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마 Sep 16. 2018

나이키에 대한 추억

일상 그리고 브랜드 이야기 <#01 나이키>

이번 주 내 일상 속에 나이키라는 브랜드가 갑자기 확 들어왔다. 우선 필 나이트의 자서전 <슈독>을 읽게 되었다. 처음 접했을 때 생각보다 두꺼운 두께, 그러나 읽다 보니 빠져들어 가속도가 붙더니 쉽게 읽히더라. 그리고 나이키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30주년 영상>과 <TTIMES 기사>를 보게 되었다. 


나이키는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를 나열했을 때 선호 브랜드 영역에는 살짝 벗어나 있는 듯하다. (이때 을 보더라도). 그런데 이번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나이키라는 브랜드가 제법 나와 추억을 함께한 브랜드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 추억 속을 들어가 본다. 



나이키와 첫 만남


나의 첫 나이키 운동화는 어떤 것이었을까? 이렇게 생각해보려니 정말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슬램덩크, 마지막 승부로 중-고등학교에서는 농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친구들은 에어조던이니 나이키 농구화를 사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농구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유행이니 사달라고 졸랐을 터이나 아마 중학생이 신기에는 비싸기도 하니 허락을 해주지 않았을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가 아마도 95년 즈음이었을 듯하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드디어 첫 나이키 신발이 생겼다. 찰스 바클리 모델이다. 그렇다, 코트 위의 악동이라고 불렸던 찰스 바클리.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농구는 친구가 불러주면 어울려서 하는 정도이지 손수 모으고 주말마다 코트를 가진 않았다. 내게는 축구와 야구가 더 재밌었다. 그러니 이런 내가 찰스 바클리 팬으로서 산 것은 아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적정한 금액과 신고 다닐 무난함을 고려해서 사다주신 것이다. 그래도 이게 웬 횡재, 신나서 신고 다녔다. 너무 신고 다니니 금방 에어쿠션이 터지는 바람에 반년 정도 신다가 다시 다른 모델로 바꿔주어서 신었던 기억까지가 난다. 

첫 나이키 운동화로 기억되는 '나이키 에어 CB34'  

이제는 원하는 것을


조금은 자유로워진-내가 원하는 것을 소비할 수 있던- 대학생 시절 기억에 남는 나이키 운동화는 2개. 


그 첫 번째는 단연코 찢어질 때까지 신고 다녔던 나이키 와플 레이서. 남색 바탕에 노란색 스우시(swoosh)가 강렬했던 운동화이다. 대학생 시절에 제일 좋아했던 패션(?) 일명, 츄니링 패션. 지금 생각하면 무척이나 창피할 일이나, 나는 세상 제일로 트레이닝복 패션이 편했다. 남색 푸마 츄리닝바지에 나이키 신발을 신고 거의 학교도 이러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다른 하나는 에어맥스 90. 가장 무난한 스타일로서의 선택이자 푹신한 쿠션감. 특히나 제대 이후 유행처럼 번진 리바이스 엔지니어드 진이나 타입원에 같이 매치해서 자주 신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가끔은 동생의 에어포스원을 빌려 신기도 했었다. 



일을 하다 보니

 

어느덧 직장인이 되었다. 마케터로서 직장을 시작했다. 나이키 사례가 많이 나온다. 그저 스포츠웨어 판매 기업 같았던 곳이 퓨얼밴드도 만들고 나이키+를 하는가 하면, "RUN"행사를 기획해 하나의 축제를 만들어 낸다. 그뿐 아니라 여전히 광고/마케팅에서도 멋진 활약을 보여준다. 


먼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옥외광고이다. 핑계가 쏙-들어가는 카피이이며 슬로건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두 번째는 이런 관점으로 광고와 스토리를 어떻게 풀어낼 수 있지 놀라웠던 광고이다. 

https://youtu.be/lZA-57h64kE

나이키 



슈독을 읽고 :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은 나이키


첫 번째 놀라움. 나이키의 첫 시작이 나이키가 아니었다. 오니츠카 무역으로 시작했다. 놀라웠다. 달리는 것을 좋아하고 운동화에 미친 필 나이트라는 사람의 무모한 신발사업 도전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두꺼운 책의 절반을 넘어갈 때까지 오니츠카 이야기이다. 무작정 찾아간 일본 본사 방문으로 따 낸 사업권을 시작으로 온갖 산전수전 (회계사 등 다른 업을 병행, 자금을 위한 주식공모, 북미 사업권 다툼, 오니츠카와 소송 등)을 이겨나가며, "간절함" 하나로 나이키란 브랜드를 만들어 낸 것이다. 


"더 이상 다른 기업의 브랜드를 판매"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며 시작한 나이키. 


본능적으로 그는 마케팅 감각을 타고났던 것일까. 브랜드 자산(Asset)을 만들고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나이키 로고, 필요하다고 느끼고 $35에 만들고 시카고 첫 전시회  시카고 전시회 첫 시작을 알렸을 때 튀어 보일 만한 무지개에서 가장 밝고 화려해 선택했다는 오렌지색 박스, 지금도 나이키의 박스는 오렌지색이다.  그리고 운동선수를 활용하며 진정성 있는 브랜드 전도사로 활용한다. 그 시작은 테니스 선수 나스 타제였으나, 육상 영웅 프리폰테인 후원부터 제대로 빛을 발했던 것 같다. 그 이후에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마이클 조던까지.


그리고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 공동창업자이자 육상 선수가 마치 자신의 실험 대상인 바우만 코치. 나이키의 첫 운동화는 와플의 표면을 보며 운동화 밑창을 만들면 달리 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고 특허를 내며 시작했다. (대학대 그렇게 신고 다녔던 와플레이서의 이름이 이런 유래가 있었다니!) 그 이후도 부단한 노력을 통해 에어쿠션까지 만들어낸다. 초창기 창업 멤버가 운동선수 출신들인 만큼 그들은 운동화에 대한 열정과 탐구는 끊임없었다. 겉만 화려한 브랜드가 아니었고 본질에 대한 탐구와 개선의 노력이 더해진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신발에 앞선 기술을 가졌었던 일본은 결국 나이키와 같은 큰 스타 브랜드를 만들지 못했다. 기술력만으로는 이런 위대한 브랜드가 만들어지진 않는 것이다.



나이키 

굉장히 대중적이면서도 매니아 층이 있고 사랑받는 브랜드. 

슈독과 30주년 광고로 나이키와의 추억에 잠겨보니 더 좋아진 브랜드.

읽으시는 분들은 나이키와 어떤 추억이 있으실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정말, 사라진 것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