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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Apr 01. 2024

"100 인생 그림책"을 읽고

쓸모의 시대


그림책 동아리에서 "100 인생그림책'을 읽었다. 제목처럼 태어나서 100세까지 인생을 나이 순서대로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



0 난생처음 네가 웃었지. 널 보는 이도 마주 웃었고


4 어떤 맛들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니?


7 세상은 너에게 정말 새로울 거야. 모든 걸 꼼꼼히 들여다보네


20 열다섯 살이었던 때가 언제였나 싶을 거야. 5년 전이 정말이지 아득한 옛날 같을 거야


36 꿈 하나가 이루어졌네. 하지만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를 거야


39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은 한 번도 없었을 거야


43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법도 배웠고


45 지금 그대로의 네 모습을 좋아하니?


46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게 어떤 기분인지 이제야 진짜로 배우고 있구나


51 이제는 부모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구나


56 이제는 세상에 무심해졌구나. 달 한번 제대로 올려다보질 않네


67 너는 어쩌면 세상을 발견할지도 몰라


70 너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지? 생전 처음 해본 일이 아주 마음에 든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을 거야


74 어쩌면 생전 처음으로 나랑 딱 어울리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어


80 마침내 때가 되었다는 걸 느끼는 순간, 너는 지금 이 순간을 훨씬 충실히 살 수 있어


81 이제는 나이를 한 해 한 해 세는 게 아니라 행복하게 보내는 순간순간을 세고 있다고?


82 뭘 하든 시간은 전보다 곱절이 들지


92 죽음? 그래! 오고 있어


94 빈 나무딸기 잼 병을 지하실로 가져다 놓으면서 너는 생각하지. 누가 알겠어. 이제 또 필요할지?


95 그러면서 너는 다시 나무딸기 잼을 만드는구나


97 사람들이 온갖 질문을 퍼붓지. 인생이 네게 무엇을 가르쳐주었냐는 거야


98 그러면 종종 예전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갈 거야


99 살면서 무엇을 배웠을까?



내가 지나온 시간에 대해서는 정말 그때는 그랬지 하는 공감의 마음이 들었고 내가 지나가야 할 시간에 대해서는 아, 이런 감정을 느낄 수도 있구나 하는 놀라운 마음이 들었다.  지나온 50이라는 인생은 변화의 폭이 무척 큰 곡선그래프 같다고 느낀다면 앞으로 남은 50은 왠지 큰 변화가 없고 잔잔할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나마 좋게 이야기한 것이 이 정도이다. 그러나 안 좋게 말하면 남은 인생은 그 어느 때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불안하고 암울한 시기인 것 같다. 육체적인 건강이 가장 염려가 되고 일자리가 없으면 생계를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가 이중적인 불안 요소가 있다. 열심히 일한 우리에게 왜 노후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는가, 우리는 왜 노인이라는 단어가 싫은 것인가.



일본 영화 "플랜 75" 예고편을 우연히 보았다. 정부가 75세 이상 국민에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부여하는 법안을 제정하여 노인들에게 존엄사를 부추기는 이야기이다. 우리보다 더 심각한 고령화 사회의 일본 답게 통찰력 있는 생각거리를 대중들에게 던졌다. 고령화는 왜 문제인가. 노동을 할 수 없는 인구가 늘어나면 국가는 운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육체적인 쇠락으로 의료 서비스를 많이 지원해서 경제적인 면에서 마이너스가 된다. 그런 매스컴의 메시지는 은연중에 대중에게 노인은 문제라는 이미지를 만든다. 노골적인 말 대신 은밀하게 숨어있는 노인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꼰대, 옛날 사람이라는 말로 비하한다. 오로지 생산성 있는 노인만이 멋진 모습으로 매스컴에 비치어진다. 아직도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는 70세는 74세에 생전 처음으로 나랑 딱 어울리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세상을 발견할 수도 있다. 하루하루는 그냥 처음 살아가는 인생이다. 노인은 우리와 똑같이 느끼고 실수하고 살아가는 '사람'이지 '노인'이라는 특별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원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지만 태어나서 많은 일을 겪고 사랑하며 하루하루를 산다. 마치 민들레가 피어나고 수많은 홀씨를 뿌리고 꽃이 되는 것처럼 우리는 '나비가 찾아오는' 꽃이 된 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이야기를 나누고 바라보고 싸우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는 모든 나의 행위는 타인과 연결되어 있고 영향을 주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로 타인에게 끝없는 도움을 받고 있다. 나의 주변에는 최소한 두 명의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죽을 때까지 오로지 나만을 걱정할 사람, 엄마와 아빠, 그리고 죽을 때까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 아들과 딸, 그리고 홀로 할 수 없는 일을 같이 하는 반려자,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반려동물, 사회 활동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들, 따뜻한 정을 주고받는 친척들, 친구와 지인들, 누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 연결되어 있는 소중한 사람이다. 우리는 결국 남들과 함께 살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 그리고 아무도 나를 경제적인 면으로만 평가하지 않는다.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 누구나 노인이 된다. 노인은 우리 사회에서 서로 연결되어 도움을 주고받는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다.



나는 부모님의 부재로 비애를 겪었다. 함께 할 수 없다는 아쉬움과 사랑할 기회가 줄어듬에 따른 후회, 보고 싶은 마음, 만질 수 없는 고통이었다. 지금은 다른 면에서 부모님이 그립다. 존재만으로 민들레의 홀씨처럼 퍼지는 기운이 유독 그립다. 더 많이 연결되어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아야 하는데 그 존재만으로도 엄청난 의지가 되는데 그들의 말 한마디 지혜가 필요한데 그들의 부재가 그립다. 예전에는 노인은 지혜의 상징이었다. 동네의 연장자에게 지혜를 얻기 위해 찾아갔다. 지금은 흔히 합리적인 사고라 생각하는 과학적이고 경제적인 사실만을 지혜라고 생각하여 검색을 통해 지혜를 얻는다. 그러나 살아보면 알지 않는가. 어른들 말씀 틀린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감히 누구를 위해 한 사람의 안락사를 권고하는가. 한 사람을 쓸모로 평가하는 지금, 영화의 섬뜩한 내용은 우리의 민낯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가야 할 시간이 오히려 더 인간적인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저 그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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