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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완성 자서전 Aug 23. 2023

나에겐 세 개의 미국 운전면허증이 있다   

나에겐 세 개의 미국 운전면허증이 있다. 미국의 운전면허증도 한국의 그것처럼 내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신분증 중 하나이다. 5년이 채 되지 않는 미국생활 동안 내가 세 번이나 운전면허증을 다시 발급받아야 했던 건 각각의 운전면허증마다 담아야 했던 나의 처지가 변해왔기 때문이다.

 

"이민 서류 가지고 오셨나요?"

 

며칠 전 세 번째 운전면허증을 신청하러 DDS (Department of Driver Services, 차량 운전면허 발급 등을 담당하는 기관인데 주마다 명칭이 조금씩 다르다)에 갔을 때, 문 앞에서 안내를 돕던 분이 건넨 말이다. 내 외모만으로 내가 미국 시민이 아닌 이민자일 것이라 판단받는 이런 일쯤은 이제 익숙하다.

 

그는 내가 건넨 영주권 카드를 확인하더니 나를 번호표를 뽑는 곳으로 안내해 주었다. 그렇게 번호표를 뽑고 창구에서 나의 세 번째 운전면허증을 발급받기까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신청 당일에는 실물 면허증 대신 발급 확인증을 준다.) 일을 처리하고 건물을 나서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여전히 완전한 이방인도 그렇다고 이 나라 사람도 아닌 경계에서 살고 있지만, 예전과 다르게 나의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서류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게 신기했다. 이제는 체류기한이 정해져 있는 비자가 아닌 영주권이 나의 신분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에서 영주권을 받고 갑자기 이민 1세대가 되어버린 오늘이 오기까지 우리 가족에게 일어났던 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스치는 날이었다.

미국은 일처리 속도가 느리기로 악명이 높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다


난 남편의 일 문제로 4년 전 남편, 첫째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차가 없으면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한 곳으로 이사를 왔기 때문에 한국에서 가져온 국제면허증으로 입국 다음날부터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선 운전경험이 거의 없는 초초초보운전이었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어찌어찌 운전을 하고 다닐 수 있었다. 문제는 한국에서 가져온 국제면허증은 발급일로부터 1년 동안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만료기한 전에 미국 운전면허증을 따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내가 살던 주(state)에서는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통과한 후 주행시험을 보려면, 시험에 사용할 차량과 그 차량을 시험장까지 운전해 줄 운전면허 소지자와 함께 시험장으로 가야 했다. 당시 가깝게 지내던 언니를 대동하고 시험장에 도착했는데 그까짓 운전면허 시험이 뭐라고 심장 뛰는 소리가 몸 밖으로 들릴 지경이었다. 언니와 파이팅을 외치고 주행시험을 치르기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시험관이 한숨을 쉬어대기 시작했다.


'왜 그러지? 나 잘못한 거 없는데...?'


그렇게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으로 주행시험을 마치고 시험장으로 돌아와 주차를 하니 시험관이 어두운 표정으로 성적표를 건넨다.


"미안하지만 불합격이야. 너무 느리게 주행했어. 느린 속도로 차량흐름을 방해하는 것도 과속만큼 위험해."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이유였다. 어찌나 긴장을 했던지 내가 느리게 달리고 있는지 조차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아니면 '나 이렇게 안전운전 잘해요'를 보여주고 싶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믿을 수 없는 결과를 받아 들고 날 기다리고 있던 언니에게로 돌아갔다. 시험이 끝나면 같이 맛집에서 뒤풀이를 하자고 약속했었는데 너무 창피하고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나서 다음을 기약하고 그냥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오는 길엔 보란 듯이 (소심하게) 액셀을 밟아댔다.


그렇게 한 번의 고배 후 운전연수 선생님까지 수소문해서 수업을 들은 후 두 번째 시험을 보았고 마침내 운전면허증을 받아냈다. 드디어 나에게 첫 번째 미국 신분증이 생긴 것이다. 이젠 여행자가 아닌 미국에서 사는 거주자로서의 삶을 본격적으로 살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떨리면서도 설레는 순간이었다.


그 후 미국에서 여행자가 아닌 거주자로서 사는 동안 늘 우리 가족을 불편하게 했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 월세였다. 한국에도 월세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우리 가족에겐 어딘가 손해를 보는 듯 불편한 제도였다. 미국에는 한국과 다르게 전세 제도가 없으니 월세가 아닌 유일한 옵션은 미국에서 집을 구매하는 방법뿐이었다.


"그래, 미국에서 집을 사보자."


하필 왜 그때 그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시기를 택하고 말았다. 태어난 지 백일도 안 된 갓난아기를 데리고 이사를 해야 했고, 미국 주택시장은 수요대비 공급이 적어 천정부지로 가격이 오르고 있을 때라 집을 파는 사람이 갑, 사는 사람은 을인 시기였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집값을 보면서 몇 년 더 버티다가 가격이 좀 떨어지면 살까? 아님 조금이라도 더 오르기 전에 살까?를 고민하다 보니 시간이 흘러버렸고, 결국 거의 가격이 정점에 있을 때 집을 사고 말았다. 또 다른 문제는 원래 살고 있던 지역에서 우리 예산에 맞으면서도 마음에 드는 집을 찾을 수가 없어서 미국 서부에서 동부로 대장정을 해야 하는 장거리 이사를 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곧 이사 이야기도 글로 옮겨보기로 한다.)


이사를 온 후 대충 집 정리를 마친 어느 날, 난 예전에 살던 주(state)의 운전면허증을 들고 이사 온 조지아(Georgia) 주의 운전면허증을 발급받기 위해 서두에 이야기했던 DDS라는 곳을 찾았다. 참고로 미국의 운전면허증은 연방정부가 아닌 주정부에서 발급을 하기 때문에 거주하는 주가 바뀌면 운전면허증도 새로 발급을 받아야 한다. DDS 직원은 나의 이민 서류와 내가 조지아주에 살고 있다는 증빙서류 등을 확인하더니 새로운 운전면허증 발급 확인서를 건넸다.


"Welcome to Georgia! (조지아주로 온 걸 환영해!)"라는 말과 함께.


그렇게 미국에서 구매한 첫 집으로의 이사를 끝내고 이주한 조지아주에서 발급해 주는 운전면허증까지 받고 나니 이젠 단지 미국에 사는 사람이 아닌, 미국에 정착을 한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정착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우리 가족은 여전히 기한이 정해져 있는 비자 신분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우린 또 한 번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바로 이곳에 얼마나 오랫동안 정착하여 살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아직 이 질문에 대해서 명확한 답을 내리지는 못했다. 운이 좋게 영주권을 받을 수 있게 되어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을 벌어놓은 정도의 상황이다. 미국에서 원하는 만큼 오랫동안 살 수 있는 자격은 얻었지만, 정작 미국에 계속 살고 싶은지, 그렇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머릿속이 어지러운 상태로 우당탕탕 이민 1세대로서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미국으로 처음 이사를 올 때 많은 사람들에게서 부럽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런데 문득, 정작 나는 부러움을 받을 만큼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 정착하여 살아보니 이곳에서도 여기가 미국인지 한국인지 헷갈릴 만큼 한국과 다름없는 일상의 고민들을 안고 살게 된다. 미국에서 보내고 있는 지금의 이 시간을 위해 한국에 계시는 연로한 부모님과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포기해야 했고, 내 20~30대의 전부였던 커리어를 멈추어야 했다. 지금 나는 과연 나중에 이런 선택들이 후회되지 않을 만큼 미국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고민에 머리가 무거워진다.


일단 오늘은 세 번째 미국 운전면허증을 받기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역할들을 해내며 열심히 달려온 나와 나의 가족들을 칭찬해주고 싶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반복되는 작은 일상의 고민들보다는 우리 가족이 무엇을 위해, 어떤 것들을 희생하며 미국에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의 이 시간들을 더 의미 있게 살아낼 수 있을지에 대해 더 고민하려고 한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우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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