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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Feb 04. 2024

<우아한 거짓말>을 읽고

누가 거짓말을 하는가

<완득이>를 쓴 김려령의 소설이다.


 천지의 아빠는 조각가였다. 첫째 만지가 태어나자 생계를 위해 일하는 가장이 되어 공사판에서 일하다 사고로 죽는다. 엄마는 악착스럽게 마트에서 일하며 딸 둘을 키운다. 전세비를 올려달라고 하면 이사를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아이들은 전학이 이제 지긋지긋하다. 새로운 학교에서 천지는 화연이의 친절이 고마웠다. 그러나 친구가 아닌 피해자가 되었다. 천지 아버지의 사고를 자살로 소문을 내고 아무렇지 않게 미안하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나랴" 사고를 한다. 언제나 피해자는 피해를 본다. 일부러 생일 초대에 1시간 뒤에 초대를 하고 아이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먹게 한다. 그러나 천지는 그러면 그럴수록 더 악착같이 버틴다. 그래야 왕따가 아닌 게 되니까. 내가 알면서도 봐주는 것이라고 보여주기 위해서. 그러다 천지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에서 자살을 한다.


 천지의 엄마는 화연이네 식당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간다. 이삿짐을 정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화연이네 가게에 가서 짜장면을 시켜 먹는다. 3년 전부터 화연이가 천지를 괴롭히는 것을 학원 선생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천지의 엄마는 적응하느라 그런 것이지 생각하고 천지가 이겨내길 기다렸다. 그리고 아이를 영악하게 키워서는 안 된다는 말도 화연이 엄마에게 했다. 화연이 엄마도 안다. 오죽하면 돈을 받는 학원에서 아이를 내쫓을까, 유치원 시절부터 아이들을 괴롭힌다는 말을 노상 들었다. 화연이 엄마도 그러다가 나아지겠지 하면서도 어느 때는 화연이를 때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 천지에게 아이들이 먹던 음식을 먹게 하는 게 아닌데 후회도 한다.






 그런데 왜 제목은 우아한 거짓말이고 누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일까.


나는 천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화연이는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 즉 진실이 아닌 소리를 한다. 천지의 아버지가 뻔히 사고로 돌아가신 줄 알면서 자살이라고 소문을 내서 천지의 이미지를 깎아내리게 만든다. 의도한 거짓말이다. 천지와는 친하다고 웃으며 아이들에게 과시하지만 결코 둘은 친구 사이가 아니다. 그런데 천지는 이상하게 화연이의 괴롭힘을 기꺼이 받아준다. 거짓으로 사과해도 알았다고 하고, 생일파티 시간이 2시가 아닌 줄 알면서도 2시에 나타난다. 집이 가난하지만 고가의 생일 선물을 주고받자는 제안도 받아들인다. 어디 갈 때까지 가보자라는 마음으로. 천지는 본성이 착하고 여린 아이이다. 거절을 못한다. 그리고 천지는 자존심이 강한 아이이다.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기꺼이 화연이에게 반응을 하는 것이다. 친구인 척하는 것이다. 그래서 천지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마음에는 내키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한 얼굴로 예쁜 미소로 화연이를 대한다. 왜 우아한 거짓말일까. 천지는 안다. 화연이가 불쌍한 아이라는 것을. 진정한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천지는 엄마가 "너는 소중한 사람이야. 싫으면 싫다고 말해야 해"라는 말도 해주고 말상대할 언니도 있다. 화연이는 자신이 아무리 잘못을 해도 따뜻한 사랑으로 가르치려는 부모가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체면으로 대한다. 화연이는 불쌍한 아이이다. 사랑을 받고 관심을 받기 위해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것이다. 천지와 진심으로 친구가 되려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자신의 악의적인 마음을 순수하게 받아준 아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사회에서는 가해자를 옹호한다고 비난한다. 나는 절대로 자라온 환경적인 이유로 가해자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화연이가 지속적으로 천지를 괴롭힐 수 있었던 이유는 잘못이라고 가르치지 않는 주변의 친구들, 선생님, 어른들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천지는 화연이가 불쌍한 줄 알면서, 그리고 친구들도 화연이를 싫어한다는 것을 아는데, 이상하게 친구들이 화연이를 돕는 것이 힘들다. 너무 많은 숫자이다. 혼자 견디기 버겁다. 이름도 모르는, 나를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공격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너무 힘들어서 말도 못 하고 괜찮은 척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외롭고 외로운 혼자만의 날갯짓이 우아한 거짓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거짓말은 천지의 엄마도 하고 있다. 천지의 엄마는 화연이가 살고 있는 동네로 일부러 이사를 한다. 다 알면서 화연이네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다. 천지의 언니 민지에게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화연이를 걱정한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는가. 어느 부모가 자신을 죽인 아이를 걱정할 수 있겠는가. 천지 엄마의 마음은 썩어문드러질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행동은 천지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천지처럼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다. 화연이가 진정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주변의 사람들이 진심으로 사과를 할 때까지 천지를 위해 버티는 것이다. 그 모습은 자식을 가진 부모만이 할 수 있는 거짓말이다. 처음에는 너무 억지스러운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고 이렇게 거짓 연기를 할 수 있나 싶었다. 부모는 죽을 때까지 오로지 자식 걱정만 하고 자식은 부모가 돌아가셔야 부모를 생각한다. 독일의 혁명가 로자가 떠오른다. 자신을 믿고 우리 모두 소중한 사람임을 믿기에 그래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자존심을 지켰다. 억지스럽지 않게 당당하게,  눈물 흘리지 않는 그 모습은 우아한 모습이다. 존엄하고 존경스러운 모습이다. 피해자는 더 당당해야 한다. 가해자가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하게 해서도 안 되고, 사과가 아닌 동정을 하게 해서도 안 된다. 나는 두 번째 눈물이 더 멈추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무리 외쳐도 사과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겠는가. 그래도 그들은 아이들을 위해 존엄한 존재임을 인정받기 위해 끝까지 사과를 요구할 것이다. 당당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그들의 마음을 알기에 나도 끝까지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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