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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론 Sep 03. 2024

부치치 못한 편지

편지

000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XX교회에서 리더로 섬기고 있는 26살 청년 이 론이라고 합니다. 30년 동안 삶을 헌신해오신 목사님 앞에서 '섬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해 적지 않은 의문이 들긴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30년간 '섬김'의 증인으로 살아오신 목사님의 삶과 제 삶 사이에 억지로나마 접점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그 의문보다 조금 더 앞서는 것 같기에 부담스럽고 죄스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뻔뻔하게 '섬김'의 단어로 첫인사를 드립니다.


누군가를 조건 없이 그리고 대가 없이 섬긴다는 것이 사랑의 완성임(동시에 그리스도인이 걸어가야 할 길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그것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종종 넘어지고, 무너지곤 합니다. '올바른 삶'이 각자마다 다르게 해석되고 적용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면서도, 저 스스로가 생각한 '올바른 삶'에 다른 지체들의 삶이 부합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느낄 때마다 지체들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마음이 싹트기도 하고, '나만 다르게 생각하는 건가? 내가 이상한 건가?'라는 회의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다른 이들에게로 눈길을 돌리던 가장 첫 번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기 위함이었는데, 어느샌가 그 관심이 그리고 어쩌면 그 관심 때문에 다른 이들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저의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다른 이들에게 입술로는 사랑을 말하면서, 마음속은 사랑과 정반대의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느낄 때마다 제게 또 다른 신앙적 연단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게으른 마음은 그런 수고스러운 길을 걸어가는 것을 최대한 외면하고 피하려고 합니다. 갖은 이유를 들어가며 마음속에 품었던 사랑의 불씨를 꺼트리려 합니다. '나만 똑바로 살면 될 일이지.', '어차피 남에게 관심을 주고 도우려고 해봐도 결국에 내게 돌아오는 것이 정죄와 비판, 그리고 회의감뿐이라면 내가 남을 도우려는 마음을 갖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닐까?' 자못 그럴싸해 보이는 변명에 현혹되어 얼마간 메마른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도 그런 메마른 삶에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갈증을 느껴 다시금 남들에게로 시선을 돌리곤 합니다. 물론 그 결과는 여전히 정죄와 비판, 그리고 자괴감으로 끝나곤 합니다. 제게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 사랑의 마음에서 시작한 눈길이 비판으로 일그러지고, 어느샌가 변질되어 버린 사랑을 보고 마음 아파하며 남들을 외면하다가도, 왠지 모를 허함을 느껴 다시금 그들에게 눈길을 돌리게 되는... 이런 과정들이 얼마나 더 되풀이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그 무의미하고 발전 없는 반복에 무기력해지고, 지치곤 합니다.


이러한 내면의 혼란들을 느끼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서 섬김을 실천하고 계신 이들이 더욱 존경스럽기도 하고 동시에 부럽기도 합니다. '그 또한 하나님의 일하심이리라.'라는 제법 경건해 보이는 말을 둘러댈 수도 있지만, 그들이 그 일하심 안에 들어가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포기하고 깎아내야만 했던 무고하고 외로운 시간들에 마음이 더 가는 것은 왜일까요? '하나님께 쓰임 받은 영광스러운 도구'보다, '자신을 포기해야만 했던 슬픈 누군가'로 비치는 것은 왜일까요?


글이 너무 늘어졌군요. 첫 만남부터 제가 너무 제 이야기만 쏟아낸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15일에 직접 목사님을 뵙고 섬김의 삶의 순간들을 듣고, 제게 역사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기도로 준비하겠습니다. 하나님의 평안이 목사님과 함께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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