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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완성 자서전 May 02. 2023

김밥이 불러온 뜻밖의 사색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각자 재료 한두 개씩을 가져와 함께 김밥을 만들어 먹자는 얘기가 나왔고,


난 달걀지단과 당근볶음을 선택했다.

(당신이라면 어떤 재료를 선택했을지 잠시 생각해 보길 바란다.)


단체 메시지 방에서 하나둘 본인이 선택한 재료들을 이야기하고 대화가 마무리될 때쯤, 난 뜻밖의 사색에 잠기게 되었다. 평소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참치와 달걀, 매운어묵과 당근의 차이에 대한 사색 말이다.


바로 누군가의 이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와, 우리 엄청 다양한 김밥을 먹겠네요!”


그렇다. 내가 선택한 달걀과 당근은 어느 김밥에나 들어가지만 그 둘 때문에 김밥의 운명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참치나 매운어묵처럼 ‘김밥’이라는 단어 앞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부류의 것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 달걀이나 당근이 빠지면 김밥의 맛과 영양에 꽤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내가 준비한 달걀과 당근

대체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참치나 매운어묵과 같은 존재가 되길 원한다. 타인에 대한 영향력이 크고, 자신의 존재나 공이 쉽게 드러나는 그런 사람. 때때로 어떤 이들은 참치 사촌도 못 되면서 참치라고 자신을 포장하며 살기도 한다. 그런 참치나 매운어묵들 속에서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미미한, 그러나 여기저기서 묵묵히 일해야 하는 달걀이나 당근으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로 쉽게 평가받고, 절대가치보단 상대적 가치로 평가받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달걀들은 마음을 다치기 십상이다. 내가 돋보이는 것보단 다 같이 잘 되는 것이 마음 편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다른 이들을 돕는 것이 아무리 즐거워도 내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면 억울하고 허무할 수밖에 없다.


그간 나의 사회생활을 돌이켜보면, 난 대체로 달걀과 같은 존재가 되고자 했다. 그 누구도 나에게 달걀이 되라고 강요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그런 삶을 선택한 것은 참치나 매운어묵이 되는 것보단 달걀이나 당근이 되는 편이 나에겐 자연스럽고 편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달걀들이 그러하듯,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볼 줄 아는 주변인들 때문에 때때로 마음을 다치곤 했었다.


이번 김밥 모임을 준비하면서 난 내가 원해서 달걀이 되었음에도, 왜 그동안 상처받는 달걀로 살 수밖에 없었는지 깨달았다.


이번 모임에서 내가 달걀과 당근을 선택했던 이유는 하나였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그날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고, 달걀과 당근은 준비하는 데 손이 많이 가니 내가 그 두 가지를 준비해 가서 다른 사람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 그것이었다.


하지만 과거 사회생활을 하던 나는 그날의 나처럼 여유가 있지 않았다. 그래서 원하는 달걀이 되기 위해선 내가 꼭 지켜야 했던 것들까지 포기해야만 했다 - 내 건강, 가족과의 시간, 아이의 첫 운동회 등등. 그래서 달걀이 되기 위한 나의 숨은 노력을 몰라주는 상사나 동료들이 서운했고, 그런 상황이 억울했던 것이다.


난 앞으로도 참치보단 달걀에 가까운 사람으로 살 것이다. 하지만 달걀이 되기 위해 내가 감내해야 하는 것이 불필요한 희생을 필요로 한다면, 난 언제라도 과감히 달걀이 되기를 포기할 것이다. (그동안 지키지 못한) 나의 행복을 지켜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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