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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민 Mar 04. 2024

[기고]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 해당 글은 <저널서울>에 기고된 글입니다. 


지도에선 알 수 없는 것들, 영등포 편③
이면(裏面)에 가까워지려 할 때,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영등포 인쇄소. ©서울수집


여기, 인쇄소가 있다.

많은 사람이 ‘인쇄’하면 을지로∙충무로(인현동) 일대를 떠올린다. 오랜 역사는 물론이고, 인쇄 관련 업체가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며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쇄 집적지가 여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도시 곳곳에 존재하며, 영등포에도 인쇄소 거리가 있다.


‘영등포 인쇄소거리’, ‘영등포인쇄’, ‘영등포 인쇄골목’, ‘영등포 인쇄소’


눈에는 보이는데 아무리 찾아도 영등포 인쇄소 거리에 대한 설명이 없다. 업체 수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을지로∙충무로(인현동) 일대처럼 엄연히 인쇄업 생태계가 존재함에도 인쇄소가 어떻게 모이게 된 것인지, 서울 도심 인쇄소들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영등포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장소는 존재하지만, 정보의 부재를 발견할 때마다 서울의 다층적 특성과 달리 정보가 제한적으로 전달되고 있는 건 아닌지 묻게 된다. 이때 부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평생 알 수 없고, 깊이 파고들수록 드러나는 것들은 특정 주제, 지역, 시대, 범위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선택되지 못한 이야기는 전달되지 않은 채 희미해지고, 어느새 사라지고야 만다.


영등포는 1930년대부터 공업지역이었지만 인쇄공장이 없었고 방직(섬유), 도기(토기), 식품, 기계, 금속 업종 공장들이 대부분이었다. 1954년 9월 동작구 대방동(당시 영등포구)에 국정교과서 인쇄공장이 문을 열었지만, 현재의 인쇄소 거리와의 연관성은 알 수 없다. 답답한 마음에 며칠 고민하다가 평소 눈여겨보고 있던 인쇄소를 찾았다. 사장님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소 관계가 있던 인쇄소가 아니다 보니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서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거는 것이 쉽지 않았다. 주변을 한참 맴돌다가 우여곡절 끝에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신한은행 뒤쪽에 인쇄소가 하나 있었고, 김안과 병원 근처에 몇 군데 있었어요. 그 외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곧장 경방(옛. 경성방직) 공장 담이었으니까요. 불도 없어서 어둡고, 도로도 1차선이었어요. 하꼬방 일식 1층짜리 단층건물이 쭉 있는데, 월세가 싸서 쪼그마한 인쇄소들이 몇 군데 있었던 거예요. 그러다가 어느 시기에 시내(을지로•충무로(인현동))에서 사람들이 와서 인쇄소를 차렸어요. 원래 가정집이었는데 밖이 보이게끔 수리와 개조를 해서 월세 20~30만원 받고 세를 준 거죠. 그렇게 인쇄소 골목이 된 거예요. 한참 활성화 되었던 시기에는 인쇄소가 지금보다 더 많았어요.” _A사장님
“안양, 수원, 인천, 광명 사람들이 많이 왔어요. 영등포가 교통이 편하니깐 인근 지역 사람들은 굳이 을지로까지 안 가고 여기에 일을 맡긴 거죠. 그 때부터 활성화 된 것 같아요. 일이 많을 땐 야근도 부지기수고, 가게는 권리금 붙고, 서로 들어오려고 자리싸움도 하고 그랬어요. 공구 상가 같은 경우는 인쇄하는 사람이 없으니 와서 맡기거나 문구점 하던 분들이 도장, 복사, 인쇄를 겸업 하면서 시작한 경우도 있어요. 문구보다 마진율이 훨씬 좋았거든요.”_B 사장님


영등포 인쇄소는 을지로‧충무로(인현동) 일대 인쇄소에서 일하시던 분들이 가게를 차리면서 수가 늘었고, 서울 도심까지 가기 번거로운 경기‧인천 일대 사람들의 인쇄 수요를 충족시켜 주는 연결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몇 년 전에 비해 인쇄소가 많이 줄었음에도 여전히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듯 보인다. 출판․인쇄 센터 빌딩이 문래동에 하나 있는데, 입주 업체 중 일부는 이곳 인쇄소 거리에 있던 업체들이다. 인쇄소 거리 하나로 연결될 수 있는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있지만 드러나 있는 부분이 없어서 아쉽다. 인근에 있는 청과시장, 야채 시장, 전통시장 등 시장과의 연결성이 좋은데 비해 사람들의 시선에서 빗겨 나간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위치한 백화점과 쇼핑몰만이 영등포 대표 자원으로 인식될 뿐이다.


영등포전통시장. 무엇이 ‘전통’인가?

영등포시장과 연결된 길 구간. ©서울수집

한눈에 봐도 세월의 풍파가 느껴지는 오래된 아파트, 현대화 사업으로 조성된 아케이드, 어디선가 요란스럽게 들려오는 음악, 조명과 전등이 켜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두컴컴한 시장 내부, 아주 정직하고 큰 글씨로 써진 ‘카바레’, ‘콜라텍’, ‘게임 랜드’. 포장마차를 내부에 들여다 놓은 것처럼 빨간 의자를 깔아 만든 야장. 이 모든 것이 존재하는 곳, 보기만 해도 어지러운 이곳에 영등포 전통시장이 있다. 주택가를 끼고 있어 자연스럽게 골목을 걷다가 시장으로 이동하게 된다. 좁은 골목길에 재봉틀 한 대를 두고 앉아 있는 할머니들을 볼 수 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유심히 살펴보니 사람들이 옷을 들고 와서 수선을 요청하곤 했다. 재봉틀이 내부가 아닌 외부에 있음으로 인해 인근에 거주하거나 방문하는 사람들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영등포 시장의 차고 넘치는 다양한 풍경들 속에서 살펴야 할 것들을 따지다 보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해야 할 것인지 볼 때마다 난감하다. 과거이면서도 현재이고, 현재이면서도 과거인 이곳을 단순히 시장으로만 바라보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전통이라 이름 붙이기 전에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했던 것은 아닌지 짚게 된다. 역사가 길다고 해서 전통일 수 없고, 옛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전통이라고도 부를 수 없다. 무엇이 전통이고, 현재 시점에서의 전통은 또 무엇인가?


전통
 역사적으로 전승된 물질문화, 사고와 행위양식,
사람이나 사건에 대한 인상, 갖가지 상징군

영등포시장의 재봉틀. ©서울수집

영등포시장에서 말하는 ‘전통’은 어찌 보면 자꾸 찾게 되는 무언가, 갖가지 상징을 전통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이름 붙여진 전통시장은 영등포뉴타운 사업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되었고 재개발이 확정된 일부 구역이 철거되어 사라졌다. 이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본 상인들의 심정은 어떨지 상상해 본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비슷한 상황에 놓일 텐데 마음이 편하진 않을 것 같다. 상인마다 받아들이는 정도와 경제적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확언할 수 없지만, 재개발로 시장이 없어지면 어딘가로 이동해야 함은 분명하다. 앞으로, 남아 있는 영등포시장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물음의 답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영등포 시장이 조성된 시기와 배경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의 영등포시장이 형성되기 이전에는 1937년에 조성된 영등포 공설시장과 해방 이후 조성된 삼구 공설 시장이 있었다. 초기 영등포 공설시장은 일본인들이 주로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아래 기사참고)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1956년에 개장한 영등포 전통시장은 기존 공설시장과는 주체와 성격이 다른 것으로 파악된다.


“지금의 영등포시장이 다른 큰 시장과 어깨를 겨눌이만큼 발전된 것은 일정말기인 44년대에 일본인들만이 상품을 살 수 있었던 영등포동5가 영보극장 뒤의 가건물 시장이 터전이 됐다.(중략) 일본인 시장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었던 영등포 토박이 상인들은 이 길가를 따라 골목길 등의 자기 집을 헐어 상점으로 개조, 어느새 이 일대는 시장으로 모습을 바꾸어 ‘중마루’ 시장이란 이름까지 붙었다. (중략) 해방으로 일본인들이 물러가고 전 일본인 시장을 우리 상인들이 접수하면서 이곳으로 시장이 이전돼 중마루 시장은 사양길로 접어든 반면 구일본인 상가의 4평짜리 점포가 5개씩 있던 3동의 시장건물은 밀어닥치는 상인들로 극장 뒷골목까지 뻗어 질서 없이 늘어선 좌판은 점차 이 일대 주택가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노폭 6m의 시장 길은 채소와 고무신등 상품과 각종 상인들로 붐볐고, 월말이 되면 방직공장 여공 등 근로자들의 유일한 생활필수품의 공급처로 시장은 날로 번창 해갔다.”_<1971년 12월 13일 경향신문>


조선인이 이용하던 기존 시장은 ‘중마루’시장이라 불렸다. 해방 이후 일본인 시장을 접수하면서 시장의 규모가 확대되었다. 옛 영보 극장 뒷골목을 따라 좌판과 함께 도시형 한옥 주택가를 시장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인데 그 모습이 현재도 유지되고 있다. 이후 삼구상가, 로타리 상가, 남서울 상가, 영신상가, 영등포 제일상가 등 상가 건물들이 위치하게 되었다. 역사를 가진 시장인 만큼 점포도 많고,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는다.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장으로 유통망이 변하고 이용객이 줄면서 점차 사라지는 시장들도 많은데, 이에 비해 영등포 시장은 비교적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는 것 같다. 한편으론, 밖에서 봤을 땐 같은 영등포 전통시장인데 구간 상으로는 전혀 다른 시장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일부 구간은 아케이드, 바닥, 시설 정비가 되었지만, 일부 구간은 조명도 어둡고, 아스팔트 바닥에, 정비가 된 느낌은 아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어서 함부로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시장 내에 보이지 않은 경계가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영등포시장 기계공구상가, 계속 유지 될 수 있을까?

영등포시장 기계공구상가. ©서울수집

인쇄소만큼이나 서울 도심과의 연계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곳이 영등포시장 기계공구상가다. 공구상가는 영등포시장 인근에서부터 국회대로와 만나는 지점까지 이어진다. 1991년부터 형성되어 못, 나사, 망치, 드릴 등 가정용 공구를 비롯해 전기모터, 기계 부품, 체인, 고리, 공기주입기 등 산업용품에 이르기까지 기계와 관련된 것을 판매하고 있다. 청계천이 있고 없고 차이지 을지로∙청계천 일대와 닮았다. 청계천∙을지로 일대는 2019년부터 시작된 재개발 반대 운동에도 불구하고 사업이 진행되어 아파트가 생겼다. 거대한 그물망과 같이 형성되어 있던 도심 생태계가 파괴되었으며 자리를 지키던 많은 영세 상인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이미 철거가 되었거나 철거 위기에 놓인 영세 상인들은 곧 재개발 예정인 구역에 다시 터를 잡기도 했다. 영세 상인들이 영업을 지속해서 이어갈 수 있도록 대책을 요구하면서 마련된 대체 상가와 지식산업센터로 재입주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다른 지역으로 떠날 수 밖에 없다. 또 다른 재개발 구역이지만 멀리 가지 않고 영업을 이어가는 상인들도 있다. 청계천∙을지로 도심 산업 생태계가 미치는 영향력과 연결성이 크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으로 떠난 사람들은 영등포동과 문래동, 신도림동, 구로동, 고척동, 문정동, 김포, 시흥 등 또 다른 공구∙기계 상가 집적지로 흘러간다. 청계천∙을지로 일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지켜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영등포시장 기계공구상가가 떠오른다. 영등포 일대 재개발 사업으로 주변 상황이 계속 변하고 있고, 구역별로 차이는 있지만 기존 공구 상가를 철거하고 오피스텔․원룸을 짓고 있는 양상이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과 연결되어 있는 다른 산업 생태계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조금씩 받을 텐데 어떻게 일을 이어 나가는 것일까? 영등포 일대에 포진되어 있는 기계∙공구 상가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오래된 과거를 간직한 장소 변화를 포착하고 그곳에 머물면서 질문을 던지는 일이 숙제처럼 되어 버렸다. 한편으론 늘 제3자 입장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다 보니 정작 이곳에서 일을 하는 당사자들의 입장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다. 청계천∙을지로 일대에는 변화를 포착하고 재개발에 대항하며 끊임없이 메시지를 발산하는 연구하는 팀이 있다. 그들이 전해준 말에 의하면 개인적인 상황에 따라 변화를 받아들이고, 대응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했다. 일부 사람들은 재개발에 관심도 없고, 이 일대가 변하는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나니 지금 전하는 말들이 당사자들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등포구지 업종별분포. ©영등포구지(2020년 개정판)

하지만, 변화가 가져올 또 다른 변화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살피면서 개인이 잘 살기 위한 과정에도 분명히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당장은 변화에 담담할 수 있어도 산업 생태계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은 영역에서 존재할 수많은 생태계에 점진적으로 변화가 찾아왔을 때를 상상해 본다면 그리 쉽게 모른 척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냥 모른 척 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하나둘씩 이어져 있는 생태계를 이해하고 변화를 들여다 볼 것인가? 모든 것은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사람들이 보려 하지 않는 이면 속에 존재하는 영등포 인쇄소 거리, 영등포 전통시장, 영등포시장 기계공구상가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계속 변하고 있다. 변화의 흐름에서 공구상가는 과연 지속 가능할 것인가? 아니면 영영 사라질 것인가? 도심 생태계 파괴와 연결된 변화가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줄 것인지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없다면 과연, 지금보다 더 나은 삶과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까? 급진적으로 일어나는 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잘 알지 못하는 이면(裏面)에 가까워지려 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원문보기: https://www.journalseoul.com/news/articleView.html?idxno=3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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