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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뚜 Mar 02. 2022

아기가 된 엄마

치매 엄마와 사는 이야기

지인이 보자고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보는 거라 약속을 잡았다. 나가면서 2~3시간 걸릴 거라고 아이들에게 언질 해놓았다. 평소 나를 부를 때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영희 씨에게도 나갔다 온다고 이야기했다. 마뜩치않아하는 눈치인데 고개는 끄덕였다. 카페는 북적였고 아쉬운 마음에 이야기는 카페에서 산책길로, 다시 식당까지도 이어졌다. 계획보다 지체되어 돌아오게 되어 방문을 여니 고개를 푹 숙이고 쭉 뻗은 다리사이에 두 손을 끼운 채 방한 가운데 우두커니 앉아있는 영희 씨가 보였다. 티브이라도 켜고 있지. 그새 티브이 키는 법을 또 까먹었나 보다. 분위기가 조심스럽다. 올 것이 또 오는 건가.

"엄마! 나 왔어"

영희 씨는 올려다보며 나를 힐끗 째려보다가 이내 바닥으로 시선을 내리꽂았다. 어휴. 또 삐졌구나.


치매는 우울증을 동반한다. 영희 씨의 경우 조울증이다. 어떤 날은 바람에 뒹구는 낙엽만 봐도 깔깔깔 웃어젖혔고 어떤 날은 별스럽지 않은 일에도 오랜 시간 통곡을 했다. 항간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치매환자라는 말도 있으나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 치매는 우울과 짝을 이뤄 사람을 뒤흔들기 때문이다. 당사자뿐 아니라 돌보는 사람까지 극단의 감정을 느끼게 할 때가 있어 삶이 참 고단해진다. 치매 모친을 돌보며 밥해먹는 일상을 쓴 책 <나는 매일 엄마와 밥을 먹는다>에서 모친에게 화내고 소리 지르는 대목은 공감을 넘어선다. 그래선 안된다는 걸 알지만 그 순간만은 미칠 듯한 감정이 솟구치고 어떻게든 분출해야만 다시 돌볼 여력이 생김을 알기에.


나 역시 영희 씨가 이틀에 한 번꼴로 욕실로 들어가 목욕을 할 땐 미칠 지경이었다. 치매여도 남의 시선에 민감한 건 여전했다. 다니는  주간보호센터에서 누가 우스갯소리로 목욕하고 오라거나 비슷한 말이라도 하면 어김없이 욕실로 기어들어갔다. 그 누가 하지도 않은 '냄새나 더럽다'는 말과 함께. 치매진단 전에도 유독 깔끔을 떨어서 쓸고 닦는 것이 일상이었던 영희 씨다. 한번 들어가면 평균 3~4시간이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뜨거운 물을 계속 온몸에 뿌려댔다. 뭐하느라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 한 번은 문을 몰래 열어보았다. 머리를 감고 헹구고 샴푸하고 헹구고 또 샴푸 하고.... 10번도 넘게 그러는 것이 아닌가. 안 그래도 기름기가 없는 머리칼은 더 푸석해졌고 큰 통에 담긴 샴푸는 한두 주가 지나면 수명이 끝났다. 목욕하는 동안은 집안 다른 곳에서 뜨거운 물을 쓸 수도 없었다. 뜨거운 물로 속옷 빨래하려고 세탁기를 돌리거나 기름기 제거하려고 뜨신 물에 설거지 좀 할라치면 어김없이 욕실에서 샤워기로 쾅쾅 문을 쳐대는 소리와 함께 구시렁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엔 왜 그러나 싶어 문을 열어보니 왜 물을 못 쓰게 물을 잠그냐고 어찌나 호통을 치는지. 그게 아니란 내 말은 듣지도 않고 혼자 분해서 버럭버럭이니 차라리 설득을 하기보다 내가 포기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겠다 싶었다. 그 이후부터는 영희 씨가 목욕재계하는 시간은 뜨거운 물을 쓰는 모든 집안일을 멈추었다.

건식욕실인 화장실 쪽 마룻바닥은 썩어 들어간 지 오래고 욕실 문은 퉁퉁 불어 터져 잘 잠기지 않게 되었다. 뜨거운 수증기가 나오는 물을 문쪽으로 쉴 새 없이 뿌려대니 남아있을 턱이 있나. 욕실의자를 돌려 앉아서 문쪽으로 물을 뿌리지 말아 달라고 할 때마다 이야기해도 대답만 잘하고는 다시 자기편 한대로다. 삭신이 쑤시니 뜨거운 물을 계속 퍼붓고 있으면 시원한 느낌이 드는 가보았다.


한 번은 평일 밤 9시에 목욕을 시작한 영희 씨를 빨리 욕실에서 내보내 보겠단 일념으로 욕실로 들어갔었다. 그래도 목욕이 2시간이 넘은 시간이었다. 영희 씨가 샤워기를 뺏기지 않으려고 용쓰는 바람에 샤워기는 여기저기 춤추었다. 입고 있던 내 옷은 다 젖고 끝내 샤워기를 못 뺏은 나는 수전을 꺼버렸다. 그때 나는 넌 인간도 아니라는 말과 쌍욕, 새벽까지 이어진 오열을 고스란히 다 받아야 했었다. 이후론 영희 씨 목욕 시엔 웬만해선 개입을 안 하게 되었다. 끝날 때만 넘어질까 봐 혹은 이불을 다 적셔놓을 까 봐 후다닥 가서 마무리해주게 되었다.


외출 후 돌아와서 지인이 사준 단팥빵을 갖다 드렸다. 좀 있다 가보니 빵은 어느새 사라졌고 슬쩍 얼굴 표정을 보아하니 한결 풀어져 보였다."엄마, 맛있지?"헤헤거리는 영희 씨. 내친김에 푸석한 흰머리를 B와 함께 염색해드렸다. 센터 가서 자랑할 생각 때문인지 벌써 들뜨는 영희 씨였다.

지난번 진료 때 의사에게 들으니 개별적인 차이는 있으나 기억을 완전히 다 잃기까지 6~7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했었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것처럼 눈물짓는 내게 기간상으로 치매 말기에 해당하나 임상적으로는 중기 정도 되는 것 같다는 말도 의사는 덧붙였다. 영희 씨는 진단받은 지 5년쯤 되었다. 이제 평균적인 기준에서 1~2년 남은 것인가. 그 시간 동안 점점 소멸해가는 엄마를 보는 건 지금보다 힘들기도, 슬프기도 한 일일 것이다. 예전에 왔던 요양보호사는 본인 어머니 치매 간호할 때 외출 시 문을 잠갔다고 말해주었었다. 정신은 놓아버렸어도 몸은 멀쩡한 편이어서 안 그러면 밖을 나돌아 다니다가 영 집을 못 찾을 까 봐. 영희 씨는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간다. 만평가 이재관 씨의 그림에 나오는 폴더폰 할머니처럼 허리가 접힌 지 오래다.

1년에 1~2번 차 뒷좌석에 태우고 볼일 보러 갈라치면 그 잠깐의 시간도 영희 씨는 소풍으로 느끼는지 마냥 좋아한다. 산책을 좋아하지 않는 우리 집 고양이가 집에만 있어야 하는 건 안쓰러워하면서 엄마는 집에 있는 걸 당연시하고 있는 내가 어이없기도 하다. 한번 나가면 아이들에 엄마까지 챙길 것 투성이인 게 힘들어 지레 포기한 탓이다.

날씨 따뜻한 날 엄마 모시고 드라이브라도 잠깐 갔다 와야 할까 보다.


이시영 시인의 시를 적어 본다

<어머니 생각>

어머니 앓아누워 도로 아기 되셨을 때

우리 부부 출근할 때나 외출할 때

문간방 안쪽 문고리에 어머니 손목 묶어두고 나갔네

우리 어머니 빈집에 갇혀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돌아와 문 앞에서 쓸어내렸던 수많은 가슴들이여

아가 아가 우리 아가 자장자장 우리 아가

나 자장가 불러드리며 손목에 묶인 매듭 풀어드리면

장난감처럼 엎질러진 밥그릇이며 국그릇 앞에서

풀린 손 내밀려 방싯방싯 좋아하시던 어머니

하루 종일 이 세상을 혼자 견딘 손목이 빨갛게 부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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