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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화 Aug 06. 2020

엄마, 행복해?

동거 770일 차. 응 너무너무 행복해



'너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


나는 여태 엄마들의 그 말이 거짓말인 줄 알았다.

어린 시절, 나는 무척이나 먹는 것으로 속 썩이는 딸이었고 지금도 엄마는 온갖 산해진미를 넣어 이유식을 만들었던 일, 쫓아다니며 떠먹이던 일을 훈장처럼 이야기하신다.


'라떼는 말이야-'

그 이야기가 얼마나 듣기 싫었는지 모른다. 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아침을 먹지 않으면, 국물에 밥을 한 공기 말아놓고, 다 먹을 때까지 학교를 안 보내준 날도 허다했는데, 먹기 싫어 미적대는 사이 말아놓은 밥은 한 푸지기가 되어있었다. 팅팅 불어 터진 그 밥을 어느 정도 먹은 후에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던 학교로 달려가 보면, 수업은 이미 시작되어있었고, 그럼 난 고개를 푹 숙인 채 맨 앞자리에 쭈뼛쭈뼛 들어가 앉았다. 내게도 늘 곤욕이었던 그놈에 밥. 그런데 그 일에 죄책감까지 가져야 한다니! 세상에나!


나를 닮아서일까, 내 아이도 잘 먹지 않았다. 이유식은 물론이고 다른 집 아이들은 잘 먹는다는 아기과자니 과일도 뱉어내기 일 수였다. 하루 종일 만들고, 버리는 일을 반복했다. 혹시나 잘 먹지 못해 아플까, 전전긍긍, 노심초사해도 삼키지 않는 것은 부모가 어찌해줄 수 없는 노릇이더라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성격도 입 안의 감각도 예민한 아이를 맞추기 위해 (1) 끊임없이 만드는 것 (2) 아이가 음식에 마음을 열기를 기다려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3) 낙심하지 않는 것. 아이도 낯선 것을 입에 넣고 삼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울까 생각하고, 그 아이에게도 시간을 주기로 했다. 내 잘못도 네 잘못도 아니야, 스스로 다독였다. 나도 너도 죄책감을 가지지 않도록.


그리고 감사하게도, 시간이 흐른 지금 아이는 꽤 잘 먹는다. 물론 다른 아이들처럼 음식을 즐겨하진 않지만, 식판을 비우는 날이 꽤 늘었다. 어린이집 선생님께선 내가 이런 고민을 할 줄은 생각지 못할 정도로 혼자 굉장히 잘 먹는다며 걱정하지 말라 하신다.


여름방학이 시작된 첫날, 아이와 느긋하게 늦잠을 자고선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한참 먹는 중 아이가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싱긋 웃으며 "엄마, 행복해?" 하고 묻는다

재촉하지 않아도 곧잘 먹는 아이의 모습에 흔히 말하는 엄마미소를 하고 있는 내가 아이 눈에도 행복해 보였나 보다

"응, 엄마 너무너무 행복해. 잘 먹으니까 너무 행복해"


내 참, 이러고 나니 이제야 내가 얼마나 불효를 해왔는지 알겠다. 딸내미 목구멍으로 음식 넘어가는 것만 봐도 이리 행복한데, 우리 엄마는 딸이 다 크도록 그 행복을 느끼지 못했겠구나. 자식새끼 어디 아플 때마다, '내가 뭘 못 먹여 그렇구나' 얼마나 자신을 탓했을까. 스물여덟,  어린 엄마 가슴에 돌덩이를 얹어놨었구나.


60이 다 되도록 엄마 입에선 "밥은 먹었니?"란 질문이 떠나질 않는다. 이제는 내 목구멍에 밥 들어가는 것 일일이 쳐다보며 행복해하실 수 없으니. 적어도 밥은 먹었니? 란 물음에 "아직도 안 먹었어?" "왜 그런 걸 먹어" 하며 걱정 한 줌 얹지 않으려 한다. 잘 챙겨 먹고, 늘 건강해야지.

엄마 미안해. 이제는 너무 잘 먹으니 걱정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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