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설문/간증
간증의 자리에 선다는 것은 감사하고 은혜로운 일이지만, 동시에 적잖이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 부담의 첫 번째 이유는 저의 지극히 개별적인 신앙의 경험이 이 자리에 계신 벗님 여러분들께 전혀 공감도 얻지 못하고 어떠한 울림도 남기지 못한 채 그저 공허한 외침으로 사라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신앙에 대해 말씀드리는 과정에서 부끄러운 모습들을 최대한 가리고, 그럴싸한 모습들을 최대한 부풀려 제 자신의 신앙을 대단한 것으로 자랑하고 싶은 유혹과 욕심을 버리는 것의 어려움을 재차 실감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간증의 자리에 서게 된 이유는, 지난여름 수련회에서 미처 감사 인사를 전하지 못한 이들이 많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자리가 단순히 제 신앙을 고백하는 자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낯부끄럽다는 핑계로 그동안 못했던 감사 인사를 전달하기에도 꽤나 적절한 자리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이 자리에 서게 될 용기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수련회 과정에서 겪었던 일들을 본격적으로 나누기 전에 제 신앙관과 현재 제 신앙의 상태에 대해서 먼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신앙이란 지식과 경험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나타나는 무언가라고 생각합니다. 그 비율은 각 개인마다 약간씩은 차이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어느 한 쪽이 부재하거나 혹은 어느 한 쪽으로 지나치게 치중되어 버린다면 그 신앙은 건강하지 않거나 좀 더 극단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신앙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신앙에 대해 자문해 본다면, 저는 지식 쪽에 치중된 신앙생활을 꽤나 오랫동안 해왔던 것 같습니다. 저 스스로가 확실한 것, 아는 것, 설명해낼 수 있는 것을 선호함과 동시에 확실하지 않은 것, 설명하기에 모호한 것을 싫어했기에 그러한 신앙관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지식에 편중된 신앙생활은 동시에 편리하기도 했습니다. 묵상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기도하는 등의 신앙생활의 근간이 될 만한 거의 모든 것들을 자의적으로 시간과 분량을 정해서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개인적인 성향의 신앙관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더욱 강화되었던 것 같습니다. 전염병으로 인해 대면 예배가 축소되거나 제한되면서 좋든 싫든 간에 각 개인의 공간에서 신앙생활을 이어나가야 했던 시기가 저로서는 크게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동안 교회에서 낯선 이들과 부담스러운 신앙과 삶의 나눔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약간은 기쁘기까지 했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가 종식되고 나서도 한동안 저는 온라인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예배 방식이 익숙했고, 편했고, 어느 정도는 유익하다고까지도 느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다른 신앙의 지체들을 바라보는 저의 시선과 마음이 사랑보다는 미움으로, 관용보다는 정죄에 더 가까워져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라는 강박 섞인 의무감에서 시작된 마음가짐은 제 시선이 성경을 떠나 다른 이들에게 돌려질 때마다 '사랑하지 못할 이유' 내지는 '미워해도 될 이유'를 꽤나 그럴듯하게 만들어냈고 그들을 미워하는 제 자신에게 너무도 쉽게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제 신앙이 건전하지 않다는 사실과 그 불건전의 가장 큰 이유가 혼자만의 신앙생활을 너무도 오래 유지해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끝내 저를 다시금 교회로 이끌었습니다.
물론 교회에 몸을 담았다고 해서 그동안 해왔던 신앙적 습관과 그 폐단이 한순간에 사라졌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회 내에서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보다 더 분명해진 정죄의 대상과 전보다 더 구체적인 정죄의 근거들은 오히려 전보다 더 마음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교회 내에서 역할을 맡고, 다른 지체들과 계속 교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정죄의 마음도 덜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마을 리더십도, 수련회 조장도 지원해서 역할을 수행해 봤지만, 그 과정 속에서 결국 남게 되는 것은 '나와 그들은 다르다.'라는 교만하고 외로운 결론이었습니다. 그 교만을 꺾어달라고,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덮고 사랑할 수 있는 관용의 마음을 달라는 기도는 응답 없이 계속 반복되기만 하는 과정 속에서 또 다른 종교 행태로 전락해버린 것 같았습니다.
지난여름 수련회 첫째 날 새벽, 또다시 습관적으로 기도를 드리기 위해 기도실로 향했습니다. 좀처럼 기도실 문이 열리지 않아 이유가 뭔가 했더니 누군가가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신발이 문틈에 끼여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신발 정리도 제대로 못하면서 무슨 기도냐'라며 마음속에는 누군가를 향한 분노가 차올랐습니다. 하지만 얼마지않아 그렇게 쉽게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는 관용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실로 향했던 불과 몇 분 전의 제 모습이 떠올라 그 분노의 불길은 제 자신에게 향했습니다.
부끄러움과 분노를 소화할 생각에 힘껏 문을 끌어당기니 문에 걸려 있던 신발이 튕겨져 나가면서 버티고 있던 제 왼쪽 발과 문이 쾅 하고 부딪혔습니다. "억!" 하는 소리와 함께 왼쪽 발을 보니 이미 양말이 피로 진하게 적셔지고 있었습니다. 함께 왔던 부리더에게 상황을 전달하자 대학부 회장 벗님, 전도사님, 장로님이 차례로 찾아와 제 상태를 확인하셨고, 얼마지않아 차를 타고 함께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저 때문에 자정을 넘은 시간에 4명의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친 것 같아 처음엔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하다가, 중반쯤에는 발의 고통이 점차 심해져 신음 소리를 드러내지 않는 데에 온 정신을 집중했습니다. 응급실에서 도착해서 접수를 하고 치료를 받고 나오자 대기실에 기다렸던 이들이 제 상태를 여쭤보셔서 크게 이상은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다시금 숙소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깜깜한 새벽길을 달리는 차 안은 고요했습니다. 어쩌다 회장 벗님과 장로님이 나누시는 짤막한 대화 말고는 아무도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적잖이 피곤했던지 제 옆에 앉았던 부리더 동생은 계속해서 꾸벅꾸벅 졸다가 화들짝 놀라기를 반복하다 저와 눈이 마주치고서는 미소 지으며 "괜찮으세요, 형?"이라고 물었습니다.
"그래 00 덕분에 많이 나아진 것 같아. 걱정해 줘서 고마워."라고 답하고 머리를 다시금 의자에 기댔습니다. 그 순간 응급실로 향하던 때와 다시금 숙소로 향하는 그 순간의 제 마음이 조금은 달라져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 부주의한 제 자신이 한심했던 마음은 저를 위해 늦은 시간 함께해 주고, 걱정해 주는 이들을 향한 감사의 마음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동시에 그렇게 제가 받았던 관심과 걱정들이 제가 '해야만 한다'라고 강박적으로 스스로를 얽매이던 사랑의 행위들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관심과 걱정을 줄 이유보다는 그러지 않을 이유를 찾는 것이 훨씬 쉬운 상황에서 구태여 묵묵히 응급실로 향하던 이들의 마음속에 있던 사랑이 지금도 온전히 이해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더 깊고 아름답게 느껴졌던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함께 새벽길을 달리던 이들에게 적절히 전달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희미한 기억에 오히려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불분명한 기억이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강박적으로 누군가의 행동을 기억하고 그에 대해 적절하게 반응하려는 평소의 저의 모습을 내려놓았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온전히 누리는 것은, 어쩌면 제가 그토록 미워하고 멀리했던 '뻔뻔한' 모습과 닮아있는 것은 아닐까요? 동시에 사랑을 온전히 전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보답을 바라기보다 오히려 상대가 그저 내 사랑을 '뻔뻔하게' 누리기만을 바라는 마음만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염치 없이 사랑의 유익을 누리는 것의 즐거움이 이런 것이었구나.'라는 기분 좋은 경험과 함께 다시금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서 정말 오랜만에 막연하고, 기분 좋은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럼 나는 그 뻔뻔한 사랑을 누구에게 흘려보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