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엄마와 사는 이야기
동석은 비가 쏟아지는 날 차 안에서 엄마 옥동에게 묻는다. 왜 내게 엄마라 부르지 말고 작은 어멍이라 부르라고 했냐고. 내가 무슨 짓을 해서든지 먹여 살리겠다고 서울같이 가자고 했는데 왜 안 간 거냐고. 왜 나한테 미안한 게 없냐고. 옥동은 밖을 응시하며 말한다.
"미친년이 어떵 미안한 걸 알어..니 어멍은 미친년이라..미치지않고서야 저는 바당들어가기 무서워 딸년 물질시켜 죽이고 그래도 살라고 아무나(동석친구아버지) 붙어먹고 자식이 처맞는 걸 보고도 멀뚱멀뚱..개가 물어뜯을 년. 너 나 죽으면 장례도 치르지 말라. 울지도 말라. 너 누나, 아방 있는 바당에 던져 불라"
동석은 몇십 년에 걸친 옥동에 대한 미움이 단숨에 무너지는 듯 보였다. 미안하다는 말보다 더 강력한 저 말들이 동석의 미움을 사그라들게 했다. 연을 끊다시피 하고 옥동과 마주쳐도 모르는 척, 어쩌다 옥동이 전화라도 하면 매몰차게 끊던 동석이었다.
옥동이 말기암이라는 걸 알게 된 후 나중에 못 물어본 걸 후회하지 않도록 꼭 물어보겠다고 작심하고 물어본 것이었다.
처음으로 옥동과 오랜 시간을 같이 하면서 옥동에게 계속 짜증과 화를 번갈아 내었다. 그러면서도 옥동의 입을 통해 듣는 옥동의 인생이 안타까워 마음 아파하는 눈빛을 어쩌지 못한다. 첩으로 들어가 본처 병시중 15년, 재혼 남편 병시중 10년. 조실부모한 후 어릴 적부터 생계전선에 뛰어들어 살다 남편과 자식 먼저 보내고 가난하게 산 옥동이었다.
엄마를 '작은 어멍'이라 부르고 마주치기라도 하면 원수 보듯 쏘아붙이기 일쑤인 동석에게 마을 사람들은 어멍에게 잘하라고 한소리들 하지만 동석은 어쩔 수 없다는 걸 나는 잘 안다. 상처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받는다. 언제나 내 편, 당연히 내 사람이라 여기던 엄마에게 받은 깊은 상처는 동석을 삐딱하고 엄마를 미워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사정을 잘 모르는 제삼자들, 안다 해도 당사자만이 느낄 수 있는 그 감정을 짐작만 할 뿐 뼛속 깊이 알지는 못하기에 엄마에게 잘하라는 이야기를 할 뿐이다.
그렇게 행동하는 동석도 괴로울 것이다. 엄마를 미워하는 자신을 늘 인지하며 사느라 자존감이 깎아내려가고 사람들에게 괜스레 떳떳하지 못하다. 어떤 이유로든 부모에게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엄마를 보면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미운 감정을 스스로도 어쩔 수 없다. 그거라도 해야 속이 덜 답답하니까.
'우리들의 블루스' 동석의 상처받은 이유를 들여다보며 많은 부분 공감했다. 특히 엄마의 답답스러운 모습에 짜증과 화를 내면서도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하는 부분, 연락을 끊었지만 진짜로는 엄마를 버리지 못하는 부분이었다. 나와 비슷한 누군가의 고통과 상처를 들여다보면서 나의 감정에 대해, 아직까지 일말의 죄책감으로 남아있는 엄마에 대한 짜증과 화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 역시 그럴 수밖에 없었노라고. 이런 나를 나도 어쩌지 못했던 거라고. 자존감을 깎아내릴 일도 아니고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어서도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다독거려줄 수 있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조용히 눈을 감은 엄마를 끓어 안고 울면서 동석은 말한다. 평생 엄마를 미워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이렇게 안고 화해하고 싶었다고, 이렇게 안고 울고 싶었다고.
나도.....그랬다.....지금은 미워했던 마음이 희석되었지만 엄마에 대한 화와 무시를 버리고 잘 지내고 싶었다. 엄마를 요양원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나는 동석처럼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그때 왜 그랬어?"
"................. 몰러... 다 잊어버렸어..."
나는 동석처럼 자기의 행동을 후회하는 엄마의 말조차도 이제 들을 수 없는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