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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Oct 25. 2024

<네모난 자리들>을 읽고

미로

십 년 전 어머니는 나를 낳고 키웠던 그 집에 가보기로 했다. 많은 골목과 계단이 구부러지고 꼬였다가 다시 펴진 뒤 알 수 없는 길들로 이어졌고 하나의 길로 좁아지는가 하면 폭죽처럼 무수한 길 다발을 쏟아내는 미로 같은 길을 걸어 올라갔다. 산 중턱에 이르러 둘은 숨을 돌렸고 광둥어로 부르는 노래처럼 아련하고 서정적인 바람이 불었다. 한참 후 정상에 오르자 모두가 비슷해 보이는 집 중 하나에 어머니는 들어갔다. 문 앞으로 뛰어나온 아주머니의 미소만 기억할 뿐 나는 멍하니 앉아있다가 내가 태어난 그 방, 네모난 부재의 그곳을 봤다. 

나는 선배를 좋아한다. 그 사람은 학교 앞 대로변에 있는 건물에 살았다. 늘 불을 켜고 있다. 우리는 학교 사람들과 놀고 더 이상 갈 곳이 없자 학번이 가장 높은 선배의 7층 빌라 꼭대기 옥탑방으로 향했다. 첫차가 다닐 시간 나는 몰래 그곳을 빠져나왔고 선배와 마주쳤다. 한 시간째 둘은 지하철을 향해 미로와 같은 골목을 미친 듯이 헤맸다. 그 후 선배는 휴학을 했고 서서히 사람들에게 잊혔다. 그런데 그의 방 불은 켜져 있다. 나는 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방문을 두드린다. 네모난 그곳에는 시의 구절이 적혀있었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어제저녁 나는 동대문구 미로와 같은 마을에서 1시간을 헤맸다. 똑같이 생긴 집들이 똑같은 길에 있었다. 어쩜 골목의 냄새도, 집들의 색깔도, 키우는 화분도, 담쟁이도 똑같을 수가 있을까. "여기다, 저번에도 이런 화분이 있었어요."나는 외쳤다. 그런데 00번 길이 아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잡고 물어봐도, 분명 그곳에 사는 사람들 같은데 00번 길 0을 모른단다. 00번 길과 00길이 다른다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나중에 깨닫고 다시 네이버에 주소를 검색했다. 벌써 네 번째 난민집 방문인데 저녁이라 더욱 길치가 되었다.. 게다가 차를 가지고 가서 좁은 길에서 차를 맞닥뜨릴 때마다 식은땀을 흘리며 후진을 해야 했다. 이제는 차를 버리고 걷기로 했다. 담 너머로 웃음소리, 식구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리는 낭만은 없었다. 도시에도 칠흑 같은 어둠이 존재함을 알았다. 나는 소설 속에 나오지 않는 어둠을 느꼈다. 도시의 주름 같은 미로길보다 나는 그 무서운 어둠이 잊히지 않는다. 누가 몰래 업어가도 모를 것 같은 어두운 고요였다. 한참을 헤매고 드디어 샘터교회가 생각이 나고 전에 주차할 뻔한 공간이 익숙해지면서 00길 0을 찾았다. 아, 난민이 환하게 웃는다. 낮에 방문할 때는 몰랐는데 그들이 이런 공간에서 살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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