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점에는 '가벼운' 문학들이 넘쳐난다. 인간에 대한 고민도, 본인의 내면에 대한 성찰도 없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가벼운 말들이 담긴 책들. 한때는 이런 책들이 한심하다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일종의 기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의 효용이란 무엇인가. 혹자는 '몰랐던 것을 알게 하는 것'이 문학의 효용이라 할 것이다. 물론 독자를 깨우치는 것은 문학의 큰 효용 중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것만이 전부인가?
'가르치는 것'은 문학의 전부가 아니다. 문학은 때때로 독자가 이미 알고 있지만 덮어두었던 마음을 대신해서 읽어주기도 한다. 정여울 작가는 문학을 '지음의 벗'이라 일컬었다. 발견하고 싶었던 나의 마음을 찾아주고, 듣고 싶었던 말을 '나를 미워하는 나' 대신해주는 벗. 대단한 말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일지라도, 그마저도 스스로에게 해주지 못한 이들에게 책은 '지음의 벗'이 된다.
물론 '가벼운 문학'은 누군가의 문제를 근본적 차원에서 해결하지 못한다. 잠깐의 도피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테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근본을 좇으라'는 말조차 기만일 수 있다. 당장 숨조차 쉬기 힘든 누군가에게 근본을 좇을 여력이 있겠는가. 당장 내일 아침이 두려운 누군가가 '내일은 괜찮을 것'이라는, -사실은 근거도 없는 무책임한 낙관주의에 불과하겠지만- 말에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면. 그 가벼운 문장들로 인해 오늘 하루 누군가가 잠시라도 숨 쉴 수 있었다면. 그 책은 자신의 소명을 다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가벼움'이 문학 전체를 뒤덮는 것은 분명 경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게감에 집착하는 태도 역시 좋을 게 없다는 사실, 그리고 문학의 '진정한 효용'. 문학은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