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리 행복한 책은 아니다.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짓는, 대부분의 허구가 가진 자비는 찾아볼 수 없다. 허구이지만 지독히 현실적이다. 너무 현실적이라 아프기까지 한, 비행운(飛行雲)을 꿈꾸다 비행운(非幸運)에 곤두박질친 이들의 이야기들-
짧은 단편들 하나하나에 몰입한 채 책을 읽어나갔다. 때로는 고목에, 때로는 화자에, 때로는 떠다니는 먼지에 감정을 이입한 채로. 책을 덮을 무렵엔 마음이 무거웠다. 무엇보다도 '너는 자라서 겨우 내가 되겠지'라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였다. 예쁘게 아른거리면 좋으련만, 묵직하고 저릿하게 아른거렸다. 나라고 시대의 굴레를 떨쳐내기가 쉬울까. 나라고 다를 것도 없을 테다.
헤세는 시대의 과오와 화해적 관계를 맺은 후에야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기에 그곳에 이르는 길은 아주아주 멀게만 느껴진다. 게다가 시대의 무게와 더불어 존재의 무게까지 견뎌야 한다는 점도 이상과 나 사이의 거리감을 한층 더한다. 아마 나는 간신히 자랄 거고, 행복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비행운(飛行雲)을 꿈꾸고, 그러다 마주한 게 고작 추락이라 비행운(非幸運)만을 남기는, 그런 존재가 되겠지-
책으로부터 뻗어 나온 생각들, 그리고 그 마무리가 퍽 암울하다. 앞서 말했듯, 분명 행복한 책은 아니니까. 그럼에도 작가는 치유하는 글 대신 함께 아파하는 글로써 독자에게 분명한 위로를 건넨다. 마음을 밝히는 환한 위로는 아니지만, 푸르고 짙은 색의 위로는 어두운 마음에 쉽게 스며들어 마음을 달래는 힘을 가진다.
푸른빛의 소설집인 <비행운>이 주는 위로는 그것대로 아름답다. 누군가와 함께라는 사실이 추락을 막을 수는 없다지만, 최소한 이 아픔이 혼자만의 것은 아닐 테니까. 어쩌면 우리는 이 시린 여정 속에서 서로의 온기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온몸으로 맞아내야만 하는 추락의 충격을 안아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 있다면 조금은 덜 아플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