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옥승 Jul 13. 2020

나생문이란 관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라쇼몬>, 구로사와 아키라 <라쇼몽>

 단편 「라쇼몬」과 영화 『라쇼몽』에서 묘사되는 나생문은, 하나의 고결한 관문이자 처참한 연옥이오 그야말로 심연과도 같은 중유의 공간이다. 그곳은 시대의 수도를 지키는 성문으로써의 기능을 가짐과 동시에 악마조차 학을 떼고 떠나버리는, 치졸하고도 잔혹한 인간성을 적나라하게 전시하는 악의 온상으로 묘사된다. 그렇기에 나생문이 두 작품에서 가지는 의의는, 수도를 지킨다는 정통성과 함께 이곳을 지나야만 수도에 이를 수 있다는 우아한 고결성을 지닌 성스러운 공간이면서도, 또한 동시에 그 가치들과 철저히 상충하고 격렬하게 대립되는 인간의 잔혹한 본성과 시대의 부조리, 그리고 여러 끔찍한 사회적, 자연적 재해들의 표상일 것이다.

 이렇듯 서로 배반적이고 이중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는 나생문이란 공간은, 아쿠타가와가 가진 중유의 이념이 여실히 드러나는 곳이다. 왜 그런가 하면 중유란 곳은, 단테의 『신곡』에 등장한 연옥처럼 현세도 아닌 내세도 아닌 곳, 바로 저 아수라 백작과도 같은 나생문처럼 서로 다른 가능성이 열려있는 공간임과 동시에 아직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한 중첩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아쿠타가와의 두 단편도 매우 훌륭하지만, 나는 구로사와 감독의 『라쇼몽』이 원작보다 더 치밀하고 전략적인, 보다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서사나 플롯은 영화적 미학을 두드러지게 표현할 수 있는 「덤불 속」의 형식을 차용하면서도 영화의 중심이 되는 주제와 철학은 「라쇼몬」의 나생문이라는 실존하는 물리적 공간을 통해 시각적으로 너무나 훌륭하게 구현해냈기 때문이다. 이는 영화 『라쇼몽』의 무대가 되는 나생문의 모습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 수도의 성문은, 절반은 폐허의 모습으로, 나머지 절반은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것은 위에 언급한 것처럼 서로 대립되는 것들의 충돌과 중첩을, 즉 바로 그 중유의 세계를 우리에게 시각적으로 명명백백히 보여준다.

 아직 서로 다른 가능성이 열려있는 곳. 인간에 대한 믿음과 불신, 썩어가는 시체와 울음을 터뜨리는 아기, 타오르는 장작불과 쏟아지는 소나기, 각성한 나무꾼과 다시 되돌아가버린 낭인까지. 나생문은 단순히 혼돈과 무질서의 팽배와 함께 일본 불교문화가 융성했던 헤이안 시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부조리하고 이중적인 인간의 모습과 잔혹하면서도 따듯한 인간성 그 자체를 상징하는 구조물로써 기능한다.


 이렇듯 구로사와는 나생문이라는 구조물을 활용해 영화의 미학적, 구조적, 상징적 측면을 더욱 부각해 내보이고, 서로 다른 두 단편의 이야기를 절묘하게 엮어 하나의 세계로 완벽히 구축해냈다. 또한 그가 스스로 구축해낸 그 세계에서, 그러니까 종국엔 한 나약한 인간이 나생문이라 불리는 어떠한 관문을 거쳐 비로소 각성하고 계몽된다는 다소 희망찬 결말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아쿠타가와가 품어왔던 중유의 미학을 아주 영리하게 계승했다 여겨진다.

 이유인즉슨, 단편 「덤불 속」과 「라쇼몬」, 영화 『라쇼몽』이 말하고자 하는 인간의 이기심과 타인에 대한 불신은, 「덤불 속」과 『라쇼몽』의 인물들이 재판정 앞에 나섰을 때가 아니라 바로 「라쇼몬」의 나생문이란 공간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모호하고 어지럽게 혼재돼 있던 그 중유의 공간이, 민중으로 표상되는 나무꾼의 깨우침으로 인해 특수한 속성을 가지게 된다는 결말이란 점에서도 다분히 그렇다.


 아쿠타가와와 구로사와가 나생문을 통해 직시했던 여러 인간상들을 보며, 인간성이란 것과 시대의 부조리, 개인의 나약함과 진실의 영원한 은폐에 대한 통찰에 경외심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론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 『라쇼몽』에 나온 나무꾼의 대사처럼, "부끄러운 것은 저입니다. 저도 제 본심을 모르겠습니다."는 허심탄회한 자기 고백을 내뱉어 보기는커녕, 스님과 나무꾼에게 조소를 던지고 홀연히 떠나버린 그 낭인과도 같은 모습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어 왔기 때문이다.

같이 본 영화 <라쇼몽> - 구로사와 아키라


매거진의 이전글 반항하는 이방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