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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민 Oct 03. 2023

[기고] 도시를 걷는다는 것의 의미


* 해당 글은 도시연대의 <걷고 싶은 도시>에 연재된 글입니다.



걷기를 통해 '나'를 확신하기 

살면서 가장 두려운 것은 '1인분의 몫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확신하는 일이다. 이미 확신을 얻은 사람은 별 상관이 없겠지만, 누군가는 이 질문을 계속 붙잡고 살아간다. 나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걷기'를 선택했다. '1인분의 몫을 할 수 있을지 답을 얻기 위해 걷는다'니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을거다. 답은 곧 알게 될 것이다. 


걷기는 조건 없이 누구나, 언제든지,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다. 그래서 일단 무작정 걸었다. 지도를 보면서 걷되, 지도가 알려주는 대로 걷지 않고, 내 마음 가는 대로 말이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금지된 길을 가보기도 하고, 걸어야만 알 수 있는 길도 발견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주 멀리 돌아가기도 하고, 막힌 길도 자주 만났다. 그렇다고 해서 길이 없는 건 아니었다. 마음을 편하게 먹고 걷다보면 새로운 길이 나왔다. 멈추거나 다시 돌아가도 상관없었다. 그렇게, 헤매기를 수 없이 반복했다. 어느 순간에는 내게 맞는 길을 알고, 나의 방식과 속도에 맞춰 걸을 수 있었다. 오롯이 나의 판단과 결정으로 걸었기 때문이다. 한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나'를 스스로 발견하게 한 것이 바로 걷기 였고, 그 행위가 가능했던 건 바로 '길'이었다. '1인분'의 몫에 대해 확신할 수 있었던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걷기는 길을 통해서 이뤄지고, 길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도시 구석구석을 연결하고 있기 때문에 많이 걸으면 걸을수록 많이 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보고, 느끼는 것들을 텍스트로 발산하고 기록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1인분의 몫이었다. 현재의 도시 생태계를 이해하고, 이면의 것을 탐구하게 된 것도, 도시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이 파편화된 조각이 아니라 얽히고설킨 요소들과 이해관계, 즉 '연결성'을 통해 나타나게 된다는 것도 모두 걸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부분들이었다. 도시와 개인이 맺고 있는 관계와 구조, 시스템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은 결국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생각과 행위들 안에서 어떠한 관계를 통해서 각자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지 되묻게 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뜬금없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에 대해서 혹은 도시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관해서 묻는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비롯되는 시작점을 찾아보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관찰과 발견을 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연결고리가 생겨날 때 비로소 각자가 살아가는 도시에 관심 두기 시작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내가 사는 도시와 지역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시작점, 나와 도시의 관계, 상호작용하는 법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시작할 수 있도록 그 가능성을 열어 주는 것이 지역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는 높아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직접적인 개입과 실험어떻게 할까?

도시의 다양한 경관과 이면을 포착하고, 서울의 다층적인 풍경을 발견하게 된 것은 걷기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때 발견한 요소들을 바탕으로 관련된 자료와 이야기를 모으고 인과관계를 이해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도시공간의 변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풀리지 않는 의문점 한 가지가 있었다. 도시는 많은 사람이 모인 곳이다. 서로가 연결되어 복잡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고, 다양한 현상으로도 나타난다. 때론 그 현상을 넘어서 문제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럴 때, 걷기는 무엇과 어떠한 방식으로 결합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걷기는 행위이자 과정이지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실질적 대안으로써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이 부분은 뭐라도 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근데, 뭘 할 수 있을지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 와중에 우연히 <터뮤니티 실험도시>라는 프로젝트를 발견했고, 간절한 마음에 서울과 대구를 이동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도시는 어느 한 명이 결정하거나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사회를 이루는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지요. [터뮤니티 실험도시]에서는 ‘나는 어떤 도시에 살고 싶은가?’, ‘살고 싶은 도시를 위해 뭐가 필요할까?’ 라는 질문을 품고서
자신의 도시를 탐구하고, 자신이 살고 싶은 도시를 발견하는
여정을 함께 할 실험단을 찾고자 합니다.” 

- 터뮤니티 실험도시, 실험단 모집 공고글 -


걸으며 발견했던 것들을 ‘나’와 연결하여 실행해 보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실험으로써 적절한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내가 나고 자란 도시, 대구에서 시도된다는 것이 의미 있었다. 현재는 이방인으로서, 제3자로써, 관찰자의 입장에서, 즉, 당사자성이 없는 사람이 관계를 만들면서 도시를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대구라는 도시에 당사자성이 존재하면서도 남구라는 지역에는 당사자성이 없는 관계에서 시작된다. 묘한 관계성으로 시도되는 것이기에 앞서 고민했던 부분들이 반영되어 결과물이 나올 것 같아 기대되었다. 실험이니 망해도 상관없고, 일단 해 보는 것에 의미를 두며 질문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우당탕탕실험과 질문들 

활동기간은 약 2개월이며, 다양한 프로그램과 팀별 실험이 진행되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실험은 계속 진행 중이다. 도시공간에 직접 개입하고 실행하며 경험한 것들이다. 우리가 사는 ‘터’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기도 하면서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어 나가는 시작점이자 실험이다. 무엇보다 현실에서 적용해 볼 수 있는 지점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는 과정이었다. 


Day 1. 7월 14일 발대식 및 OT


발대식 및 OT를 진행한 첫 번째 날은, 지역 소개와 현황을 공유하고 리빙랩과 터뮤니티 실험도시 연계성과 의미를 제안하였다. 동시대에 발생하는 다양한 이슈와 문제를 현상으로만 접근하지 말고, 고유한 지역적 맥락에 대한 탐구와 이해를 바탕으로 재맥락화를 통해 풀며 적극적인 ‘지역성(토착성)’을 추구하는 도시를 위한 실험이라고 했다. 주요 연구 키워드는 도시 커먼즈, 도시 공간, 도시생태계, 도시의 삶, 4개로 분류되어 각자가 선택한 키워드에 맞게 실험이 진행된다. ‘터뮤니티’라는 개념과 실험도시의 기획 의도를 듣는 동안 많은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오고 갔다. 그동안 걷기라는 행위를 통해 이해했던 도시 생태계를 실험으로 풀어낼 좋은 기회였다. 가장 궁금했던 지점 중 하나는 리빙랩과 터뮤니티 실험도시의 방향성과 맥락이 어떻게 조합되어 결과물로 산출될 수 있을지에 대한 여부였다. 결과물의 성격과 논의점이 전혀 다른 것 같아서다. 성공과 실패 여부를 떠나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거나 인지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될 경우 혼란스러운 건 아닌지 염려도 되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전국에서 ‘도시’ 키워드로 다양한 사업이 진행되어 왔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본질을 놓치고 방향성도 잃고 이슈만 되다가 물음표만 남긴 채로 끝난 경우를 많이 봤다. 그러한 결과는 지양하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간만큼은 ‘도시와 나’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질문을 던져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관련된 질문을 떠올려 보았다. 

터뮤니티실험도시 발대식 (사진제공: Hoola) 
Q1. ‘나는 어떤 도시에 살고 싶은가?’ 라는 질문이 남구 지역 주민에게 있는가? 
Q2. 이 실험이 실제 주민들과 피드백을 주고받는 경험이 될 수 있는가? 
Q3. 도시의 유•무형 자원을 향유한다는 것이 현실의 삶에서 어떤 의미인가? 
Q4. 어떤 경험을 줄 수 있는가? 
Q5. ‘나는 어떤 도시에 살고 싶은가?’ 라고 누군가 던져준 질문을 체득하여 스스로 어떤 도시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지를 연관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갈 수 있는가?

개인적으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참여자들은 프로젝트가 끝나면 지역과 지속 해 관계 맺을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지만, 정작 주민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Q1, Q2 질문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동안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Day 2. 7월 19일 리터러시 강의 


서울과 군산, 두 도시에서 진행한 실험 사례를 리터러시 강의를 통해 접했다. 목적과 기능을 잃고 비어있던 공간에서 자립과 실험에 관련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공간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갈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었다. 사례 1)은 서울 마포구 비빌 기지 사례, 현)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안연정 대표의 발표로 시작되었고, 사례 2)는 군산시민회관 택티컬 어바니즘 실험 사례, 현) 스튜디오 우당탕탕 채아람 디렉터의 발표로 진행되었다. 과정에서는 함께 시간을 쌓아온 동료들이 있었고, 관계 안에서 서로 조율하며 실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하게 되었다는 점도 인상 깊었다. 좌충우돌하는 과정에서 무조건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지점에 대한 의견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실행해 나가면서 현실 가능성을 높였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떤 도시에서 살 것인가?’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주체성과 주인의식을 높이는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Day 3. 7월 26일 필드위크  


해당 실험이 진행되는 동네에는 오래된 상가형 시장이 있다. 시장이 생겨난 1980년대에는 200 여 개의 점포가 있었지만, 현재는 10개 내외의 점포들이 운영되고 있다. 한 가지 특이점은 젊은 청년들이 운영하는 점포 몇 개가 입점하여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의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 옥상에는 상인들이 조성한 텃밭이 있는데, 도심 한복판에서 보기 드문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인근 동네는 미군 부대와 아주 가까이에 자리 잡고 있으며 오래된 목욕탕, 미용실, 문구점, 방앗간, 제과점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골목길로 이어진 주택가에는 도시형 한옥, 양옥집, 신축 빌라 등 시대별 주택 유형을 찾아볼 수 있다. 다양한 시대와 요소들이 뒤섞여 하나의 커다란 도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현재의 자원들을 발굴하여 잘만 활용하면 이 지역만의 독특한 정체성이 형성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남구 대명동 모습 (직접 촬영)
Q1. ‘대명동(광덕시장 일대)의 현재 상황은 어떠한가?, 
Q2. 대명동이 가지고 있는 지역성과 정체성과 연결 지을 수 있는 도시의 생태계는 어떤 지점이 있는가? 
Q3.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고 실험해 볼 수 있을 것인가?’ 
Q1~Q3에 해당하는 질문을 던지며 다양한 요소들을 뽑아 보았다. 팀원들끼리 각자가 발견한 장면과 키워드를 공유하고 어떤 방식으로 실험해 볼 수 있을지 구체화하여 1차 기획안을 완성해 보았다. 

Day 4. 8월 2일 기획안 수정 및 필드위크 


7월 26일 필드위크를 통해 완성한 1차 기획안을 바탕으로 미리 선정해둔 장소를 방문, 현 상황을 살펴보고, 실현 가능성 여부 체크 하였다. 이 작업을 기반으로 기존에 작성된 1차 기획안을 수정•보완하는 작업을 했다.


Day 5. 8월 16~24일 조사 및 인터뷰 


1차 기획안을 바탕으로 진행할 프로그램을 확정한 뒤 필요한 조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거점인 광덕시장 상인들과의 인터뷰는 직접 개입의 활동이자 관계 맺기의 시작점이다. 나의 경우는 인터뷰 및 섭외 관련 경험이 있었지만, 함께 하는 참여자들의 경우 대부분 처음이었다. 어떤 목적성을 가지고 낯선 누군가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도시에 개입하고, 지역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단계다. 중요성을 알기에 미리 리스트 업을 해둔 가게를 방문하여 말 걸기를 시도했다. 실험이 진행되는 남구 대명동에는 어떤 분들이, 어떤 계기로, 공간을 방문•운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터뮤니티 실험장소, 남구 대명동 광덕시장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동네를 꼼꼼히 살피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것들을 어떻게 연결해서, 어떤 방식으로 결과물을 도출될 수 있을지를 계속 고민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은 결국, ‘걷기’에서 시작해 ‘걷기’로 끝난다는 것이었다. 걷기가 내가 사는 도시•지역•동네에 말을 거는 행위이자 이해하는 과정이자 무언가의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었다. 어찌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별 것인 ‘걷기’를 통해 나를 알고, 너를 알고,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지역•동네에 대해 알아 갈 수 있다는 점은 너무나 당연해서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과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해당 실험은 9월에 최종적으로 끝나기 때문에 아직 어떠한 결과로 도출 될 수 있을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확신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품고 있던 의문점이 풀릴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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