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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Nov 07. 2024

<건너편>을 읽고

크리스마스에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자고 이수는 말한다. 도화는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둘은 섬초시금치를 먹고 평소보다 달게 잤다. 내장 안에서 녹색 숯이 오래 타는 기운, 식물에너지가 어두운 몸속을 푸르스름하게 밝히는 기분, 영혼이 녹색불을 쬐는 기분을 느꼈다. 이수는 제철음식을 먹어서인가 대답한다.

둘은 노량진 고시학원 근처 강남교회 무료 배식식당에서 만났다. 이수는 7급 공무원시험에 떨어지고 도화는 경찰청 교통안전과 정보센터에서 일한다. 도화는 수사도, 과정도, 왜곡도 없는 사실의 문장을 점점 신뢰했다. 

이수는 친구 결혼식에 사회를 보고 오랜만에 만나 친구들과 술을 마신다. 이수는 새벽에 택시를 타고 들어온다. 도화는 자꾸 이별을 미루어지게 만드는 상황이 맘에 들지 않는다. 이수는 육 년 동안 공부를 한 후 부동산 컨설팅 회사에 들어갔다. 실적 압박이 컸다. 이수는 도화 몰래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전세금에 손을 댔다.

크리스마스니까 외식을 하자고 이수는 고집한다. 둘은 고시학원이 아닌 노량진 시장은 처음으로 가본다. 이수가 알고 지낸 선배는 장사를 그만둔 상황이다. 이수는 고집스럽게 이십오만 원짜리 줄돔을 시킨다. 도화는 드디어 이별의 말을 전한다. 그냥 내 안에 있던 어떤 것이 사라져서라는 이유를 댄다.  







영화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를 보는 것 같은 소설이다. 제철음식을 먹고 속이 편하게 느끼는 도화는 이별을 준비한다. 우리는 자연이다. 어쩌면 사회가 만든 시스템도 자연의 흐름에 맞게 인류가 축적한 문화유산이지 아닐까. 공부하는 시기, 일하는 시기, 사랑하는 시기는 제철음식처럼 때에 맞게 해야 하는 것 같다. 시기를 놓치면 불안하고 제철음식이 아닌 양 거북하고 소화가 되지 않는다. 김애란 작가의 섬세한 감각과 관찰은 항상 나를 놀라게 한다.  


니콜라스 파티의 <더스트> 전시를 보았다. 사계절을 그린 그림이 가장 나의 마음에 와닿았다. 나는 가을부터 계절은 시작한다고 생각해 보았다. 열매를 맺는 가을에는 씨앗이 남는다. 그 씨앗이 있어야 봄이 오고 풍성한 여름을 다시 맞아 열매를 또 수확하게 된다. 그러나 그 사이 겨울이 있다. 겨울은 왜 있는 것일까. 모든 것을 얼어버리게 하는 부동의 계절은 왜 필요한 것일까. 곰은 겨울잠을 잔다. 식물도 겨울눈을 키운다. 다시 도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휴식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건너편> 소설에서 그들은 잠시 휴식의 시간이 필요하다. 서로 건너편에서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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