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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ug 23. 2017

맛이 어때?

'고소하다'는 영어로 어떻게 말할까?

흔한 에피소드 하나, 


어느 날 파머스 마켓에서 김치를 맛보는 외국인에게 다가가 맛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very spicy!'

그 김치에는 고춧가루가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난 눈을 감고 맛에 집중해보았지만 매운맛은 정말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신 맛과 짠맛만 입에 가득 남았다. 내 입맛이 잘못된 걸까? 


흔한 에피소드 하나 더, 


한국 음식에는 참기름이 많이 들어간다. 참기름 향을 맡으면 방금 싼 김밥이 떠올라 군침이 돌거나 비빔밥을 오물조물 비벼 먹고 싶을 정도다. 대신 지나치게 넣으면 다른 재료의 향과 맛을 가려버리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가끔 외식할 일이 있을 때 참기름 향이 너무 진하게 나면 재료의 상태에 의심을 갖곤 했다.


캐나다에 온 후 아직 한인마트에 가지 않아 집에 참기름이 없었다. 외국인에게 참기름의 고소한 맛을 설명해주고 싶었는데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 nutty?'

그 친구는 아마 땅콩이나 아몬드의 고소한 맛을 떠올렸겠지만 다들 알다시피 참기름의 핵심은 땅콩 같은 맛이 아니다. 진한 황금색 빛이 주르륵 흐르면 그 공간을 장악해버리는 생명을 가진 액체. 어렸을 때 500원을 손에 쥐고 방앗간에 가면 참깨 볶는 냄새에 머리가 어질 했던 경험. 그저 참기름 뚜껑을 열어 그 친구 코에 대주는 방법밖엔 없는 그 고소함. 


채식주의자를 위한 Mediterranean pizza


해외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음식기행을 반길 수밖에 없다. 평소에 먹지 못했던 음식을 벨트 풀고 맘껏 먹어도 괜찮을 거 같고, 부족하면 편의점을 싹 쓸어와 야식을 즐기는 일도 감히 허용된다. 나는 새로운 맛을 즐긴다. 익숙한 맛을 원한다면 어디서나 빵을 찾으면 되기 때문에 내 혀를 놀라게 할 자극을 찾는다. 새로운 맛은 처음 보는 재료를 사용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낯선 곳에서 익숙한 재료로 새로운 맛을 낼 때 더 놀랍다.


흔하디 흔한 피자에 염소치즈를 얹고 신맛을 더한 지중해식 피자를 한 입 먹었을 때 참 신기했다. 맛없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예상하지 못한 펀치를 한 대 맞은 느낌이랄까. 존중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먹었다. 


카페에서 먹는 사모사


예쁜 카페에 예쁜 라테아트가 더해진 플랫화이트. 그리고 세상의 달콤함이 다 모인 듯한 무스케이크 한 조각.


카페 천국 서울에서 골목마다 만날 수 있는 메뉴다. 수많은 카페에서 파는 케이크이니 언뜻 새로운 맛이 가능해 보이지만 특이한 몇 군데를 제외하곤 맛이 비슷비슷하고 예상 가능했다. (모두 평등하게 맛있었다.) 그런데 평범한 카페에서 손바닥만 한 사모사를 만나면 어떨까. 이것은 인도 카레 식당에서 애피타이저로 자주 시켜먹었던 사모사와는 전혀 달랐다. 'beef? vegetable? been?'을 묻는 직원에게 자신 없는 목소리로 'been, please..'라 대답하고 따끈한 접시에 받아왔다. 그동안 먹었던 사모사에 콩이 가득했던 기억 때문에 비교하려고 주문했는데, 오, 다르다. 진하다. 고소하다. 맵다. 후추향이 난다. 달달하다. 바삭하다. 온갖 수식어가 튀어나왔다.


같은 언어를 공유한다는 건 맛에 대해서도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맵다'의 취향은 개인마다 다를지라도 어느 정도 매운 선을 넘어가려면 어떤 맛이 나야하는지 우리 모두 안다. '고소함'은 우리의 일상과 닿아있다. '느끼함'은 한국인에게 불리한 맛이다. 매운 맛이나 짠맛이 부족하면 느끼함은 견딜 수 없는 간지러움 같이 느껴진다. 또 우리는 같은 맛도 조금씩 다르게 표현할 수 있도록 풍부한 단어력을 가지고 있다. '고소한 것'은 '꼬소하다'거나 '구수하다'와는 전혀 다르다. '깊은 맛'은 어떨까. 김치가 푹 익어 깊은 맛을 내려면 발효과정을 도와주는 액젓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맛이 깊다는 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잘 익은 소시지를 들어 올리며 자기에겐 이게 '깊은 맛'이 난다고 자랑했던 내 프랑스 친구가 떠오른다. 


영어로 표현하는 맛 품평회는 기대하지 않는 침묵을 선물하고 어이없게 끝나지만 (대부분 good, nice로 마무리된다.) 이 맛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은 안달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한국인을 붙잡고 신기한 맛을 마구 설명하고 싶은 오늘, 또 새로운 맛이 기다려진다. 


어느날, 집에서 만든 토마토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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