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사진가의 일기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지 5개월차. 무엇에든 빠지기 시작하면 열심히 하게된다. 말 그대로 ‘열심’ 이다. ‘뭘 찍을까’, ‘어떻게 찍을까’, ‘그 사진 참 좋았는데’ 등을 생각하다보면 두근거리는 심장에 열이 나 잠에 못들 정도로, 사진에 열심이 되어버렸다.
처음 재미로 사진을 찍기 시작할 무렵엔 아무거나 막 찍었다. 그러다 사진을 배우기 시작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뭘 찍어야 할지 몰라 주저하고 망설이는 순간이 늘어났다. 카메라를 들었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찍어 놓고 별로다싶어 다시 보지 않기도 했다. 내 사진이 예쁘지 않았다. ‘난 왜 이렇게 사진을 못 찍을까’ 하며 스스로를 기죽였다.
<‘못찍을 때’ 찍은 사진>
내가 생각하는 ‘잘함’의 기준은 타인의 시선이었다. 내가 좋아 찍는 것이면서도 대체 왜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지, 다수의 ‘좋아요’를 받는 예쁘고 트랜디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마음에 그런 사진을 찍으려 부단히 애를 썼다. 그러나 결국 열심히 찍어놓고 보면 그런 사진과는 결이 다른 내 사진에 또 혼자 주눅들고 마는 것이었다.
급기야 2개월 차 사진수업 날, “선생님 제 사진은 다른 분들 사진처럼 안 예쁜 것 같아요. 저는 예쁜 사진을 잘 못 찍겠어요. 제가 찍어준 사람들도 제가 찍은 사진이 별로 안 예쁘게 나왔다고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하고 한탄했다.
선생님은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리요 님에겐 리요 님만의 시선이 있어요. 일단 그걸 쫒아가면서 좋아하는 걸 재미있게 찍으면 돼요. 내가 부족한 걸 찾으면서 그걸 잘하려고 하기보다, 지금 잘하는 걸 재밌게 하다가, 나중에 부족한 부분을 연습해도 돼요.“ 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조언과 수강생 동기들의 피드백에 위로와 용기를 얻은 나는 그 이후 닥치는 대로 찍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일주일에 100장 정도 찍다가, 500장, 800장, 1000장을 찍어댔다. 그래도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내 관성이 급변하진 않아서, SNS에서 본 사진에 나온 것과 비슷한 장소, 비슷한 시간대에서 사진을 찍게 되면 또 그걸 따라해보기도 했다. ‘예쁘게 찍어야지, 예쁘게!’ 하면서, 뭔가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의 사진들도 계속 찍었다.
최근엔 야경 사진에 빠져서 퇴근하자마자 따릉이를 타고 마구 달려갔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걸어 어깨에 지고, 티셔츠가 다 젖도록 땀을 쩔쩔 흘리며 바쁘게 사진을 찍었다. 벤치에 기대 앉아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헤드셋을 끼고 혼자 낚시를 하는 사람, 반려견과 돗자리에 나란히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 예쁜 것 투성이였다.
그렇게 사진을 찍다가, 돗자리에 앉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어딘가를 보고 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오 예쁘다!’ 하면서 카메라를 들고 뷰파인더로 그들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들은 뭘 보고 있는 걸까?’
들었던 카메라를 도로 내리고 나도 그 사람들이 바라보는 곳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그곳에는 울렁이는 물결, 강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해가 없는 밤 전깃불에 빛나는 도시가 있었다. 예뻤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떻게 찍었건, 혹은 찍지 않았건, 내가 보거나 스쳐간 모든 것들이 아름다웠을 것이라는 생각.
카메라를 든 나는 내가 본 것이 예쁘다고 생각하여 기록하지만, 분명 그 순간에 내가 기록하지 못한 것들 또한 예뻤을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찍은 사진은 예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가 찍은 대상들은 내 사진 밖에서도 ‘있는 그대로’ 예쁘지 않을 리가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어차피 다 예쁜데 내가 굳이 ‘예쁜 사진’에 얽매일 필요가 있나. 사람 보는 눈도 다 달라서 자기마다 예쁘게 보는 것이 다른데, 나 좋자고 찍는 사진을 남 좋자고 바꿀 필요는 없을 테다. 예쁜 사진에 얽매여 오히려 내가 그 소중한 순간을 마음에 담지 못하고 스쳐지나가게 된다면, 나로서는 그런 시간들이 도리어 안타까울 것이었다. 다시금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나는 왜 찍고 싶은가?
나는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고 싶어서 찍기 시작했다. 사진이 예뻐서라기보다, 단순히 기록이기때문에 좋아했다. 이 시공간을 뛰어넘는 기록물의 매력에 빠져 사진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사진은, 내가 보낸 시간의 반영이자 함께 한 대상과의 추억의 잔상이고, 기억의 파편이다. 앞으로는 또 어떻게 될 지 모르겠지만, 처음 가진 마음 그대로,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 또 열심히 셔터를 누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