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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Mar 14. 2024

"자전거 도둑" 공연을 보고

박완서의 낭독공연은 매년 3월에 구리 아트홀에서 열린다. 구리 아치홀 마을에 사셨던 작가님을 구리시는 매년 추모 행사로 기린다. "자전거 도둑"은 아이들이 읽는 동화이다. 초등 교과서, 중등 교과서에 실려있다. 동화로 낭독공연은 처음이라고 한다. 


처음 "자전거 도둑"을 읽었을 때 수남이가 느끼는 양심의 갈등을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그만큼 나는 때가 묻은 어른인 것이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 합리화를 시킨 것일 수도 있다. 


거의 10여 년 전, U턴을 하면 안 되는 사거리에서 카메라도 없고 너도나도 U턴을 하길래 나도 아무렇지 않게 U턴을 하고 길을 내려가는데 앞 차들이 한 줄로 서있다. 경찰이 숨어있다가 불법 U턴한 차들을 잡은 것이다. 맨 앞 트럭은 격렬하게 경찰에게 따지고 있다. 갑자기 나타나는 게 어디 있냐,  나는 하루 벌어 사는데 너무 하다, 너무 급한 상황이라 그랬다 봐줘라, 등등 안 들어도 뻔한 소리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척 당당한 큰소리인지 경찰이 쩔쩔맨다. 시간이 흐른다. 나는 세 번째 차량이다. 아이들을 태운 나는 나의 차례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갑자기 도로에서 구경하던 사람이 나에게 말한다. 그냥 가라고, 뭐 기다리냐고, 얼른 가라고, 어, 정말 그래도 될 것 같다. 경찰 혼자 감당하기에 많은 숫자이고 트럭 운전사와의 논쟁? 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나는 슬금슬금 차를 옆으로 뺐다. 그리고 쌩 하니 달렸다. 사실 쫓아오면 어쩌나 겁도 나고 무서웠다. 그런데 정말 그냥 가라고 응원? 한 사람들이 큰 힘이 되었다. 잡히면 빌지 뭐, 아, 그래도 벌이 더 가중되는 거 아니야, 양심의 갈등이 계속 들려왔다. 손에 식은땀도 나고 차마 백미러를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참 후에도 소리가 나지 않아 경찰이 안 따라옴을 확인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의 차례를 기다린 것이 좀 바보 같았다고도 여겨졌다. 그리고 저녁에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런데 남편이 이 사람 큰일 날 사람이라며 놀라는 것이다. 그냥 범칙금 내면 되지, 그렇게 뺑소니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순간 정말 수남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자전거 도둑'을 읽으면서 수남이가 짐을 싸고 시골까지 내려가나 싶었다. 공연을 보면서 느꼈다. 낭독해 주는 배우들의 또랑또랑한 발음에 박완서의 시선이 느껴졌다. 오늘은 보리밭의 바람 소리가 무척 마음에 와닿는다. 바람은 도시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손님이 아니다. 그러나 시골의 바람은 생명의 손님이다. 그런 시원하고 깨끗하고 청명한 바람에 온몸을 맡기고 싶다. 드넓은 벌판에서 나는 얼마나 작으냐 소리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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