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뚜 Jun 15. 2022

머뭇거리는 시간

치매 엄마와 사는 이야기

요즘의 영희 씨는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일정치가 않다. 아예 일찍 자거나, 늦은 밤을 지나 새벽녘에야 잠든다. 예전엔 자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면 되려 역정을 내므로 그냥 두고 자다가 새벽에 가서 불을 끄곤 했다. 그럴 때면 방주인과는 상관없이 큰소리로 떠드는 텔레비전도 꺼줘야 하고 깔개 매트를 안 깔았으면 영희 씨 등허리부터 엉덩이 밑에까지 깔아줘야 한다. 안 그러면 까는 이불, 덮는 이불 할 것 없이 온통 오줌으로 흠뻑 젖는다. 아침에 방문을 열었을 때 지린내가 코를 찌르게 된다.

나도 이젠 중간에 일어나는 게 힘들어 미리 자기 전에 매트까지 봐주고 들어간다. 밤새 영희 씨가 전등불을 환하게 켜고 자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늦은 밤 12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각. 영희 씨 방의 불이 켜져 있었다. 잠자리에 들었나 아니면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가 두 근 한 마음에 방을 들어서니 영희 씨는 기분이 안 좋은 듯 앉아있었다.


"엄마 왜 기분이 안 좋아? 센터에서 누구랑 싸웠어?"

"얘, 여기 좀 앉아봐라"

영희 씨가 이렇게 작심한 듯 이야기를 꺼낼 때면 나는 긴장이 된다.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하고. 보통은 주간보호센터에서 어느 노인하고 대판 싸웠다는 이야기를 하며 분해서 쏟아내는 화며 눈물을 받아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희 씨와 있으면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기도 하다.

마지못해 바닥에 앉았다.

"얘, 애들도 다컸잤니. 근데 뭐하러 내가 여기 있는다니"

"????"

저 문장이 내포하는 감정이 도대체 무엇인지 헤아리느라 내 머릿속은 바빠졌다. 정말 저렇게 생각해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화나는 일이 있을 때 "빨리 죽어버려야지"하는 말처럼 감정을 주체 못 해 내뱉는 말인지.

"그게 무슨 말이야?"

".... 애들도 이제 다 커서 조금 있으면 출가하고 그럴 건데 내가 너네들 힘들게 뭐하러 여기 있는다니"

"응? 쟤들 시집가려면 한참 남았어"

"흐음...... 저번에 갔던 데 있잖아? 거기 갈란다. 밥두 잘해주고.... 거기 가면 저언~수 나 같은 할머니들 많아."

"................"

"그러고 너 직장 다니니깐 쟤들 지들이 밥해 먹고 치우라고 시켜. 안 그러면 네가 얼마나 힘들어"

이제야 영희 씨가 쏟아내는 말이 진심으로 하는 말임을 알았다.

"엄마.... 진짜 가고 싶어? 가면 나나 애들 잘 못 볼 텐데 그래도 괜찮아?"

"정 보고 싶으면 오라고 하면 되지... 이... 너네들 힘들어서 안돼. 거기서 먹고 놀고 그러다 자고 그러면 되니까"


지금의 모습은 그전 모습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말을 할 때 "이... 이...."이런 추임새를 많이 넣지도 않았고 말 터지기 전 아기의 옹알이처럼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던 모습도 없었다.


"엄마, 나 누구야? 조카야, 며느리야, 딸이야?"


이때다 싶어 평소 내 정체를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에게 물었다.


"이.... 딸이지."

"엄마 이름은?"

"이. 영. 희."

"이야~ 엄마 다 기억하네"


그렇다. 엄마는 알고 있었다. 그때만큼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또릿또릿 한 엄마는 요양원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내 손으로 보내게 될 것이었기에 안 좋았던 마음이 엄마가 원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의 부담이 줄었다. 하지만 저게 진짜 엄마의 속마음인 건지, 힘든 자식을 보고 있고 싶지 않아서 내린 어쩔 수 없는 선택인건지에 대한 생각으로 곧바로 대체되었다.

아직은 눈빛에 힘이 들어가 있는 모습인데.... 요양원에 들어가게 되면 혹여나 만날 때마다 흐릿한 눈을 한 엄마를 보는 건 아닌 지 두려움, 걱정이 앞섰다.

시간은 벌써 5년을 내달려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카가 되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