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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 산티아고

불운과 행운은 동시에

by 하루달

자명종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그럴 리가 없지만 혹시라도 공항에 늦게 도착하면 큰일이라는 마음에 잠을 설쳤다. 눈을 뜨자마자 문자를 확인했다. 오 마이 갓 대한항공이 1시간 지연된다며 미안하다는 내용이다. 아니 비, 눈이 오는 것도 아니고, 강풍이 부는 것도 아닌데 왜 지연이람, 나의 미션이 3시간에서 2시간으로 줄어드는 순간이다. 미션이란 드골공항에서 오스테리츠까지 RER을 타는 것이다. 아, 초행길인데 불안하다. 공항에 아들이 데려다주었다. 나는 아들이 운전하는 것이 더 불안하다. 갈 때 조심히 운전하라고 마지막 폭풍 잔소리를 마쳤다. 커피와 카스텔라를 주문하고 한가하게 김동률의 출발 노래를 듣고 동생이랑 통화를 했다. 1시간 지연됐다며 징징 거리니까 40일 여행하는 사람이 왜 이리 성급하냐며 웃는다. 나의 미션을 설명하니 잘할 수 있다며 용기를 준다. 딱딱한 의자가 불편해서 게이트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카톡을 보내고 있는데 저기요, 소리가 들린다. 귀엽게 생긴 아가씨가 산티아고 가냐고 묻는다. 깜짝 놀랐다. 자기도 간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꺅 소리를 질렀다. 여기는 한국인데 너무나 반가운 한국인이다. 이어서 폭풍 수다가 이어졌다. 야간 기차를 예매한 것도 같고, 혼자 여행하는 것도 같고 퇴사를 하고 떠나는 것도 같고, 공통점이 많았다. 우리는 지연됐으니 우버 택시를 타자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또 50분이 지연되었다. 저녁 9시 45분까지 야간 기차역에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하물을 찾고 있는 지금 9시다. 우리는 omio앱으로 마지막 남은 야간버스를 서둘러 예약했다. 여자 혼자는 무서워서 타기가 엄두가 나지 않는 버스를 둘이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아침에 기차를 놓치면 파리에서 그냥 1박을 하라고 했다. 그러면 모든 알베르게 예약한 것이 꼬인다. 나 혼자였으면 어쩌냐며 울었을텐데 둘이니까 용기를 내서 바로 문제를 해결했다. 그런데 수하물을 찾는데 한국인 한 명을 또 만났다. 야간 버스를 탄다고 한다. 꺅, 또 반가운 한국인이다. 우리는 T3을 찾아 뛰었다. 프랑스는 승객이 오지 않아도 떠난다고 한다. 다시 폭풍 수다가 이어졌다. 지연되어 나의 로망 야간 기차의 꿈은 사라졌지만 행운처럼 한국인 순례자를 두 명이나 만나 든든했다. 이것이 초행자의 행운인가.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당신들을 만나다니. 두려울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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