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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승 Nov 19. 2020

주민등록초본

<나의 주거 투쟁>을 읽고

 얼마 전, 주민등록초본을 발급받아야 할 일이 있었다. 세 장 분량의 허연 종이 위로, 그간 살면서 거쳐온 주거 공간의 족적들이 면밀히 기록돼 있었다. 우리 가족이 아현동에서도 살았었나? 어라, 응암동이랑 등촌동에서도 살았었네. 마치 오래된 사진집을 들여다볼 때처럼,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 시절을 고작 종이 위 몇 줄 문장으로 더듬어 가며 떠올리려니 그저 무색하기만 했다.


 내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우리 집은, 아프리카 수단의 한 도시에 위치한 집이었다. 이 나라에서 2년 간 지내면서도 어김없이 한 번의 이사를 겪은 탓에, 지금 기억하고 있는 집이 두 곳 중 어디였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집을 떠올릴 적마다 생각나는 매캐한 복도 냄새, 염소들의 네모난 눈동자, 홍해 바다에서의 수영, 원주민 아저씨가 알려줬던 활사냥법과 같은, 그 집과 얽혀있는 몇 기억들은 또렷하다. 물론 그 외 대부분은 희끄무레한 필름처럼 모호한 기억들이지만, 좌우간 내(가 기억하는) 인생의 첫 집은 그렇게 낯선 사람들, 낯선 환경 속에서 시작됐다. 그럼에도 당시에 나름 잘 적응해 나갔던 이유는, 낯선 환경을 느끼기는 커녕 아직 인생 자체가 낯설었던 어린아이였기 때문이었으리라.


 수단에서의 생활뿐만 아니라, 아니 사실은 보다 더, 한국에 들어오고서 근 20년 동안 지내고 있는 일산이라는 공간에 대한 애정과 추억이 가득하다. 이 동네에 지내면서 이사를 여섯 번 정도 했는데, 중간에 한 번 파주로 떠나기도 했지만, 나머지 이사는 모두 일산 백석동 안에서 이루어졌다. 발길 닿는 대로 가는 산책을 좋아한 덕분에 그간 동네 구석구석을 잘도 돌아다녔는데, 골목 어귀마다 서려있는 추억이 떠오를 때마다, 도시나 공간 또한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그 말이 새삼 크게 와 닿곤 한다. 나 혼자만 그렇게 늙어가는 건 줄 알았는데 너희들도 나와 함께 낡아갔었구나. 집도, 동네도, 사람과 함께 변하는구나, 싶었다.


 글자를 보며 글을 읽어내듯, 살아온 공간을 들여다보며 삶을 읽어낼 수도 있다. 세 장 서류 위에 움푹, 시나브로 깊숙이 패인 그 족적들을 찬찬히 이어보니 어느새 한 인간의 삶을 보여주는 기다란 궤적이 됐다. 누군가는 나와 같은 곳으로, 누군가는 더 위로, 더 아래로, 혹은 나란히. 다들 저마다 각기 다른 궤적을 지닌 채, 다음 디딤돌을 향해 힘껏 발을 내딛겠지. 모두들 그 발자국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저항보다 안녕이, 투쟁보단 행복이 깃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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