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몫의 약속
이렇게 동네방네 광고를 하고 여행을 가기는 처음이다. 말없이 갔다가 조용히 오는 것이 나의 스타일인데 40일간의 여행은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의 빈자리를 부탁할 일이 생기거나 참여를 하지 못한다고 말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40일 동안 글도 써서 더 동네방네 알리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라 듣는 사람들은 모두 부럽다는 반응이다. 게 중에는 다녀온 사람들도 있다. 엘리자벳 자매님의 전화를 받았다. 벌써 떠나는 날이 왔냐며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주는데 조금 안심이 된다. 다 할 수 있다며 용기를 주신다.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어떤 반응을 하셨을까. 아마 나에게 미쳤다고 했을 것 같다. 남편 없이 혼자 왜 가냐고 반대를 했을 것 같다. 아주 보수적인 시절, 통금 시간이 10시였던 그 시절에 나는 고명딸이었다. 배낭여행은 물론이고 해외 연수도 꿈도 꾸지 못하게 입을 막았다. 그래도 투쟁하여 해외 연수라는 허락은 받았지만 사실 나는 그때 그냥 내 신세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인 반항심으로 말했을 뿐 해외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안 가도 그만이었다. 이제는 젊은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위험은 줄었다. 그래도 엄마는 왜 남편이랑 같이 가지, 남편을 다 시키지, 네가 혼자 고생이냐며 딸을 위하는 마음으로 반대를 했을 것 같다. 성경 공부를 할 때 예수님이 자신의 고난을 예고하자 베드로가 반박하며 대립하는 장면이 나온다. 베드로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자신이 사랑하는 스승이 고난을 받는다니 걱정이 되는 마음과 자신도 같은 고난을 받게 될 것이라는 두려우면서도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었을까. 마치 딸들이 엄마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딸들은 왜 그런 말을 할까. 베드로랑 비슷하다. 사랑하는 엄마가 바보 천지처럼 희생만 하는 모습, 누구에게 대들지도 못하는 모습에 화가 나고 같은 여자이기에 나도 비슷한 인생을 겪지 않을까 하는 걱정스럽고 두려운 마음일 것이다. 나도 엄마처럼 살기 싫었다. 나보다는 가족이 우선이고 모든 것을 근검절약하고 남동생 때문에 공부도 하지 못하는 인생을 원망하지 않는 것이 싫었다. 엄마는 늘 나에게 남편 그늘에서 편히 있으라 했다. 그러나 조금씩 나의 것을 나 스스로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줄 때는 응원도 하셨다. 아니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다니셨다. 이 여행은 나를 위한 여행이면서 엄마를 위한 여행도 될 것이다. 엄마가 못한 거, 엄마가 두려워했던 거를 내가 대신해보아야겠다. 김기태의 <무겁고 높은> 소설에서 딸은 100kg 바벨을 들고 싶어 한다. 아버지를 닮아 힘이 세다. 딸이 역도를 하는 이유는 바벨을 번쩍 든 후 힘껏 내던지는 그 소리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단지 그 이유이다. 메달을 따서 올림픽에 나간다거나, 어려운 형편에 도움을 주고 싶다거나 그런 비현실적인 이유는 없다. 나는 그 부분이 좋았다. 힘껏 내던지는 기분, 아, 나도 순례길에서 딱 그 기분을 느끼고 싶다. 엄마와 세상이 나에게 강요하고 교육한 모든 괴상한 것, 내가 스스로에게 강요한 한심한 것을 내던지고 싶다. 이제 나도 세상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