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흐르는 한강
<소년이 온다>를 쓴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지 한 달 조금 넘게 지나
그의 나라에서 대통령이 또 한 번 계엄령을 선포할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
아무리 역사는 반복된다지만 1980년은 역사라기에도 너무 가깝고 생생하다.
그 해에 소년, 청년, 또 중년이었던 많은 이들이 아직 또렷한 정신으로 같은 땅 위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이따금씩 그들의 들숨과 날숨 사이에 턱 하고 걸리는 수많은 동호, 정대, 은숙, 진수, 선주 (<소년이 온다> 속 등장인물들), 어머니와 아버지, 형과 누이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p99)
그런데 우리의 대통령이 마치 이 고통의 감정이 노스탤지어라도 되는 것처럼, 그래서 지금까지 잔존하는 과거를 함께 추모하기보다 그 과거로 모두를 다시 데려다 놓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생뚱맞은 발표를 했다.
연평도 포격 때 군인 둘과 공사장 인부 둘이 숨을 거둔 상황에서도 발표되지 않았던 것이 계엄령이다.
모두들 다시는 미세먼지 따위가 아닌 화약 연기가 자욱한 하늘과 땅을 마주하고 싶지 않기에, 분노하며 제대로 된 대응을 요하는 와중에도 확전을 우려해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전시도 사변도 아닌 상황에서 계엄군을 국회 본청으로 불러 봉쇄하려 해 놓고, 각성한 190명의 의원들이 어렵게 모인 끝에 해제요구 결의안을 의결하자 잠적했다가 한참 후에야 마지못해 해제를 발표했다.
모든 헌법적 절차를 건너뛰고 대놓고 결의안 의결을 막으려 했으니 이는 내란죄가 맞다. 그런데 몇 시간 안에 상황이 종료 돼버렸으니, 몇몇 이들은 친위 쿠데타를 그렇게 허술하게 실행한 게 말이 되냐며 실은 그 몇 시간 동안 다른 꿍꿍이를 해결하려 한 거 아니냐는 의견까지 내고 있다. '취해서 지른 거 아니냐', '영화 <서울의 봄>을 인상 깊게 봤나 보다' 하는 말도 농담인 듯 아닌 듯 인터넷을 떠돈다.
하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그가 진심이었음을 걱정한다.
우리가 갑작스레 그 해 오 월로 완전히 소환되지 않은 까닭은 윤 대통령과 충암고 라인의 무능력함 외에도 국회로 들이닥치는 장갑차를 막아선 국민들과 담까지 넘어가며 회의장에 모인 의원들, 그리고 그들의 보좌진, 방호과 직원들이 보인 저항에 있다.
백발의 노인들마저 국회 앞으로 정신없이 달려가 앉고, 평소 그저 공무원인 줄 알았던 이들이 바퀴 달린 의자를 뒤집어 넘지 못하는 바리케이드를 치고 스크럼을 짜는 동안 그들 머릿속에 울려 퍼진 목소리는 아마 같았을 것이다.
계엄군이라고 해서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도 아닐 테다. 그것에 대한 응답이 갈렸을 뿐.
군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에 불복종하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 지 알고 있다.
국힘 원내대표도 몰랐다고 주장한 계엄령을 야밤에 무장상태로 출동하고서야 알게 됐을 혼란도 짐작이 간다.
그러나 같은 상황에서도 시민을 거칠게 밀쳐내는 군인이 있던가 하면, 그 시민을 다독이는 군인이 있었다.
사태가 마무리되자 고개를 조아리며 사과하고 떠난 이가 있던 반면에, "부끄럽지 않냐"는 물음에 "그렇지 않다"라고 크게 대답한 이 또한 있었다.
투입 병력뿐만 아니라 공군, 육군 사이에서도 서로 우왕좌왕 상황파악을 하느라고 지체된 시간 동안 의원들이 국회에 진입할 수 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군인이 수호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이지, 상급자가 아니다.
안귀령과 군인이 대치한 상황을 되짚는 과정에서도 '만약 총알이 발포되었다면 흥분한 주변인들로 인해 더 큰 유혈사태가 벌어졌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모한 행동이었다'라고 판단할 수는 있겠으나 '군인의 총기를 뺏으려 하다니 멍청한 짓이다', '여자가 여자 했다' 하는 혐오성 발언들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직업군인이 위법적인 계엄령에 의해 맨몸의 시민에게 총구를 겨눈 현실과, 나라에게 어쩔 수 없이 끌려가 초소를 지키던 병사가 민간인에게 총기를 뺏기는 가상 상황을 동일선상에 둬서는 안 된다.
제때 수치심을 느끼지 못한 군경들이 지금이라도 사유하며 스스로에게 도덕적, 직업적 책임을 함께 물을 이유를 뺏어서는 더욱 안된다.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말은 진부하고 위험한 변명이다.
오히려 이 기회를 통해 정당한 항명에 대한 의식을 드높여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쉽지 않기 때문에 함께 해야 한다.
전국 곳곳에서 이미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주말에는 더 대규모로 윤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린다고 한다.
8년 전 촛불이 켜졌을 때의 난, 한국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사와 정치를 잘 알지 못하는 고등학생이라는 핑계로 20차례 넘게 모인 사람들을 뉴스로만 지켜보았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미국에 있다.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정치적이지 않기로 선택'하기 또한 쉽다.
어차피 멀리서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은데 그저 현대사의 큰 물결을 따라 흘러가기로 작정하고 별생각 없이 아침, 점심, 저녁을 먹고, 잠에 들고, 일어나면 그것을 반복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내 영혼이 몸담은 물줄기는 한강이다.
중의적인 의미로 쓴 이 말이 가리키는 모든 것을 사랑한다.
민주주의 국가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통해 이룩한 경제적 호황과 자유가 내가 아는 세상의 근간인 것을 알고 있는 한,
그것이 침범되는 순간 동명의 작가가 쓴 소설에서처럼 내년에 군대에 가기로 돼 있는 남동생 얼굴을 다신 보지 못할까 생각만 해도 아찔한 기분이 드는 한,
나는 필연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뭐라도 적는다.
SNS 공간에도 글을 게시할 것이고, 외국인 친구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최선을 다해 답할 것이다.
현 지도자와 과거의 역사를 부끄럽게 설명할지언정 그 역사로 인해 개정된 헌법과 그 내용이 유효할 수 있게 삽시간 안에 모인 사람들은 자랑스럽게 소개할 것이다.
역사를 선행하는 문학을 더 열심히 읽을 것이다.
이것이 지금 내 곁에 온 동호가 가리키는 나의 양심이고, 내가 들 수 있는 촛불이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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