 섭리인 것도 같다.




잘 쓰고 살던 이도  쓰임새가 다하면 아낌없이 잘 보내주는 것. 기존의 것이 제때 나가줘야 삐뚤지 않고 새로운 것이 자리 잡는다는 것. 내 인생에도 쓰임새가 다한 헌 것이 있는지 찾아본다. 익숙하다고 계속 붙잡고 있는 건 없는지.... 있다면 제때 늦지 않게 떠나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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