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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환일 Sep 12. 2020

쉽게 쓰여진 글


 책과 글을 통해,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어느 누군가의 기구한 이야기들을 접하다 보면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오간다. 그런데 그때마다 느꼈던 그 감정들이, 실은 그 순간에만 요동치는 얄팍한 연민이고 동정이오, 쉽게 부는 바람에 곧 바스러질 옹졸하고도 연약한 측은지심이진 않았던가. 그들의 얼굴은 고사하고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내가, 고독과 불행으로 구구절절 점철된 그들의 삶을 그저 몇 개의 단어와 몇 줄의 문장만으로 감히 소비하고 있던 건 아니었나. 그 몇 인생들은, 몇 문단들과 몇 장들로 이루어진 한 권의 책으로 남았고, 결국 덮어버리고 나면, 폐부를 찌르는 듯했던 뭉클함은 훌쩍이던 콧물을 휴지로 쉬이 닦아버리는 것만큼이나 쉽게 사라져 버리고 곧 휘발되고야 만다. 섭취만 할 뿐 정작 소화는 하지 못했던 그 갸륵한 감정은, 심지어 그 방향 또한 그들이 아닌 나를 향해 있었다. 비극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듯, 연민하는 내 모습을 되려 연민하고 애정하며 스스로를 각성시켜 온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도 이렇게 편협한 단어와 야비한 문장으로 마치 고해성사하듯 뉘우치는 일 또한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이 글을 다 쓰고 나서도 나는 변함없이 술 취한 노숙자를 피해 길을 돌아가고, 비 오는 날 주문한 배달 음식이 늦는다고 쉽게 분노하고, 개도국 아이들을 위한 자선에 동참하겠냐는 지하철 자선단체의 외침을 가뿐히 무시할 것이다. 내 삶은 스스로 적어 내린 빛바랜 졸문보다도 못하다. 글과 유리된 삶을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 간극을 좁힐 생각을 하지 못한다. 어쩌면 그 간극을 좁혀가는 일이야말로 내게 주어진 시지프스의 바위일 수도 있겠다. 과연 내 삶이, 내가 적어 내린 글에 언제 가닿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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